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가 많아지면서 업무량이 갑자기 늘어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고, 작년 이맘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아마도 직원을 쓰게되는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의 과도기 동안에는 이렇게 자투리 시간을 잘 써서 책도 읽고 글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한가하게 앉아서 책만 볼 시간은 쉽게 오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한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다카기 아키미쓰는 예전에 읽고 포스팅했던 '문신 살인사건'의 저자인데, 그 책을 읽은 이래로, 계속 궁금했었던 작가이기도 하다. 온라인의 정보에 의하면 한국에 그리 널리 소개되지는 않았던 작가인 듯 한데, 최근에 이렇게 '걸작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내에 정식으로 출간된 것 같다. 출판사는 검은 숲이라는 곳인데, 전두환씨의 아들이 세운 시공사의 계열 브랜드인 것 같다. 시공사는 좋은 책을 많이 내주고 있기에 고맙기도 하지만, 오너가 전씨일가라는 것에는 심한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예전에 보았던 인터뷰에 의하면 전두환씨의 부침을 보면서 오너인 아들은 정치에 관심을 끊고 business쪽으로 갔다고 했는데, 창업자금이 어디서 나왔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런 인터뷰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쨌든. 기다리던 작가의 책이라서 냉큼 구해서 읽어버렸는데, 가미즈 교스케라는 의학박사 탐정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세이시의 긴다이치 교스케와 함께 일본의 3대 명탐정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가미즈 교스케는 '문신 살인사건'에서 등장하기도 했었는데, 언뜻 보면 셜록 홈즈와 닥터 왓슨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캐릭터 같기도 하다. 성동격서, 즉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린 상태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전형적인 마술연기의 방법인데, 인형을 사용하여 이 트릭을 극대화 하는 것이 이 사건의 주안점. 특이하게도 작가는 독자에게 clue를 제공하면서 두뇌게임을 거는데, 나에게는 흔한 일은 아니지만, 중반을 넘어 모든 clue를 종합하여 범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일본 특유의 기괴함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역시 다카기 아카미쓰의 역작은 '문신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화제가 되었다던 그 표지만큼이나 기괴한 작품으로써 말이다.
그간 나온 요코미조 세이시의 재출판본은 모두 보았고, 이번에 나온 책 또한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걸출한 탐정을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어 약간은 서운한 마음으로 읽었다. 많은 추리소설들이 주인공의 인생에서의 peak대를 시점으로 하는데, 이번 작품은 긴다이치 코스케의 노년이 실질적인 사건해결이 이루어지는 부분이라서 상당히 신선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어디를 보아도 여자 이야기는 없는데, 긴다이치 코스케는 언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그 아이가 자라서 소년탐정 김전일을 낳은 것일까? 긴다이치 코스케가 초기에 소개될 때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라는 선전문구가 기억이 난다. 실질적으로 마지막 모습을 보인다는 다른 작품도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활발한 추리소설 출판붐이 반갑다. 일본 작가들 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 작가들의 여러 작품들이 나오고 있으니, 읽을꺼리가 풍성한 것이 너무 좋다. 나중에 정말이지 책장 여러 개를 꽉 채운 추리소설을 보면서 이 시기를 돌아보게 될 것 같다. 책을 잘 정리하여 배치하고, 테마에 따라 한 달의 독서를 수행하는 것도 흥미있는 독서 방법이 되겠지 싶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오타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