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라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고, 또 리뷰하기 어려운 책이 늘상 있게 마련이다.  때로는 게으름에, 가끔은 내용이 남지 않아서, 혹은 그냥 하기 싫어서 읽고 나서 꼭 글로 남기자는 결의가 무색하게 그냥 책장에 꽂혀지는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몇 권의 후기를 페이퍼 형식을 빌어 남기는데,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간략한 후기 내지는 길라잡이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작년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단일화를 전후하여 지금까지 한국 정치계를, 아니 사회전반을 흔들고 있는 키워드 안철수.  양식있는, 그리고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그 대착점에 서있는 자들의 견제와 흠집내기를 받고 있는, 현재에는 경선도 없이 강력한 대권후보로서의 출사표를 던진 그의 생각.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도 안철수가 최소한 대권후보로 나올 것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워낙에 늦게 읽는 바람에 김이 좀 빠진 감도 있다. 

 

조금은 상식적으로 보이는 생각들을 조리있게, 그리고 온화한 그만의 말투로 풀어놓았다.  대부분의 그쪽 진영 사람들처럼 센세이션을 노린 발언따윈 찾기 어려웠고, 복잡한 개념도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인터뷰 형식을 빌어 그만이 가진 정치적인 소신을 피력하는 것이다.  혹자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다고 하는데, 그건 당연한 것이다.  노하우가 있다면 까발리지 말하야하고, 일단 구체적인 이야기, 즉 방법론이 나오기 시작하면, 적 진영에 꼬투리를 잡을 수 있은 빌미를 주게되고, 물타기와 양비론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세일즈와 마케팅 차원에서 막혀버리면, 그 뒤는 뻔한 것이다. 

 

하지만, 칭찬 일색으로 가기에는 이미 안철수는 정.치.인.이 되었다.  경선에서 단일화가 될 지 아니면 1987년 정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치인 안철수에게는 그 순수함만큼이나 현실적인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니 평가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온 과정은 그 사람의 현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일까, 일견 뻔한 말들이고,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라해도 그의 입에서 나오니 신뢰가 갔다.  눈이 작고 쥐를 닮은 그분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여도 애시당초 믿을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은 좋은 인생을 살고 볼 일이다.

 

한국판 Sex and the City라고 보기엔 그 화려함에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읽은 정이현 작가의 첫 작품은 그 나름대로의 맛, 고전문학과 외국소설을 주로 읽어온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그렇지만 신선한 그런 맛을 선사했다. 

 

같은 시대, 그리고 비슷한 연배의 등장인물들 (주어는 생략)에게서 무엇인지 모를 지난 시절의 향수를 느꼈고,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과장일까.  나도 그들과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비슷한 문화를 소비하며 내 길을 찾아왔고, 지금의 이곳에서 나의 삶을 살고 있다. 

 

무엇이 달콤한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달콤이라는 그 말에서 나는 인공감미료와 백설탕의 끝맛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을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극중 케릭터들 중에서 '태오'라는 영화판을 전전하는 대학중퇴 젊은이 - 주인공 화자의 짦은 연애대상 - 은 그 sincere한 포장에도 불구하고 내가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하는 인간군상이다.  도대체 멀쩡한 얼굴과 마음씨로 여자에게 - 의도와는 상관없이 - 빌붙는 남성은 나의 관점에서는 남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일부러 찾아서 statistic을 만들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인간들은 꽤나 많을 것이다.  특히 아사리판같은 연예계 그리고 그 경계에 있는 화류계에.  보면서 답답하다 못해, 개인적인 증오를 느꼈다면 조금은 과장이겠지만, 내가 싫어하는 두 종류의 인간류들 중 하나에 해당한다.  

 

이 책을 추리소설이라고 해야할까, 사회소설이라고 해야할까.  등장인물 각각의 관점에서 비슷한 시간대의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그들의 내면을 통해 한 event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위의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전반적으로 어둡다.  마치 소설을 읽는 내내 회색빛 dome으로 뒤덮힌 무대공간을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것을 찾아 헤메이며 사귀는 남자에 집착하는 은성.  비밀스런 방화로 놓아버린 마음의 그 무엇인가를 해소하는 혜성.  닫혀버린 유지.  그리고 장기밀매업자 상호와 그의 대만계 재취 옥영.  옥영의 애인 명.  과연 그 시체는 누구의 것일까?  끝까지 말해주지는 않지만, 누구의 것인지는 너무도 명확하다.  그래서 더욱 mysterious하다.  그는 왜 간 것일까?  그가 말하는 빚이라는 것이 - 사실 simple하게 유추되기에 더욱 의심스러운 -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 작가의 political corretness가 마음에 든다.  적어도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객관적인 눈으로 한일관계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비주류적인 사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한데, 이것이 소설에서 여과없이 주인공의 독백과 생각을 통해 표현된다.  주인공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한국 유학생이라는 설정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신생인류라.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현 시대의 연구로 인해,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은 우리가 배워왔듯이 점진적이지 않은, 약간은 돌연변이적이었다는 학설이 정설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다음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의 셋팅 - 다음 단계의 인류는 4차원적인 시각으로 지금을 볼 것이라는 - 이 매우 설들력이 있게 보인다.

 

또하나.  일급전범이 부시 Jr.는 번즈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를 실질적으로 조종했던 딕 체이니는 체임벌린이라는 이름으로, 그 외의 구성은 9-11이후의 미국이 저지른 불법적인 침략전쟁과 살인 - 심지어는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 을 약간만 가공하여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던 이라크 침공, 그리고 살인과 고문, 이 모든 것들이 부시 Jr.치세에 행해졌고, 그 덕분에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에 쓰였어야 할 돈이 모조리 부시와 그 똘마니들의 주머니로 들어가 버렸다.  덤으로 부시 Jr.의 8년 동안 중국은 군사경제대국으로 부상해 버렸고, 지금은 미국의 목줄을 타고 앉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따라서 그들이 혼나는 것을 보는 것은 꽤나 즐거웠다고 생각된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좀 구해서 보아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사무실 한켠에 마련한 책장에 3겹으로 꽂혀 있는 내 책들의 사진을 올린다.  이외에도 한 2000권 정도의 한국책과 영어책이 부모님 댁에 보관되어 있는데, 집을 사면 제일 먼저 서재를 꾸리고 싶다는 바램이 빨리 이루어지길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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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0-0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긴 책장에 삼겹으로요! 게다가 이천권 더! 대단하십니다. 페이퍼나 후기가 그 책의 느낌을 더 잘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

transient-guest 2012-10-07 01:08   좋아요 0 | URL
그만큼 못 읽은 책도 많은거죠..-_-:ㅋ
저는 줄거리보다는 제가 받은 느낌, 풍기는 냄새, 또 그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과거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런 것들을 위주로 후기를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줄거리와 분석을 곁들이는 것도 좋은데 말이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