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오래간만에 이런 시간을 갖는 것 같다.  예전에 남의 일을 할 때에는 물론 여유라는 것을 갖기 어려운 때가 더 많았지만, 회사의 상태나 일의 load에 덜 구애를 받으면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했었기에, 가끔씩은 업무시간 중에 밖으로 나와서 커피를 사마시면서 오후를 보내곤 했었다.  하지만, 작년에 나의 일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일 외적인 것들, 예컨데 사무, 미팅, 관리, 재정까지 오만가지가 다 나의 손과 머리를 거쳐가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카페출입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서도, 커피값 2-3불이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분명히 심리적인 압박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이번 주말의 본격적인 여름의 휴가철을 알리는 Memorial Day주말로써 연휴기간이 된다.  빠른 사람들은 이미 어디론가 떠났을 시간인데, 딱히 갈곳은 없지만,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나도 훌쩍(?) 카페로 나와서 이렇게 노트북을 켜고, 전화는 개인 손전화로 forward를 시켜놓은채, 메모장을 펴놓고, 만약(?)의 상담전화에 대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책을 읽으며 오전 한때를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간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틈틈히 읽은 책 몇 권의 이야기를 펼쳐 보려고 한다.

 

죠니 뎁과 출연진의 연기력과 스토리, 그리고 기괴한 분위기를 적절히 연출해 낸 촬영까지, 지금 보아도 재미있는 The Ninth Gate의 원작이 되는 소설이다.  이제와서 보니 영화는 원작의 모티브와 인물들을 끌어다가 상당부분을 재구성한 일종의 파생작품이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영화를 보았던 경험이 - 나는 이 영화를 심심할 때마다 보곤 해서, 아마도 열 번 정도는 보았을 것이다 - 책의 재미를 방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책을 다 읽고 나서 영화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던 것을 보면, 책이나 영화나 separately 그리고 함께 2-3 시간의 즐거움을 준다고 할 수 있겠다.  The Ninth Gate가 나오던 즈음만 해도 남는 시간에 종종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의 모든 것이 그때보다는 좋아졌지만, 그 시절의 젊음과 여유가 그립다.  과거를 추억하면서, 향수를 느끼는 우리의 심리상 항상 지나간 시간은 미화되는 경향이 심하다는데, 그러면서 한때의 젊은이는 꼰대가 되어가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영화와 책의 차이도 상당하거니와, 결말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주로 원작을 많이 cut하고 재구성한 느낌을 강하게 받기 때문에, 무엇인가 모자란다거나 부족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반대의 경우는 영화로 압축되고 변형된 모티브의 원형을 밟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the great 폴 오스터의 출세작이라고 하는 뉴욕 3부작을 이제서야 읽었다.  그간 김영하의 팟캐스트나 기타 책에 관련된 많은 글에서 폴 오스터의 위명을 들어왔던 바,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다만, 이 책은 1987년 경에 나왔기 때문에 이미 25년이 훌쩍 지나가버린 지금의 사고가 아닌, 그때의 무엇인가 보다 더 slow한 사고와 생활을 기본전제로 하고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추리소설의 고전을 읽을 때에도 많이 느끼는 것인데, 사실 인터넷과 온라인 database가 활성화 되어있는 지금과 그 이전의 세상은 얼마나 다른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또한 이런 비교는 이 작품 역시 일종의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른 것이라고 볼 때, 일견 타당하기까지 한 듯.

 

3개의 각기 다른, 그러나 interconnect된 text들 속에서 내가 어렴풋이 보고 느낀 것은 오스터 내면세계의 현실화 내지는 작품화같다.  운동을 하면서, 조금은 정신없이 읽었기 때문에 이번 한 번에 실체를 깊이 규명하는 것은 어렵다.  그저, 무엇인가 이 작품은 오스터속의 각기 다른 단면을 캐릭터화하였다는 것.  작품에 깊이 빠져들어가면 살짝 가상광증이 올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 때에만해도 많은 작품들이 그 전 시대의 문학, 즉 소설을 이야기를 통해 무엇인가를 말하려했던 것 같다.  아니, 그런 흔적을 보았다고나 할까?  21세기 한국문단에서 공공연히 회자되는 소설 그 자체로써의 소설보다는 좀더 고풍스러운 이런 것도 좋겠지 싶다.  그간 문학계의 현학적이거나 교조적이고, 견강부회에 대한 팬의 반발로써 이야기 그대로의 이야기도 좋고, 독자의 사고에 모든 의미를 맡겨버리는 형식도 좋지만, 역시 글은 그 깊이에 참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필히 조금 더 천천히 읽어볼 책.

 

늘상 하는 이야기지만, 책이란 것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번의 경우도 그렇다.  이 책, '지중해 기행'은 몇 달전에 구매하고 바로 '모레아 기행'에 이어 읽으려고 했던 책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내용이 썩 잘 들어오지 않았고, 공감도 어려웠기에 내려놓았다가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의외로 쑥쑥 읽어내려가서 잠깐 짬을 내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2-3일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건성이 아니라 제법 그 의미와 당시의 지중해 일대에 면한 고대의 지역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읽으면서 많이는 아니지만, 카잔차키스의 종교관, 인생관을 보고 공감한 부분에 밑줄을 쳤는데, 책을 사무실에 두고와서 - 자리가 좀 많이 남는 사무실 공간을 개인서재로 쓰고 있다 - 옮기지는 못하겠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의 대두를 보던 그가 무솔리니를 만난 느낌에 대한 것인데, 인류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관점에는 이 넘치는 활기를 긍정했던 것.  물론 윈주에 의하면 말년에 상당부분 이를 철회했다지만, 차별과 억압이 본격화되고 조직적으로 일상화되기 전까지, 특히 가해자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들에게 파시즘이나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는 일견 매력적일 것이다.  무엇인가 들썩거리면서 무엇인가 돌아가는 것 같은 환상과 착각을 주는 전체주의행정이야말로 인민의 아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정도만 더 앉아있다가 운동을 하려 갈 생각.  새벽운동을 더 선호하는 편인데, 운동을 마치고 나왔을 때, 비추는, 겨우 조금전에 떠오른 태양빛, 아니면 동이 켜우 트려는 순간의 아침공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몸의 피로도에 맞춰 스케줄을 조절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점심-오후운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만큼은 남의 일을 할 때에도 비교적 내 의견을 고수해서 지켜왔을만큼 중요한 이슈이다.  몸을 혼을 담는 그릇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릇에 금이 가거나 그릇이 깨지면, 여기에 담긴 영혼도 - 정신과 마음? - 온전하기 어렵지 않을까?  게을러 질때면 항상 나 자신을 다잡게 하는, 나에게는 경구같은 말이다.  결론은 운동은 열심히, 규칙적으로, 그러나 몸 상태를 보아가면서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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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5-25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잔차키스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전집 속 책을 대할때면 느껴지는 화사함, 평화로움, 바다 이미지 그런 게 좋아요. 우연히도 전에 댓글 달 때도 카잔차키스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흙흙. 간만에 카페의 휴식에서는 어떤 책을 읽으셨나요? 티는 뭐 주문하시고요? :)

transient-guest 2013-05-25 05:42   좋아요 0 | URL
카잔차키스의 책을 읽으면 항상 정갈하고 사색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했다고 하지만, 글 자체의 분위기는 그런 것 같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셨을때의 책이 아마 모레아 기행이었던 것 같네요.ㅎㅎ 카페는 Peet's Coffee였고, 간만에 모카 한잔에 과일/넛츠 스콘을 곁들였네요. 책은 리진 1권을 마저 읽고 소송을 읽으려다 운동하러 갔습니다.ㅎㅎ

노이에자이트 2013-05-2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여행>에서는 프랑코를 편드는 글을 써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죠.

transient-guest 2013-05-26 00:45   좋아요 0 | URL
약체국가인 그리스인으로서 강한 지도자상을 꿈꿨던 것인지, 아니면 문사 특유의 감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도 있었군요.

댈러웨이 2013-05-2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활의 작은 순간들에서 충족감을 느낄 때 인생 뭐 별거 있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훌쩍 카페로 떠나셨다니, 해피 연휴의 시작이네요. :)

코멘트 달고 싶은 게 많은 페이퍼에요. 저는 트란님이 힘주고 한 번 글 쓰시는 거 읽어보고 싶어요. 어떤 분인지 가끔은 정말 궁금해져요. 그나저나 제가 젤루 부러워하는 '새벽형 인간'이시라니.

질문. 8) 몇 시에 일어나시는 거에요? 다섯 시? 네 시??? 아니다. 동이 틀 때 정도면 여섯 시? (질문 잘해야겠다고 해놓고는 이모양이라니. 흙흙2.)

transient-guest 2013-05-26 01:25   좋아요 0 | URL
힘들지만 보람있다고 생각되는 야심찬 인생과 평범하지만, 마음은 편안할지도 모를 보통의 삶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게 우리 삶인가봅니다. 가끔 산속에 책 싸들고 들어가서 안 나오면 어떨까 싶기도 하구요.ㅎㅎ 제가 힘주고 써봐야 뭐 나올게 있나요...ㅎ 아직까지 내면에서 떠오르는 깊은 생각을 글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서툰 것 같아요, 게으르기도 한 것 같구요.

새벽운동은 보통 4시에서 반 사이에 일어나서 갑니다. 해가 긴 여름만 아니면 대략 운동 끝내고 나올때에는 맑고 촉촉한 새벽공기를 맡을 수 있지요.ㅎ

transient-guest 2013-05-27 11:20   좋아요 0 | URL
맑고 촉촉한 피부까지는 모르겠어요...그건 아무래도 아침에 일찍 등산을 다녀와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