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놓고 나니, 제목이 조금 우습다.  마치 무엇인가 있어보이려는, 그러나 너무도 평범한, 그러니까 안간힘을 쓰는 느낌이 아는 제목이다.  그저, 그간 읽은 책들을 몇 개 엮어서 페이퍼에 남기려는 것인데 매우 자주 쓰는 '간략한'으로 시작되는 제목보다, 오늘은 조금 다른 제목을 생각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페이퍼의 제목을 정하는 것은, 리뷰의 제목을 생각해내는 것보다는 쉽다.  책 한 권을, 그 책에 대한 느낌 또는 내용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글제목을 생각해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리뷰위주로 (사실 페이퍼를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서) 글을 남기던 것이, 이제는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글꼭지를 정하는 것도 쉽다는 편리함에, 페이퍼를 더 자주 꾸미게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써내려 갔지만, 결국, 이것은 또다른 '간략한' 리뷰의 모음이다. 

 

 

 

 

 

 

 

 

 

 

 

 

 

 

이야기는 빌 브라이슨이라는, 아이오와 주의 데모인이라는 시골 출신의 미국 글쟁이가 20년에 가까운 영국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뉴햄프셔주의 하노버라는 곳에 정착을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대략 1996년경의 이야기인데, 책으로는 1999년에 엮어져 나왔다. 

 

사실 이 걸출한 글쟁이는 그의 위트있는 입담과 넓은 지식으로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다수의 책이 '발칙한' 또는 '빌 브라이슨의'으로 시작되는 제목을 달고 출판되었고,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의 교포사회에서도 책을 좀 읽었다거나 하이킹/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은 한번씩은 읽었음직한 작가인데, 내가 그를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그리고 이형렬/한윤경의 팟캐스트에서 다루어지던 그를 기억해서 최근의 중고구매때 몇 권을 찾아낸 것이다.  이 사람.  아마보 대부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무지하게 웃긴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미국의 삼대 내지는 오대에 들어가는 매우 유명한 하이킹 트레일이다.  생긴지는 한 백년은 족히 넘은 것 같고, 지나는 구간은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이어지는 3,360 km에 달한다.  시설이라고는 중간에 나오는 그야말로 기둥에 지붕을 얹은 정도의 넓은 합숙공간, 그리고 간혹 보급품을 사고 샤워를 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의 산장이 전부인데, 이곳을 완주하는데에는 약 반년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에서도 등장하는 어릴적 친구 - 사고뭉치 - 와 함께한 그의 여행은 트레일의 약 40%를 커버하는데 그쳤지만, 그 와중에 자연과 인간, 개발, 보전, 안전, 동물, 등등...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트레일을 건너면서 느낀 그의 생각, 그리고 친구와 함께한 재미있은 에피소드등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감동적이고, 가끔은 살짝 서글픈 감성을 자아낸다. 

 

예전부터 백두대간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백두대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한 트레일이 여기에, 존 뮤어 트레일과 오레곤 트레일과 함께 (서부) 존재하는 것을 보니, 일단 동네의 뒷산이나 파크부터 확실하게 정복하고 꿈꾸어도 되겠지 싶다.

 

옥의 티라면, 내가 읽은 버전이 예전의 판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번역이 좀 별로였다는 점이다.  군데군데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눈에 거슬렸고, 직역과 의역을 일정한 틀없이 오가는 부분도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번역을 한 홍은택이란 분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예전에 읽은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이야기를 쓴 사람과 동일한 분인듯.  번역을 못했다기보다 상업적인 번역이라면 조금 더 신경써서 번역하고 수정했어야한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2008년에 새로 나온 개정판은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정이현 작가의 책은 언제 보아도, 남성의 과점과는 확실히 다른, 여성의 관점에서 다뤄지는 성, 사회, 사랑, 직장, 결혼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새로운 perspective를 준다.  물론, 너무도 여성의 눈으로 비춰진 사회상이 때로는 낯설기도 하고, 너무 순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편들을 모아놓은 두 책의 이야기들은 다른 책에서 다룬 단편들과 겹치는 것들도 조금은 있는 듯.  

 

뭐랄까, 서울 그리고 여자/부부라는 주제를 마치 두부나 고기를 칼로 썰어내면 나오는 여러 단면의 모습처럼 보여주는 그의 단편들은 2000년대의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를 황폐화된 사회상이라고 하겠고, 혹자는 썪어가는 물에서도 살아가는 물고기처럼 나름대로의 적응이라고 하겠지만.  때로는 raw하고, 때로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자학적인 비판같아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해도, 읽는 사람 나름대로의 관점과 경험에 비추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 같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흑임자 김중혁 작가의 단편 모음집인데, 악기나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았다.  김중혁 작가는 문단에 데뷔하기 전에 매우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는데, 음악매장 주인, 여러 가지 잡지들의 기자 etc., 이런 경험들, 특히 음악/악기관련의 일에서 나온 발상을 단편으로 구현한 것 같다. 

 

작가 본인이 늘 이야기하듯이, 글에서 꼭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이는 김영하 작가도 하는 말인데, 읽는 사람으로써는 그리 가까이 와 닿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를 위한 책은 존재하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싶은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이번 작품집 역시,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특이한 주제를 특이하게 엮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느껴지는 것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쉽다.  그러나, 이미 흑임자로서 얻어진 명성(?) 내지는 그의 목소리에 익숙해진 만큼의 가까움 때문일까, 특별히 탓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실 김중혁 작가는 그의 작품보다도 본인 자신이 더 기괴(?)하게 보일때가 있는데, 농담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흑임자 버전의 그와 히키코모리 같다는 글을 쓰는 작가 버전의 두 가지 character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딱 한번, '빨책'에서 실시간으로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보인 적이 있는데, 목소리의 톤부터 달라지는 것이 참으로 엽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읽은, 그리고 재미있게 보았다는 말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의 책을 다 읽고 나면, 김중혁 작가라는 character 그 자체와 함께 버무려 무엇인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기회가 되면, 다른 문제작(?)들을 구해서 이어가야 할 것 같다.

 

페이퍼를 다 쓰고 나니, 글이 매우 길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빌 브라이슨은 지금 읽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 보고서 따로 모아서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쩌랴, 이미 써버린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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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2-14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읽으셨으면 다음에 그 작가들 이야기 또 써 주셔요~

transient-guest 2013-02-14 09:33   좋아요 0 | URL
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