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는 큰일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요즘이다.  일이 바쁜 탓도 분명히 있지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독서에 쓰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든 탓에 이번 달에는 7년만에 처음으로 한 달에 열 권 이상을 읽지 않는 한 달이 될 것 같다.  물론 억지로 마구 밀어붙이면 열 권 정도는 간신히나마 채울 수도 있겠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내 스스로 지적 허영을 유지하기 위한 것도 아닌데 무리하게 권수를 늘리는 독서는 분명 쓰잘데기 없는 짓일게다.

 

매일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 내 정신만큼이나 이번 달의 나는 새로운 모습니다.  책읽기도 이와 같아서 최근에 다 읽은 두 권 외에도 이것저것 시간이 날때 건드렸다 내려놓기를 반복하고 있다.  마음만은 그렇지 않은데, 역시 한 권을 진득하게 붙잡고 읽기에 나의 시간은 이제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시작해서 정신없이 끝나는 무위에 가까운 고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전문학에 들어가는 작품치고는 상당히 쉬운 내용과 기술 덕분에 나는 이 책을 꽤 오래전에 접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대장 부리바"라는 제목이었던 것 같다. 

 

카자크, 또는 코삭으로 번역되는 이 특이한 집단은 러시아를 조국으로 받들면서 정규군대의 편제와는 다른 기병대를 이루고 크고 작은 전쟁에서 활약했다.  현대의 삶으로 보면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듯한 nomadic culture의 이들은 잠잠하게 지내다가도 갑자기 들고 일어나서 주변 국가들을 약탈하는 등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고 러시아가 침공당한 나폴레옹 전쟁 때에는 퇴각하는 프랑스 군대를 끝까지 괴롭히기도 했다. 

 

도시의 학교에서 돌아온 두 아들을 단련시키기 위해 일으킨 소규모 국지전에서 결국 두 아들을 다 잃고, 함께 무장소요를 일으킨 동료들도 거의 다 잃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의 생명까지도 잃게 되는 불바의 삶은 그야말로 시작에서 끝까지 목적을 갖지 못한 도시빈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추상적인 그의 러시아와 정교에 대한 충성을 보면, 이 역시 현대의 우경화된 도시빈민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라고 해서, 소외계층이라고 해서 모두 진보를 지향할 것이라는 환상은 나에게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시기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그리고 지식인이 생각한 러시아를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서방세계의 제스추어를 끝으로 거의 기정사실로 끝나가는 러시아의 크리미아 병합을 보면서 이 문제가 단순히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의 침탈로만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푸틴의 행각은 히틀러의 그것과 꼭 빼어닮았는데, 그제나 지금이나 전쟁을 치룰 준비가가 되어있지 않은 서방세계의 대응은 결국 당시 주데텐을 내어준 서방세계와 다를 바가 없는데,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워 유추한다면, 푸틴의 이번 한 수는 큰 블러핑에 다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블러핑을 간파했다면 당연히 콜이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콜을 부르기에는 서방세계의 패가 신통치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겠지만...

 

'장정일의 공부'를 빼고서 꼭 열 번 째 출간된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되는 이 책은 그러나 초기 7권의 날카로움이 많이 무뎌진 느낌이다.  두꺼워진 책 만큼이나 커진 font는 세월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무엇인가 조금 더 정치적이고 외교적이라고 느껴지는 장정일의 평은 조금 그 맛이 다르다. 

 

그래도 이 정도되는 독서의 대가가 이렇게 주기적으로 책을 읽은 것을 소화해서 보여주니 고마울 다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보이는 같은 문장이나 같은 논조, 또는 숫제 글자까지 똑같은 문단이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보면서 초기의 독서일기가 그야말로 그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독서일기는 팔기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이를 더 먹었음에도 여전히 그의 필체는 날카롭지만, 이렇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씩 재탕된 문장은 화가 난다.  최소한 편집이나 탈고과정에서는 잡아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특히 그냥 나눠주는 책이 아닌 돈을 받고 파는 책이라면 말이다.  좋으면서도 아쉽다는 생각...

 

읽을 책은 읽는 속도에 반비례로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한국책도 미국책도 흥미가 가는 책은 형편이 닿는다면 무조건 사들이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유지하여 은퇴한다면 할 일이 없이 지겹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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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3-2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불리바>를 읽었을 땐 폴란드가 16세기에 그렇게 강대국이었다는 사실이 눈에 안 들어왔어요.나중에 어른이 되어 읽으니 그때서야 눈에 들어오더군요.마초 냄새 물씬 나는 분위기도 좋았어요.일종의 마초 애국주의...

transient-guest 2014-03-28 21:54   좋아요 0 | URL
저도 폴란드는 내내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끼인 약소국으로만 알았는데 말이죠. 지금도 사실 근현대사 정도에 들어온 역사를 빼면 폴란드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엄청나가 마초적이고 거의 무협지 수준이죠, 스토리를 보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