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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오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나쓰메 소세키 (아마도 소오세키가 맞을 듯)는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로서 일제 강점기 한국 땅의 문단에도 큰 영향을 준 문학가이다. 그 시절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소세키는 지성인이라면 당연히 한번 정도는 읽었어야 마땅한 교양의 첨단이었던 듯 싶다. '그 후'라는 작품으로 그를 접한 이래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그의 다른 작품들을 섭렵해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 '도련님' 같은 책에는 근대 일본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나타나는데, 식민지 시절의 암울함만이 전부인 당시 한국 땅의 모습에서는 볼 수 없는 근대화의 물결, 그리고 우리 땅에서는 해방 후에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런 저런 행태가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대가의 에세이로써, 그의 작품실에서 유리문 밖으로 바라본 세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소오세키가 바라본 바깥 세상의 모습을 담담하게 적어놓았는데, 나와는 100년 이상으로 벌어진 시공간의 차이를 건너 대가의 한 부분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책에서 나온 '명문' 몇 개를 적어 내 감상을 대신하고 싶다.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나는 오히려 오랜만에 인간다운 흐뭇한 마음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향기 높은 문학 작품을 읽고 났을 때 느끼는 기분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개 짙은 가을부터 찬바람 부는 겨울에 걸쳐, 땡땡 울리는 서한사의 종소리는 언제나 내 마음 깊이 슬프고도 시린 그 무엇인가를 울려넣은 것처럼 어린 내 마음을 스산하게 했다.'
생활 구석구석에서 글의 소재를 찾는 것은 작가의 힘이자 업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이렇게 가슴에 깊이 들어오는 말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역시 좋은 작가만이 갖고 있는 솜씨라고 하겠다. 나는 소세키의 글에서 종종 그런 마음의 울림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