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짜장면을 맛보지 못한지 오래다.  여기야 뭐 워낙 좀 그렇지만, 교민으로 미어 터진다는 Los Angeles일대 (뭉뜽그려서 남가주 = 남켈리포니아)에서도 특별히 내 입맛을 자극할만한 곳은 못 봤다.  아니, LA나 NY일대는 교민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맛도 방식도 한국의 유행이 그대로 수입된다고 보면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맛없는 짜장면은 요즘 한국의 동네 중화요리 식당만큼이나 널렸다.  즉 예전의 맛을 그대로 내는 곳은 여기도 없다는 것.  아마도 한국의 지방 어디, 아니면 제주도라도 가야 옛날식의 맛있는 짜장면을 먹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혹자는 화상이 물러난 자리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화요리집이 늘어나면서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볼땐 전반적으로 낮아진 음식재료의 질과 이에 비례한 주방장 또는 주인의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대륙의 일반적인 위생이나 음식에 대한, 아니 사회적인 인식을 보면, 화상이 주인이라고 해서 예전처럼 정성스러운 맛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듯.  역시 시대가, 세태가, 사회가 변한 탓일까?  자본주의의 극을 달리는 21세기 초엽, 짜장면 하나 제대로 먹을 곳이 없다니. 

 

7월은 언제가 한가했다.  예전에 다니던 사무실이 오너의 골프행각으로 downsize되기 전, 무척 바쁘던 때에도 7월은 한가했다.  나에게 사무실을 맡겨놓고 오너가 한 달씩 휴가를 가도 될 정도로 말이다.  즉 하던 케이스를 이어서 maintain하고 update하는 정도의 일이 7월의 주 업무가 된 적이 많았는데, 신생인 나의 사무실은 maintain하거나 update할만큼 많은 케이스가 없다.  아직은. 

 

한가한 덕에, 벼르던 방정리와 책정리를 시작하여 IKEA에서 bookcase로 쓸 장식장 두 개를 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조립을 마친 후 한쪽 벽에 세워놓았다.  요녀석들이다.

 

 

출처: http://www.ikea.com/us/en/catalog/products/80071319/

 

이거 두 개면 2-3겹으로 책을 넣을 수 있는데, 보다시피 각 칸이 좁아서 파티클임에도 불구하고 잘 휘지 않는다.  수많은 책장들을 섭렵한 끝에 pine나무나 oak로 만든 책장 다음으로 꽤 쓸만한 제품이다.  물론 가정집에다 들여놓으면 모양이 좀 별로인데 - 경험상 안다 - 사무실의 한쪽 벽에 두 개를 나란히 세워놓으니 그럭저럭 공간도 채워지고 보기에도 괜찮다.  무엇보다 앞으로 사무실을 옮겨도 - 지금의 executive suite (전화, 비서, 인터넷 등의 기본 서비스가 포함된 방 rent)을 벗어나야지 - 회의실 한켠에 세워두고 장식용 책들 - 두꺼운, 예전에 쓰던 법률서적 (지금은 필요없는) - 을 잔뜩 채울 수 있기에 두고두고 활용도가 높다고 하겠다.

 

아무튼, 이 녀석들 두 개면 두꺼운 책은 20-25권, 일반 두께의 책은 35-40권은 들어가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거의 꽉 차버렸다.  계획은 한국어 책을 모두 가져다 놓는 것이었는데, 딱 하나 정도가 모자란 분량이 아직 집에 남아있다.  그리고도 모자라서 일부 처세나 자기계발에 관한 책들은 다른 책장에 두겹으로 꽂아 놓았다. 

 

그러고 남은 집의 책장의 자리는 게임과 animation DVD로 좀 채웠는데, 사실 박스에 담아 보관중인 만화책이 무척 많이 있기에 이들도 조금씩 열어서 꺼내어 놓았다.  덕분에 밤에 잠이 안올땐 정말이지 오랜만에 만화책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꺼낼 수 있는건 대략

 

 

 

 

 

 

 

 

 

 

 

 

 

 

이들이다.  모두 전권을 가지고 있는데, 중고책, 그것도 도서대여점의 땡처리 출신이라서 모두 보관상태가 험하다.  '수라문'이나 '짜장면'의 경우 종이질이 조악해서 벌써 테두리가 누렇게 뜨고 있다는. 

 

어제는 이들 중 '짜장면'을 오래 잡고 있었다.  은근히 쓸만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자기일에 대한 자부심, 일에 연연하지 않는, 정확하게는 돈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가짐, 그리고 독서의 중요성 등이 그들이다.  고수와의 대결에서 마음의 평정을 잃고 패한 주인공은 삼천포의 짜장면 고수인 백기명인을 찾아가 사사를 받게 되는데, 하루에 딱 백그릇만 팔아서 백기명인이란다.  이는 돈에 연연하지 않기 위한 마음가짐이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즉,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만족하고, 나머지의 시간은 자신에게 투자하고, 또 남을 위해 일할 수 있었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의 경우 주말이나 금요일을 활용한 pro bono work로 가능할 것 같다 (이미 시작은 했고 한 케이스를 맡았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백기명인이 엄청난 장서가라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삼천포는 경상남도 사천시에 위치한 남해지방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백기명인은 하루에 백 그릇까지의 짜장면을 팔고, 남은 시간에는 낚시와 독서로 소일한다.  현실성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좋은 짜장면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하니, 역시 일에 대입하여 본다면, 나의 독서는 내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idea하나는 꽤 창의적이라고 자부하는 편이긴 하다.  희안한 케이스를 맡아 성공시킨 사례가 몇 번 있는데, 아마도 무의식중에 녹아있는 어느 누군가의 글 덕분일지도 모르겠으니까.

 

짜장면.  갑자기 정말로 잘 만든 짜장면을 먹고 싶어졌다.  그런데, 중국산 재료도 못 믿겠고, 이를 갖다 쓰는 중화요리 식당도 못 믿겠으니 culinary school이라도 가서 배워서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나?  아니 어쩌면 중요한 회귀인지도.  산업혁명 전까지는 one person - one product의 시대였으니까.  이제 우리는 무엇인가 좋은 것을 먹고 쓰려면 직접 만드는 수 밖에 없는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나른한 오후에 낮잠을 쫓는 구실로 이런 이상한 글을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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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7-20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천포 우리 옆 동네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주만큼이나 남해사람들이 자주가는 지방입니다. 삼천포는... 우리 옆 동네!

139달러면 대체 얼마죠? 진짜 이쁘다... ㅠㅠ

2012-07-20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1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2 0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맘에 드는 짜장면집 하나 찾기가 힘든 시대. 정 아쉬우면 자기가 배워 만들어 먹어야 하는 시대..
제천역 앞에 진짜 맛있는 짜장면집 있다고 제부가 갈춰줬는데 함 먹어보고 알려드릴게요. 시대를 거스르는 명인의 집인지, 그냥 제부의 입맛이 관대한 건지... 오실 순 없겠지만 일종의 증거는 되는 정보로다가...ㅎ
그나저나 백기명인 이야기 정말 맘에 드는 지난 시대풍의 만화인걸요?! 돈에 초연하고 책을 좋아하는 게 명인의 비결이라니...
삼천포,, 좋은 곳이에요. 숨은 명인이 낚시를 즐기며 살 법한 동네죠~.^^

transient-guest 2012-07-20 16:22   좋아요 0 | URL
가끔 그럴때가 있어요. 바로는 어럽지만, 조금 모아서 그냥 어디 들어갈까. 콜로라도 같은 곳 생각했는데. 삼천포 한번 고려해 봐야겠네요. 한 10년? ㅋㅋ 백기명인이 될수는 없겠지만, 낚시와 책은 저도 자신 있숨다...ㅎ

달사르 2012-07-2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천포. ㅎㅎ
얼마 전, 삼천포에 가서 회를 먹었네요. 마산에서 열리는 연수회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단체로 들렀더랬죠. 정작 바다는 버스 안에서만 봤는데요. 그래도 그 아련한 느낌은, 좋던데요. 삼천포가 괜히 삼천포가 아니구나. 그랬어요.
그런 전통 짜장면 집도 삼천포엔 있겠다, 싶어집니다!

transient-guest 2012-07-24 00:42   좋아요 0 | URL
저는 하도 코미디나 농담으로 '삼천포' 운운하니까, 꽤 최근까지는 그게 진짜 동네인지 몰랐었어요.ㅋㅋ 왜, 하도 삼천포로 빠진다 어쩌고 하잖아요. 그런데서 은퇴하면 좋겠어요 이담에. ㅋ

달사르 2012-07-2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앞뒤로 틔어져 있는 책장 류를 모두 expedit라고 하는 건가요? 아님 이케아의 저 제품 이름을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건가요? 암튼, 탐이 무척 나는 책장입니다. 막 인터넷 바다를 뒤지면서 구경하고 있어요. ㅎㅎ

transient-guest 2012-07-24 00:44   좋아요 0 | URL
네 4x4, 5x5, 2x2 이 정도로 나오는데 모두 expedit이네요. 일반 책장은 거의 모두 Billy라고 되어있고. expedit이 잘 놓으면 비교적 좋은 값에 책을 많이 넣을 수 있어요. 특히 한쪽 벽을 채우기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