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로써, 드디어 21권으로 나온 '황금가지'사의 괴도신사 뤼팽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처음에는 어릴 때의 단편적인 기억들과 이런저런 기대와 맞물려 조금 낯설기도 하고, 다른 패턴과 전 시대적인 구성 때문인지 몰입이 조금 어려웠으나, 읽어갈수록, 현대의 추리소설과는 다른 낭만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뤼팽이라는 캐릭터, 그리고 르블랑이라는 작가에 익숙해지면서 작품의 모든 요소들을 하나씩 음미할 수 있었다. 이 시리즈를 다 읽으면 어릴 때 읽었던 뤼팽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되는데, 가령 그의 시작, 그리고 작품 이곳저곳에서 언급되는 번외의 모험들에 대한 것도 다 볼 수 있다. 기념비적인 작품이면서 후대 의도 캐릭터의 원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만큼, 추리소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장서가라면 꼭 한질을 구입해서 꺼내어 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이런 뻔뻔스러운 트릭은 처음이다. 같은 사람이 다른 액션을 취하고, 조금 전의 일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듯 행동하는 셋팅이라면, 현대의 작품에서는 바로 다중인격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다시 설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르블랑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두 미소의 여인'이라는 제목은 아리송하고, 의도된 혼란을 주기 위한 장치임에 분명하다. 후기작으로 가면 뤼팽이 사건에 개입하는 계기는 본인과 그리 관련이 없는 일에 우연히 끼어들면서, 돈냄새를 맡고, 나아가서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서 그야말로 '회'가 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깊숙히 사건의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뤼팽은 그 나이에도 여전히 정열적이고 급한 성미를 보인다. 이 즈음해서는 뤼팽은 확실한 의적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본다.
뤼팽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도둑 말고도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는데, 사랑을 잃고 자원입대하는 외인부대원, 일차대전 참전용사, 모험가를 제외하고도 숱한 공직을 맡아 활약하기도 했다. 20권은 그런 활동의 한 때였던 마약 수사관으로서의 활약을 그린 작품.
21권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아들과 조우하게 되는 뤼팽을 보여준다. 복수심에 불타는 칼리오스트로 부인에게 20년전에 빼앗긴 아들, 그 후 복수를 위해 도둑으로 키워진 아들과 뤼팽의 조우는 그러나 이 시리즈의 finale답게, 유쾌한 happy ending을 끝난다. 역시 프랑스인답다고나 할까? 영국인이었다면 그렇게 끝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거의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렇게 간략하게나마 후기를 남기게 되었다. 이제 다음의 목표는 캐드펠과 크리스트 전집이다. 언제고 손에 들어오면 하나씩 읽어가면서 글을 남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