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로 한가한 한 주간이 될 조짐은 이미 지난 주에 있었다. 조금 일찍 퇴근할 생각도 했으나 오후 5시에 확인한 구글맵은 7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통상의 시간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려랴 집에 도착할 수준의 정체를 보여주고 있다. Youtube의 playlist에서 night studies나 haunted library음악을 찾으면 무척 멜랑콜리한 연주가 반복되는데 그 탓인지 뭔가 적적함이 가득한 사무실이다. 잠을 많이 못자서 그런건지 살짝 우울하기도 한 시간.

 

책의 우주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평생 다 사들일 수 없을만큼 많은 책을 갖고싶어하고 다 읽을 수 없을만큼 많은 책을 사들이는 것이 책을 읽는 사람이자 모으는 사람의 숙명이다. 정확하게는 장서가인지 애서가인지 독서가인지 알 수 없을만큼 매우 모호하고 흐릿한 경계에서 이렇게 살다가 날이 차서 받아둔 가는 날이 오면 다 접어두고 떠나게 될 것이니.


형의 때아닌 죽음을 계기로 가장 심플하고 고요하면서도 사람들 속에 머물 직업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 작가가 살아온 지난 시간의 이야기. DC에 머물던 98년엔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그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지 못했고 관심을 갖고 알아가려 노력하는 지금은 고작 인근의 미술관을 가는 것이 전부인 지금이다. 언젠가 기회를 만들어 DC도 NY도 아니 가보지 못한 여러 곳을 내 눈에 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미래를 위해 나름대로의 뽕밭을 가꾸는 지금 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가능성의 차원에서 만들어지지 못하여 실체화되지 못한 내 삶의 다른 path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느낀다. 지금의 삶이 그다지 못한 것도 아니고 필경 여느 사람들이 볼때 부러워할 직업과 배움의 수준, 게다가 자리도 잘 잡혀 괜찮은 수입을 올리는 지금의 모습이지만 가보지 못한 곳은 항상 'what if'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 안될 것만 같은 책이다. 그저 가슴아픈 이야기가 아릅답게 그려진 것에서 위로 비슷한 것을 받고 약간의 감동을 받았단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토와', 그리고 '정원'. 늦게 시작된 새로운 삶.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강아지, 그리고 이어지는 일상에서 다시금 알게된 사랑. 무척 추상적으로 책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봤다. 


미국식으로 지어진 주택은 보통 앞이 개방되어 있고 집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담을 둘러 주택의 뒷면이 개인적인 공간이 된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의 경우 그 반대의 컨셉으로 집앞의 대문을 중심으로 담을 두르고 본채와 대문사이에 정원이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그 이유 비슷한 것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억이 있는데 동서양의 문화 혹은 삶 아니면 철학이 달라서 그랬다는 취지였던 것 같다. 앞뜰의 포근함도 뒷뜰의 private한 느낌 이상 좋을 것 같아서.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니 정확하게는 세계정세를 2000년도 훨씬 더 전의 시대에 비춰보는 기회가 된 책읽기. 2013년, 2017년의 11권짜리보다 이렇게 여섯 권으로 정리된 것이 보기에 더 깔끔한 것 같아서 욕심이 난다. 


누구든 읽으면 가져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 




헌책방에서 모은 이야기 두 번째. 짧게 이미 썼지만 이 시리즈가 계속 주기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열 권이 될 무렵, 계획하는 것들이 잘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은퇴 혹은 반 은퇴에 가까이 왔을 나의 미래엔 어쩌면 이상북스에서 책을 사고 주인장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도. 평소에 무슨 이야기꺼리가 생기는 삶은 아니지만 이 시리즈에 한 숟갈 보탤 뭔가가 그땐 떠오를지도 모른다. 


표지의 그림이 너무 맘에 들어서 다음에 사무실을 옮기면 이런 구조로 방을 배치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벽은 책으로 두르고 이렇게 가운데 책상이나 넓은 탁자가 있으니 뭔가 안정적인 나눔의 지향성이 보인다. 책과 이야기를 책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나눈다고 해야하나. 



글을 끼적이는 20분이란 시간동안 다들 무사히 집으로 가셨는지 맵의 모습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젠 대충 15분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차가 빠졌으니 나도 퇴근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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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1-24 1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모든 걸 언젠가는 다 두고
떠나게 될 텐데도 책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가 없네요. 고저 숙명이지요.

오늘도 서점 포인트와 카드 쓰면
만원 준다고 해서 부랴부랴 츠바
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평전을
사왔네요. 시기적절한 책이라는 생
각이 들어서 말이죠.

헌책방 이야기, 땡기네요.

transient-guest 2024-01-25 04:32   좋아요 2 | URL
다른 건 몰라도 책과 영화는 포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게임은 팔아버릴 생각도 하고 있는데 말이죠. ㅎㅎ 츠바이크가 평전이 또 기가막히죠. 저는 전에 읽었습니다만 말씀처럼 아주 적절한 시기의 책이네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려나 궁금하네요 ㅎㅎ

이상북스의 주인장 이력도 특이하고 얻어지는 사연도 재미있습니다

2024-01-26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7 0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7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8 0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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