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와 이번 주 초에 일을 많이 해놓은 덕분에, 지금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고, 내일까지 넉넉하게 끝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몇 가지 이유들을 떠올려 봤는데, 우선 마음이 바쁜 것이 큰 이유가 된다. 정신없이 집중해서 일을 끝내고 난 후, 휴식을 취하며 책을 펴보지만, 일처럼 빨리 단기간에 무엇인가를 뽑아낼 것 같은 기세로 책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속독 아닌 속독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러면,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머리에 남지도 않기 때문에, 바로 내려놓게 된다. 또 하나는, 그간의 축적으로 인해, 읽을 책이 꽤 넉넉하게 확보되었다는 점이다. 책이 많이 쌓이다 보니, 읽어야할 것 같은 조바심은 커지는데 비해, 재미있게 한 권을 잡고 읽는 마인드가 생성되지 않고, 정신이 분산되어 이것저것을 집었다 놓았다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와 함께 이런 저런 일상의 일들로 인해, 내 독서는 사방으로 중구난방 난삽하게 흩어져 전혀 포커스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근 2주 정도를 지낸 것 같다. 주말에는 여유를 잡고 한 권에 충실해봐야겠다.
김영하 작가의 데뷔작이며, 영화화된 적이 있다. 영화의 성공은 모르겠지만, 그 만큼, 김영하 작가의 인지도가 높다는 증명이 된다. 지금에는 그리 파격적이라고 생각되지 않겠지만, 책이 나왔던 1995년에는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무엇인가 의의를 끄집어내어야 할 필요는 없고, 그럴 수 있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만, 소재 자체의 파격성과 구성을 높이 쳐주었을 것 같다.
김영하 작가 혼자만의 팟캐스트를 들을 때에는, 그리고 그의 글을 볼 때에는 몰랐지만, 빨책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김영하 작가는 확실히 이제는 젊은 작가가 아닌, 비교적 중진의 대열에 들어가는 작가의 냄새가 난다. 무엇인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 익숙하고 스스럼없어 보이는, 그런 냄새가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매우 대단한 구라쟁이 내지는 학원강사같은 달변을 보여준다. 역시 책을 읽는, 다소 어눌하고 어두운 목소리로는 추측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말을 잘 한다라기보다는, 내 표현 그대로 구라쟁이 같은 느낌을 받는다. 좋다 나쁘다의 이야기가 아닌,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느낀 내 기분 그대로 그런 것이다. 그의 작품을 하나씩 읽는데서 데뷔작이니만큼 빠질 수 없는 작품이었다. 데뷔작이니만큼 뒷날의 작품에서 보이는 세련미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전개는 기대할 수 없지만 말이다.
전 세기 초에 하버드 총장이 구성하고 실현한, 그 당시 지식인의 교양을 얻기 위해 추려진 책을, 저자는 하나씩 읽어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다소 이상하거나 부족해 보이는, 또는 왜 포함되었는지 모를 책들도 있지만, 교육의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지성과 교양을 위해, 최소한의 권수로 인류 인문학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을 모았다는 고상한 목적이 참 마음에 든다. 그 이상, 이런 시도가 제대로 사회에서 받아들여졌었다는 것은 아련한 추억마저 느끼게 한다. 모든 인간의 지상목표는 취업이 되어버린 우리 시대에는 볼 수 없는 모습. 저자의 말에 의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대의 잔상을 보는 것 같다.
책 자체는 썩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저 이런 책들이 있구나, 이런 것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정도? 저자의 글이나 위트도 평이하다고 느꼈고, 죽어가는, 그리고 죽은 이모의 이야기와 책읽기를 오버랩할 때는 문득 '혼자 책읽는 시간'이 생각나기도 했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조만간 기회가 되면 이 하버드 인문학 서재의 책을 구해서 일년 project를 삼아 하나씩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amazon에 보면 used로 대략 350-700불이면 전 권을 구할 수 있다. 당장 사들여봐야 읽지도 못하고, 부모님 댁 한켠에 쌓아놓게 될 터이니, 신중하게, 정말 읽을 수 있을때 구매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그 전에 사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다 읽고나서 큰 교양을 기대하기보다는, 어려운 단어가 가득한 책들을 읽어내면서 개발될 뇌의 능력이 더 기대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프로젝트가 나왔으면 좋겠지만, 상아탑이 취업학원으로 바뀐 오늘날에는 무리일 것이다.
책을 좀 읽고 싶다. 주말에는 정말이지 다 던져놓고, 한적한 카페에 한 나절 앉아서 책을 읽도록 해야겠다. 여유도 어쩔때에는 일부러 내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