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글을 올린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딱 그 만큼의 게으름이었을까?  책읽기는 밥먹는거 이상 거르지 않고 있지만, 한 동안은 후기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한 탓은 언제나 하는 것이고, 시간이 없다고 생각되는 것도 여전히 마찬가지.  더 이상 어떤 이유를 대기 어려울 정도로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저 글을 읽고 남기는 것이 힘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월초의 무지막지한 지름으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읽을거리들을 확보한 상태인데, 영어책까지 합하면 도대체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많아질 것 같아 가끔씩 불안하기도 하다.  

 

또한, 독서 불감증까지는 아니지만, 간혹 이렇게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가 하는, 다소 유치하다고까지 생각하는 성공독서나 성공학을 떠올리게 하는 기분도 요즘 느낄때가 있다.  사실 내 입장에서 그저 그렇게 평하기는 했지만, 분명 많은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목표를 설정해서 책을 읽기도 한다.  순수문학을 그런 의도로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장이나 개발을 위한 좋은 책을 찾아서 읽는 것은 분명히 개인의 특정한 상황 타개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나도 무엇인가 다른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그런 마음에 사무실 한켠에 겹겹히 꽂혀 있었던 온갖 자기개발서적을 정리하여 대략 세 박스 분량은 한 쪽에 쌓아 놓았다.  사실상 다시 읽을 가능성이 적은 녀석들은, 그렇게 묻고,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좋은 책이라도 생각되는 것들은 다시 읽기위해서 챙겨 놓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손가락을 놀리니, 막혀있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튀어 나온다.  애초에 페이퍼를 열었을 때에는 간단하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만 적으려고 했었는데 말이다.

 

 

 

 

 

 

 

 

 

 

 

 

 

 

 

 

 

 

 

 

원제는 일본스럽기도 하고, 중국스럽기도 한 '남극요리인'인데, 남극의 셰프가 훨씬 산뜻한 느낌을 준다.  남극요리인이라고 하면, 백곰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인육요리라도 할 것 같은 기세니까...

니시무라 준이라는 사람이 두 차례나 일본의 남극기지에 파견되었던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책인데, 얼마 전에 영화로 먼저 보고 흥미를 느껴 읽어 본 책이다.  내가 히키코모리 성향이라도 있는 것인지, 나는 가끔씩 저렇게 먼 곳에 파견되어 한 동안 사회와 떨어져 생활해보고 싶은 요망을 갖고 있다.  산속도 좋겠지만, 기왕이면 '남의 돈'으로 남극에 파견되어 소수의 팀원과 규칙적인 공동체 생활을 해보고 싶다.  책으로 볼 때는 훨씬 더 고생스럽게 느꼈지만, 영화속의 그들은 아무튼 유쾌해 보였으니까. 

http://kosap.tistory.com/550 요기에 가면 남극세종기지 이야기를 볼 수 있는데, 니시무라 준이 파견되었던 곳은 이곳보다 훨씬 더 깊숙히 들어간 남극의 오지 같은, 세균도 살 수 없다는 곳이었고, 인터넷이나 무선전화기술이 발달하기 전인 1997년, 그리고 그 이전의 일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래도 살만하지 않을까?  기압이 높고, 대기가 희박하여 조금만 무엇을 해도 헉헉거리고, 사방이 얼어붙은 물로 가득하지만, 어쨌든 물은 만들어야하며, 화장실과 목욕이 불편한 곳.  막상 가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생떼를 쓸지도 모를 노릇이지만, 어쨌든, 일상을 떠나, 책과 미디어를 조금만 챙겨들고 그렇게 떠나보고 싶다.  영화는 절판이 되어서 구할 수 없는 것 같은데, 영화수집은 멈춘지 꽤 되어 그렇게 많이 아쉽지는 않다.  어쨌든 책보다는 영화의 스토리 구현이 훨씬 돋보였다는게 내 결론.

 

SF와 판타지의 여왕같은 존재.  퍼언시리즈로 잘 알려진 어슐러 르귄의 작품.  작가의 이름은 정확히 Ursula인데, 이를 어슐러로 번역하는 것은 우르술라라고 번역하는 것만도 못한 것 같다.  대충 울술라 정도가 발음에 가까운데, 쉬운 이름은 아니다.  80-90년대의 책들에서는 이 이름을 우르술라라고 쓴 용례를 많이 본 기억이 난다. 

 

현대의 SF나 판타지에 많은 영향을 준 작가인데, 이 작품에서도 현대의 많은 모티브들의 원형을 본다.  먼 행성에 내려서 현지인과 동화하지는 못한 지구인.  그 지구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면서, 섞이는 것은 엄격하게 금하는 현지인류, 그리고 정체가 들어나지 않은 무지막지한, 마치 로마제국 말기의 게르만 족 같은 야만족.  

 

재미있는 것은, 현지의 문명발달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과학사용의 제한을 둔 일종의 은하연맹 법이라는 개념.  예를 들어, 우리가 남미 오지에 갔다고 하면, 현지인 이상의 과학기술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인 셈이다.  이렇게 하여, 이 행성에 불시착한 지구인류는, 그러나 후발대가 없이, 그대로 현지에서 살게 되는데, 과학기술의 사용을 금하는 법을 지키는 바람에, 수 백년이 흘러 그들 자신도 과학기술의 상당부분을 잊게 되었다는 설정이 전체 스토리 진행이 무리없이 넘어가는 논리를 제공한다.  이 작가의 책은 절판되기 전에 SF팬이라면 그저 사들이는 것이 좋겠다.  영세한 국내 출판계의 사정도 그렇지만, SF를 비롯한 장르가 제도권으로 편입되지 못하는 점은 여전한 한국에서는 특히 절판이 빠를 것 같다.  논술이 수능에 들어가면서 부터 더욱 심화된 차별...

 

이상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를 나름 심도있게 따져본 책이다.  오타쿠 답게 해박한 만화지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왜?를 반복하면서 따지다보면 악당이 되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일견 1-2차원적인 옛 시절 만화들의 악당론을 3차원적으로 파고들면, 결론은 세계정복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인데.  이렇게 보면, 세계정복이라는 단순한 관점, 그리고 인간이 로보트를 조종한다는 지극히 평면적인 세계관을 끝내버린 에반게리온은 그 말 그대로 신세기를 열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레진이라는 필명의 번역가도 특이한 사람인데, 딴지라디오에서 요즘 대성황인 '아부나이 니홍고'의 마사오 님과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도 다루지만, 70년대의 악당관의 맹점을 잘 그린 영화가 바로 Austin Powers시리즈가 되겠다.  특히 2편에서 (한국에서는 이것을 1편으로 소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현재로 돌아온 Dr. Evil가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딱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수 많은 예전 시절의 악당관의 문제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해학적이다.  생각만큼 재미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러니까, 너무도 진지한 내용의 책이었지만, 색다른 관점으로 어쩌면 흑백논리에 익숙한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 바라보고 분석하는 방법을 깨뜨려 줄 수도 있는 책이다.  물론 이런게 책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여전히 미스터리.

 

조만간에 리스트를 만들고 좀더 다른 독서를 해 볼 생각이다.  문학을 비롯하여 즐기는 독서는 꾸준히 이어지겠지만, 안주하는 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서를 해 볼 생각이다.  어떤 mission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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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6-12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란님 앞으로의 더 치열해질 독서계획이 기대됩니다. 궁금하기도 하구요. 잘 이루시길요. 전 영화 남극의셰프 찾아봐야겠어요^^

transient-guest 2013-06-12 12:19   좋아요 0 | URL
격려 감사해요. 남극의 셰프는 일본 영화답게, 대사나 이런 것들보다는 장면으로 승부하는 부분이 많은데요. 다른 배우들은 잘 모르겠고, 주인공하고 의사양반은 좀 알아보겠더라구요. ㅎㅎ 20권을 선정해서 내일부터 하루에 한 권씩 볼 생각입니다. 물론 다른 책들도 조금씩 보는것이지만...

댈러웨이 2013-06-1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도 기대되요! 어떤 독서를 하시려는 건지! 안그래도 트란님 안보이셔서 궁금했었는데, 서재도 새단장하시고 딱 나타나셨네요. :)

저 질문할 거에요, 트란님. 질문 8, 아니 질문 9인가;;, 미국의 인종차별은 어느 정도인가요? 저는 이곳에서 저나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들이 어느 나라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처음엔 생각했었거든요. 백호주의라는 선입견이 오히려 그런 관점을 더 강화시킨다고 생각했구요. 미국 현지는 어떤지, 트란님께 물어보고 싶어요. 요즘뿐만이 아니긴 하지만, 이곳 레이시즘 이슈가 끊이질 않네요.

서재 단장하신 이 느낌 좋아요. 전에는 너무 어두웠어요. 심기일전, 파이팅! ('파'는 폰트 100으로 키워서에요. :))

아, 그리고 쩌기 밑에, 제가 민망해서 지운 댓글에 답댓글 달아주시면 어떡해요? ㅋㅋㅋ

transient-guest 2013-06-13 01:26   좋아요 0 | URL
일단 20권을 선발해서 하루에 한 권씩 보는건 오늘부터 시작입니다. 이 녀석들은 inspiration을 위해서 보려는 것이구요. 그다지 내키는 독서가 아니지만, 분명 이런 책들도 필요하다 싶을때가 있는거죠.

미국도 인종차별 문제가 늘 있죠. 하지만, 이민자의 국가이고 국가기본이념, 그리고 인권운동을 통해 적어도 연방차원에서는 인종범죄는 크게 다루고, 차별은 역시 큰 법적 penalty가 따릅니다. 유럽 좋아하는 사람들이 관광하고 와서, 미국을 은근히 깔보는데, 사실 외국인이 살기에 미국만큼 좋은 나라도 없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워낙 이민이 많아서 덜하지만, 예전엔 참 친절했구요 사람들도. 호주나 유럽은 방문객에게는 친절하지만, 막상 유색인종 이민자에게는 그렇지 못한 면이 많은 듯해요.

좀 밝게 지내야죠.ㅎㅎ 글구 어떤 댓글인지..

2013-06-15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6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