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이런 저런 일처리를 하다가 몇 가지 실수를 발견하고 부랴부랴 수습하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더니 반나절이 다 지나가버렸다.  다행히 별 탈없이 넘어갈, 그러니까 장기적인 문제는 없는 그런 실수라서 그럭저럭 넘어간 듯 하다.  하지만,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고 나니 도무지 신경을 쓰면서 다른 일을 하기에는 머리가 꽉 찬 것 같아서 행정업무로 남은 시간을 보내면서 점심도 먹고.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갔다.  


이런 시국에 즐거움이라는 말을 쓰기 두렵지만, 지난 달에 주문한 책이 오늘 도착한 덕분에 잠깐이나마 위안을 받았다.  새책은 배송료를 생각하면 엄두를 못내고 헌책을 가격에 맞춰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장바구니에 담고 주문했던 충동구매의 결과물인데, 아사다 지로의 작품 몇 개가 섞여 있고, 어쩌면 이렇게 좀더 싼 값에 사면 더욱 좋을 일본 현대작가들의 추리소설이 다수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그때 아마도 그런 작품들이 많이 헌책방에 올라왔던 것 같다.


오후에도 그럭저럭 일처리를 하다가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는데 지쳐 책을 한 권 뽑아 들었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인데,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읽은 작품은 한 권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전작품 몇 개의 모티브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주인공의 심리를 비춘 점은 탁월하다.  제 3자의 관점에서 주인공의 범행자체가 서술되는, 그러니까 작가와 독자의 두뇌싸움이 아닌, 담담하게 서술하는 형태로 구성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심리묘사, 특히 범행을 전후로 나타나는 부분이 매우 생동감있게 전달되어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오후시간을 써버렸다.  


할 일이 많이 쌓여있기는 하지만, 내 머리라는 것도 일정한 한계가 있어서 보통 4-6시간 정도를 집중하고 나면, 복잡한 업무를 보는 것은 어렵다.  더구나 실수가 나면 안되는 일들 뿐이라서 더욱 오전시간대에 어려운 일을 하고 오후에는 좀더 쉬운 일을 하는 형태로 시간을 나누어 쓰게 되는데, 말하자면 오후에는 조금 늑장을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거다.  


버는걸 마구 써버리면 안되는 건 아는데, 일만 하다보면, 딱히 다른 취미도 없는터라 나도 모르게 알라딘을 뒤적거리면서 클릭질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아직도 세 건의 오더가 2-3주 간격으로 들어올 것이다.  정말이지 당분간은 책구매를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자리를 잡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여 client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점, 과정과 결과에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 일이 많아지는 만큼, 커지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사는 것이 허무하다.  누군가의 시간은 그렇게 멈춰버렸고, 나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운동을 하고, TV를 본다.  그렇게 분노하고 화를 내지만, 그게 다다.  TV를, 뉴스를 적게 보면, 아니 한국의 상황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되는걸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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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4-04-2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운내요!!!

transient-guest 2014-04-24 00: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꾸 힘이 빠지는게 이상하네요. 너무 뉴스를 많이 보는건지도 모르겠어요. 최소한 오늘부터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도록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