예전에 '향료전쟁'을 읽고서 든 생각이지만, 그리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물론 특이한 주제를 찾아서 이야기로 만든 재주는 탁월하지만, 그리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책을 덮으면서 하게되는 생각은 'so what?'이다.  


멘드빌 경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있다고 한다.  '여행기'라는 책을 저술하여 후대의 모험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그의 기담은 작가의 정체만큼이나 의혹 덩어리가 된다.  어떤 곳은 진짜로 다녀온 듯한 정황적 증거로 인한 추론이 가능하지만, 어떤 곳에 대한 주장은 당시에 유행하던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다른 이의 책에서 차용한 것이라서 신빙성이 없다.  그러나 그의 정체를 밝히려는 노력과 함께 당시 여행했다고 주장하는 곳을 방문하여 최소한 긍정적인 추론이 나올 수 있는 정황적 증거를 찾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인데, 역시 재미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거리를 찾아서, 즉 이슈화하여 다시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은 책을 쓰는데 있어 기막힌 재주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다소 엉뚱하게도 작가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고, 그 이름부터 범상치 않음에 살짝 놀랐다.  작가의 이름은 Giles Milton이다.  필명이 아닌 실제 이름부터 그는 작가의 숙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다.  가일스와 발음이 비슷한, 독일어-프랑스에서 파생된 오랜 영어단어인 Guile은 "insidious cunning in attaining a goal; crafty or artful deception; duplicity"라고 풀어지고, 성씨가 되는 밀턴은 실락원의 그 유명한 저자와 같다.  이쯤해서 보면 멘드빌 경이라는 인물 자체의 정체가 모호해진다.  그런 인물자체가 작가의 창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여담이지만, 요즘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온갖 떡밥으로 가득차있어 거의 prequel 영화만 만드는 느낌인데, 수수께끼로 가득찬 그의 영화는 그의 이름에서 연상되는 riddle과 너무도 잘 들어맞는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우연이라도 희안한 우연이다.


자계서와 일상의 성찰, 그 중간에 위치한 저자가 아닌가 싶다.  다른 자계서 저자나 강사들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구본형의 포인트는 인간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저술과 강연으로 먹고사는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일에 대한 자세와, 그보다는 더 진실한 자신 본연의 모습이 있고, 그 둘이 꼭 일치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난 구본형의 글과 강연이 100% selfless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나이가 들어서, 그리고 2004년 당시에도 벌써 초기보다 더 나아간 그의 글을 보면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계통의 다른 저자들과는 다르게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과 이슈제기까지 하는데, 이는 여타 다른 저자들의 '네 문제나 신경써라' 또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론으로 일관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그 역시 마음먹기에 따라 삶의 태도가 변하고 이를 통해 보다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일 할 수 있음을 역설하지만, 그의 다른 생각과 말을 종합해서 판단해보면, 이 역시 한 분야에서 뛰어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구본형은 김XX, 공YY, 이ZZ, 등등의 유명한 이 계통의 인사들과는 다르다.  그의 합리적인 면 또한 좋다.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고, 이들 또한 구본형이 걸어간 길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그들 중 일부의 글에서 구본형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데, 표현까지 선생과 비슷하게 가는 제자라면 더욱 노력하여 선생의 것을 털어내고 온전한 자기만의 것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부터 좋게 보면서도 가끔은 뭐랄까 조금은 자신의 모습보다는 다른 이의 허울을 쓴 것 같은 이 계통 저자의 글을 보면서 느끼던 불편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번 책을 읽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제자가 스승의 영향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러서도 이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늦잠을 자고 급히 나오느라 원하는 책을 들고 오지 못했고,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반나절 일을 할 생각이라서 손에 잡힌 것이 없으니 오후에는 또 다른 구본형의 책을 볼 생각이다.  참고로 이 책이 나온 때는 2004년인데, 그로부터 약 9년 후 구본형은 폐암으로 별세했으니 희망에 가득찬 그의 이야기들이 이제는 쓸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새삼 그의 이른 귀천이 아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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