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내가 너무 좋아했던 형이 한분 있었다.  형이 우리학교에 어학연수를 온 것이 계기가 되어,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내가 한국에 올때마다 형을 만나곤 했었다.  형은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다양하고, 가끔은 괴짜같은 방식으로 이를 풀어내도록 도와주곤 했었다.  98-9년인가부터 4-5년 연락이 끊겼다가, 형과 같은 학교 출신의 지인에게 형의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하게 되었었다.  그때 난 한창 로스쿨에서 '피똥'을싸며 고생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형은 그새 자기의 꿈을 이루어 방송국 PD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벌써 불멸의 이순신 같은 대작의 조연출을 맡고 있는. 

 

2004년 여름이었나?  한국에 있는 로펌에서 인턴쉽을 하면서 졸업논문을 준비하던 때라, 두어달을 역삼동에 있는 작은 원룸에서 지낼때였는데, 그 바쁜 와중에도 형은 시간을 내서 나를 만나주곤 했었다.  그때 형과 마지막으로 했던 술자리에서 형은 당시 강한척을 하면서, 속을 닫고 살아가던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던 것 같다.  압구정동에 있었던, 로데오 거리 어디엔가 세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의 바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그리고 일년이 지나서 나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본다.  나에게는 시험과 취업 사이의 공백기간이었던 그 무렵, 형은 또다시 화려하게 한 계단 더 자기의 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공모한 영화제작에 감독으로 뽑혔던 것이다.  형이 항상 꿈꾸었던, 프랑스 영화처럼 아름다운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고, 형은 스탭과 배우를 섭외하고 그 여름/가을에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영화내용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 내가 그 영화 번역을 도와주었기 때문인데, 형은 갖 학교를 졸업한 나에게 '영화가 완성되면 이미 아시아권하고 동구권에 배급이 되기로 했으니까, 네가 시나리오 번역도 도와주고, copyright 자문도 해주라.  이거 잘 되면 계속 entertainment쪽 일도 할 수 있을거야'라면서.

 

내가 본, 지금도 속속들이 내용을 기억하는, 그리고 주연배우들이 누구였는지도 기억하는 이 영화.  '피아노 포르테'는 그러나 작품화되지 못했다. 

 

당시 방송국에는, 어느 직장이나 그렇지만, 심한 파벌싸움, 그리고 언제나 있는, 밑에 사람을 밟는 상사... 그런것들이 있었나부다.  그런데 하필 이런 자들이 형을 방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창 영화를 찍어가고 있는데, budget를 cut해버린것.  당시 형은 사비를 털어가면서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budget cut이 나오자, 동분서주하면서 외부투자까지 유치를 했는데, 이걸 그 상사가 veto한 것이다.  역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우섭외와 맞물려 소속사로부터 무언가를 받은 정황이 유추된다. 

 

정말이지 순수했던 형의 마음은 다년간의 방송국 생활 - 거기는 정말 험한 곳이기도 하지 않은가 - 에도 그런 일에 무디어지기엔 너무도 여렸던 것 같다.  계속되는 압력, 터무니없이 낮아진 budget, 내 기억에는 약 3-40%로 깎인, 으로 대충 영화를 하나 만들어 버리라는, 그리고 데리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자기 자식같은 시나리오를 깎아내고 떨어내라는, 이미 지칠대로 치쳤던 형의 마음은 이를 견디어 내지 못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나는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해 가을 번역된 시나리오를 형에게 보내주고나서 수 개월 후.  신문에 'xxx PD' 자살미수로 중태라는 글이 뜬 것이다.  유서를 보면 심각한 심리적-정신적 공황상태였다고 한다.  형의 친동생 말에 의하면 그 유서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어떻게 형을 방해했는지도 나와있다고 한다.  난 아직 그 유서를 보지 못했지만, 작은 힘이나마 생기면 꼭 보았으면 한다.  꼭. 

 

아산병원에서 내가 본 형의 모습은 너무 불쌍했다.  전두엽이 상해서 튜브를 끼고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으로 하루에 몇 번씩 자리를 바꾸어가며 누워있는 형의 모습에는 고작 몇 달전만에도 의욕에 넘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그리고 언제나,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귀기울여 들어주던 형의 잔상만 남아 있었다. 

 

그후에도 가끔 난 형의 꿈을 꾼다.  망가진 몸의 겉모습은 반 식물인간 상태이지만, 이 몸에 trap된 형의 정신을 만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꿈에서 형은 항상 생전의 모습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기적같은 일이지만, 손상된 전두엽이 마치 끊어진 전기회로가 갑자기 다시 connect되듯이 돌아오기도 한다고 하는데, 형의 몸이 그렇게 회복되었으면..

 

정말이지 오랫만에 본 '고즈넉하다'는 표현을 보니 형이 생각이 났다.  형의 시나리오에서 처음으로 접했던 말인데, 번역하느라 꽤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사람.  형이 보고 싶다.

 

형이라면 지난 4년간 이루어진 총체적인 국부의 수탈과 5류인들의 발호, 그리고 이제서야 터져나오고 있는 방송국 직원들의 항의파업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아니, 형도 거기에 동참하였거나, 이미 방송국을 떠나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창때 꿈꾸던 유학 - 내가 있는 곳에 와서 같이 공부하고 일하고 술마시고 토론하면서 한 시절을 보내자던 - 생활중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서 내가 했던 말이라고 고작 '형 내가 밥주는거랑 잠은 재워줄께.  근데, 담배는 꼭 나가서 피워야 한다...'였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왠지 슬프다.

 

(1)

  • 고즈넉하다[고즈너카다]

    [형용사]

    • 1.고요하고 아늑하다.
    • 2.말없이 다소곳하거나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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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6-0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마음이 다 아프네요. 형의 꿈이 전두엽을 떠나 어느 누구의 꿈에 닿아 있을까요..
'고즈넉하다'란 단어는 형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을 거에요. 아주 고즈넉하게 말이죠.

transient-guest 2012-06-01 21:13   좋아요 0 | URL
고즈넉하게 저를 바라보면서 가끔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해요. 우리 젊던 시절의 그 마음 그대로, 그 다짐 그대로 살고 있냐고. 아우.. 눈물이 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