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독서, 운동, 그리고 음악이 되겠다.  다섯 가지로 이들을 늘려 잡으면, 여행과 영화가 포함이 되겠는데, 요즘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자주 든다.  윗 사람이 없는 내 일의 특성상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겠지만, 모든 일이 나의 책임이 되는 상황에서는, 훌쩍 사무실을 비우는 것은 쉬워도, 일상을 단절시키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경로와 의미로써의 여행은 다소 무리가 될 것이다. 

 

최근에, 공항에 나간 일이 있는데, 저녁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밤 시간대의 국제선 청사는 여전히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공항에서만 맡을 수 있는 매연이 섞인 향긋한 도착과 출발의 공기 내음을 맡으면서,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 지금 이런 생각을 하게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물론, 자동차를 타고 근처의 명승지를 가는 것도 여행이 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어떤 need는 좀더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기에 아쉽지만, 여행과 독서가 어우러진 잔잔한 책 몇 권을 읽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

 

아무런 기대없이 선전과 추천을 보고난 후 최근에 사들인 이 책은, 나와는 동향 출신의 몇 살 위인 카피라이터를 본업으로 하는 저자가 그간의 여행과 사진, 그리고 각 여행지에 들고 갔었던 책 이야기로 엮은 작품이다.  다소 두껍고 무거운 느낌이 들 정도로 좋은 재질의 종이는 아마도 사진풍경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저자 혹은 출판사의 배려 또는 도구가 아니었을까?  밑줄을 긋기에는 별로 좋은 재질이 아닌, 그러니까, 수성펜이든 유성이든 잘 먹어주지 않는 재질의 종이라서, 저자의 감흥과 나의 공감이 만나는 지점을 표시해 둘 수는 없었지만,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마도 매우 오랫동안은 내가 가보지 못할, 어쩌면 가볼 생각을 하지 않을 나라들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와 여기에 얽힌 그의 책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사진과 함께 편집된 책이니만큼, 여행지의 느낌을 그대로 한번에 옮기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이 책은 한 호흡에 쓰여진 책이라는 느낌을 받을 만큼, 천천히, 그러나 계속 나의 눈과 마음을 온전히 집중하게 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를 무대로 삼은 재기발랄한 책들, 또는 여행 가이드에 가까운 책들도 좋고, 유명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의 이야기도 좋고, 요컨대, 사진집에 가까운 다소 성의가 없게 느껴지는 구성만 아니라면, 여행에 대한 책은 언제나 그곳에 대한 설레임과 미래의 기약을 제공하기에 참 좋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적으로 덜 가게 되는, 주류에서 벗어난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과 책, 그리고 지난 십 수년에 해당하는 저자의 인생이야기와 함께 들여다 보는 것은 다른 여행기에서 느낄 수 없는 각별하고 감칠 맛을 느끼게 한다. 

 

되도록이면 비수기에 훌쩍 떠나서 현실과 지금의 role playing에 맞는 옷을 벗어 던지고, 여행자로서의 RPG를 즐기고 싶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생은 어짜피 한 편의 게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변호사도, 독서가도, 애서가도, 무엇도 다 나의 모습의 일부분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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