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만큼 책읽기에 대한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마찬가지로 글쓰는 것, 리뷰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덜 하게된다일정부분은 인정하고, 일정부분은 포기하고, 그러면서 읽기와 쓰기는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사실, 내가 읽는 방식이나 이를 통해 무엇인가 남기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거나 못하다고 해서, 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끝에 독서도 글쓰기도 다 던져버리는 것 보다는,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추구하는 그 무엇인가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갖고 계속 행하는 것이 진리라고 본다

 

이번에 읽은 책들 중 상당수가 책읽는 이야기와 글쓰기에 대한 것들이 되어버렸는데, 순전히 우연이다예전부터 다른 분들의 서재에서 추천글을 읽고 모아두었던 것들을 구하게 되어 다른 책들은 잠시 미루고 이들을 위주로 지난 한 주간 책을 보았더니 순식간에 리뷰가 밀리게 된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연말이라서 그런지 지치기도 하여 읽기는 어찌어찌 했지만, 글을 쓸 맘은 잘 생기지 않았던 것도 이유이긴 하다

 

 

 

 

 

 

 

 

 

 

 

 

 

 

 

찾아봤더니 출판된 순서는 위의 순서에서 거꾸로 2005-2009-2013년이다우습게도 읽은 순서는 지금와서 기억하니 2013-2009-2005년이 되어버렸는데, 그런 이유였던지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에서는 다소 공감도와 몰입도가 떨어졌고, 작가의 글이  '퇴보'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결국 책을 출판된 순서에서 거꾸로 읽은 탓에 가장 발전한 글을 먼저 보고나서 상대적으로 4년전, 그리고 8년전의 솜씨를 보았기 때문인 듯 싶다.

 

이권우의 책은 '호모부커스'로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나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호모부커스 2.0' 함께 두 번 정도는 읽은 것 같다당시 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때라서 이런 저런 저자의 의견을 밑줄 그어가면서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비추어 보던 추억이 있다.  

 

'여행자의 서재'는 저자가 다른 이의 눈을 통해그러니까 그들의 글을 통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감상을 독서후기의 형식을 빌려 정리한 이야기들이다방구석에 앉아 세계일주가 된 셈인데, 지난 5년 간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더구나 여기에서 다룬 많은 책들 중에서 네 권은 나도 읽은 바 있어, 더욱 반갑게 저자의 생각을 나의 그것과 반추해 보았다.  

 

"여행을 촉발한 동기가 바로 문학이 탄생한 그 자리다그러니, 문학하는 자는 당연히 월경을 꿈꾸는 자다..."  이런 저런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아서 일일이 옮겨적지는 못하겠지만, 많은 밑줄을 긋게 만든 이 책에서 여행과 문학의 본질, 그러니까 이야기로써의 본질을 잘 표현한 말이라 여겨 특히 기억에 남았다또 삼국유사의 길을 따라 여행한 '고운기의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 매우 흥미있는 여행의 한 방법으로 보이는데, 조금 작게 생각하면 좋아하는 책이나 작가의 행로를 따라 가보는 것도 좋겠지 싶다물론 말은 이래도, 아직 지척에 있다는 스타인벡의 생가에도 가보지 못한 , 늘 생각과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자신이 참 불만스럽다.  

 

'죽도록 책만 읽는'이 출판되던 시기의 한국은 가카치세의 둘째 해가 되던, 그러니까 그 때만 해도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되던 때였다그래서 그랬나, 이권우의 머리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치열하다본인도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은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얼마나 치열한 정신으로 마주섰는지, 지은이의 문제의식을 오늘의 우리 삶과 관련시키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새겨보는 의미를 갖는다.  '여행자의 서재'가 여행과 문학을 함께 생각해보는 일종의 독서여행이야기라면 이 책은 그 보다는 더 깊고 치열한, 아니, 너무 깊어 우울하기까지 한 책을 통한 구도이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서 다룬 책들 중 어느 한 권도 아는 것이 없었는데내가 책을 적게 읽는것은 아니니까, 결국 그간 무엇을 읽었는가, 찾아왔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단순히 세상에는 참 많은 책들이 있구나를 넘어 이권우같이 공신력이 있는 독서평론가가 읽은 책을 왜 나는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을까, 그와 나는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2005년의 책이다.  2013년에서 보면 8년이나 젊은 이권우가 읽은 책, 그리고 거기서 배운것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몰입도나 공감도가 떨어졌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마도 2013-2009-2005년으로 이어지는 순서에서 온 일종의 피로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쓴 글 몇 가지를 보면서 떠올린 것들이 있어 적어본다.

 

"지은이는 창보다는 문이 더 좋다고 한다창은 관조의 자리이지만, 문은 실천의 현장과 연결되어서란다..." (신영복의 엽서).  그래서였을까 나쓰메 소세키는 그래서 문보다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보면서 단절을 즐겼던 것일까.  이 글과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가 함께 겹쳐 떠오르는데, 소세키의 문은 '실천의 현장과 연결'되는 행동으로써의 문이라기 보다는 '관조의 자리'인 창으로써의 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명작이니 좋은 책이니 하는 것을 무조건 수긍해야 할 이유는 없다...(하지만남들이 입을 모아 명작이라 하는 작품에는 분명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요소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어쩌면) 책 읽기의 가치는 남을 이해하는데 있다...(그래서) 나는 다시 읽으며 이번에는 작품을 쓴 작가가 아니라, 그 책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을 이해하기로 한 것이다..." (암흑의 핵심에 대한 이야기).  고전문학이나 명작이라고, 남들은 다 재미있다고, 깊다고 극찬하는데, 나에게는 잘 닿지 않는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다.  독서수행의 길에서 이런 책을 종종 만나는 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다그럴 때, 어쩌면 그 책 자체를 이해하기보다는 그 책을 쓴 사람, 나아가서 그 책을 고전으로 만든 사람들을 읽는 자세로 마음을 낮추고, 자신을 비워내면, 그 공간은 오롯히 하나의 책이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낸 내공을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글이었다.

 

독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의 방편이다방편으로써 경영되고, 관리되고, 조직화되고, 분석되어야 하고, 공부되어야 하는, 그들이 설파하는 길, 가고자하는 길을 가기 위한 교통편이다그런 의미로써의 독서도 분명한 메리트가 있고, 공부로써의 방법론도 배울 부분이 있다하지만,  개인적인 기호로는 이권우식의 서평이 좋다장정일식의 극단적인 칭찬이나 비난도 아니고독서경영학파의 분석과 경영이 아닌, 간간한 선비의 글처럼, 책에 대한 사랑과 마음이 그 자체로 느껴지는 그의 글을 앞으로도 즐겨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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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2-24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와 함께
우리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 하나에서 만날 테지요

transient-guest 2013-12-26 02:03   좋아요 0 | URL
책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이야기마다 배우고 볼 것이 많지요.ㅎ

노이에자이트 2013-12-2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권우 씨 문장이 점잖고 묵직해서 좋죠.뭔가 남을 찍어내고 공격하려는 글은 많이 못읽겠더라고요.

transient-guest 2013-12-26 02:03   좋아요 0 | URL
장정일씨의 책은 간혹 원색적인 비난이 많아서 특히 독서일기 시리즈는 중간중간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권우님의 글은 내면을 향하는 글이지, 누군가를 비평하는 글이 아니고, 깊은 맛이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