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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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한창 뜨겁게 스크린과 포탈뉴스를 달구었었다.  그들의 초점은 거의 한결같이 늙은이의 미성년 십대소녀에 대한 욕망, 신인배우의 올누드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영화를 보았을때, 내가 본 것은 역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에로티시즘이었다.  영화의 매 순간, 다른 장면은 크게 기억나지 않고, 박해일의 연기도, 김고은의 투혼도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남는 것은 십대소녀로 분한 김고은과 젊어진 이적요 시인, 박해일의 비뚤어진 듯한, 그리고 욕구와 욕망이 활활 불타는 이젹요 시인의 상상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정사장면 뿐이었다.  정말이지, 그리고 한 동안, 살짝 욕지기가 나오곤 했었다.  "미친 영감탱이.  늙어서 남은건 여고생 패티시인가?  그리고 그걸 교묘하게 catch해서, 어린 신인 여배우를 벗겨 그럴듯하게 포장한 한국 영화계는 역시, 그렇구나" 이런 말이 나올만큼 말이다.  대단한 영화평론가도, 팬도 아닌, 그저 그런 한 사람이면서...

 

그리고, 2012년 11월 경의 한국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호기심 반, 확인차 박법신 작가의 소설 '은교'를 사들고 돌아왔더랬다. 

 

그러나, 나는 이후 오랫동안 이 책을 읽지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영화의 장면들과 오버랩되는 늙은이의 엇나간 욕망에 대한 장면이 싫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13년 1월 나는 '은교'를 읽었다. 

 

책을 집어들고 한번도 내려놓지 못하고 숨가쁘게 그러나 매우 편안하게 한숨에 내려 읽어갔다. 

 

영화가 추구했던, 아니 추구한 것으로 보였던 에로티시즘이 아닌,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저 순수한 하나의 사랑 이야기였다.  그렇게 보였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겠지만, 누구나 손가락질할 수 밖에 없는 사랑이겠지만, 아니 비정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은교'는 분명히 - 그렇다. 나는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 사랑이야기,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느낀다. 

 

이적요-은교-서지우, 은교의 눈으로는 은교-이적요-서지우라고 볼 수도 있는 이 구도, 그리고 성애, 이젹요와 서지우 - 길을 잘못 듯 문청의 시절부터 함께한 그들 - 의 이야기, Q변호사...이 모든 것들은 그저 사랑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장치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애는 손녀 같았고, 어린 여자 친구 같았으며, 아주 가끔은, 누나나 엄마 같았다'라는 이적요 시인의 말과 '하고 싶으시면요, 키스......하셔도 돼요......할......아부지가......나를요, 이렇게......갖고 싶어하는지도 몰랐다구요. 이까짓 게. 뭐라구요'라는 은교의 말에서, 나는 사랑을 보았다. 

 

나이, 아니 그밖의 많은 이유로, 현실화될 수 없는 사랑을 본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간 후에 느끼는 은교의, 이적요 시인에 대한 아쉬움 - 으로 표현되는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사랑 - 을 보면서,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것임을 느낀다.  변태스럽다고, 패티시라고 해도, 이 얘기는 기실 노인과 십대 소녀라는 구도를 빼고 - 예컨데, 노인을 청년으로 바꾼다고 하자 - 보면, 연애소설인것이다. 

 

PS 소설에서 거슬리는 한 가지.  5.16.  그래 박정희.  본국명 다카키 마사오의 군사 쿠데타를 굳이 군사혁명이라고 표현하는 박범신 작가...아니면 그의 습관일지도 모르는 그 말이 너무 괴롭게 다가왔다.  쿠데타는 쿠데타인 것이다.  혁명과는 분명히 다른, 쿠.데.타.  2012년에 민주화의 venue를 빌어 다시금 일어난 쿠.데.타. 

 

PS2 뜬금없이 십여년전, 5월경. 로스쿨 1학년 연말시험을 준비하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 당시 절친이던 한 녀석의 결혼소식. 그리고, 하루 venti 석잔과 콜라 2-3병으로 엉망이던 몸상태.  공부하면서 당시 활성화되던 youtube을 통해 보고 듣던 장나라의 4월이야기.  그 노래에 왜 그렇게 설레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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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미미앤 2013-01-25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슨 사랑인 거시다' 비뚤어진 철자법에서 비뚤어진 사랑에 대한 이야기란 걸 말씀하고자 하신 것인지.. 무엇이 십년전 이야기를 떠오르게하는 책이 되게 했을까.. 궁금하네요.

transient-guest 2013-01-25 02:55   좋아요 0 | URL
별 의미없이 쓴 말입니다. 십년전 이야기는 그야말로 random하게 떠오른 것이구요. 역시 본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