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분야에서 일을 한지는 17년째. 사회생활을 일과 함께 시작하여 남들보다는 많이 늦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한 분야에서 같은 일을 17년째 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사무실을 차린 것도 벌써 11년이 넘었으니. 


일이 잘 풀릴 땐 기분이 좋고 그렇게 보람찬 일도 없지만 일이 틀어지거나 잘 안되면 자신에게서, 고객에게서, 그리고 다른 이의 삶의 중요한 일이라서 등등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질척거리면서 진행된 케이스들은 보통 질척거리면서 마무리가 되고 결과가 잘 안 나와주면 또다시 질척거리면서 보완을 하는데 보통 이런 경우에는 궁합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가 피곤해진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김영하작가의 말, 인생은 살아내는 것, 견뎌내는 것이란 말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삶은 일종의 코스프레, RPG 같이 난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professionally 사람을 만날 땐 직업에 따른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그렇지 않을 땐 그저 goofy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책을 사들이고 읽을 땐 뭔가 문사스러워지고, 게임을 할 땐 아이가 되고, 운동을 하거나 무술단련을 할 땐 날을 잘 세운 한 자루의 검이 되고 싶어진다. 물론 RPG가 항상 좋은 모습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서 뒤돌아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사람처럼 이상한 소리를 하고 바보같은 짓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만...


어쩌다 보니 오늘은 전화로 시작해서 전화로 끝난 하루가 되었다. 사실 서류업무는 조금 지친 것도 있고 해서 slow하게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오늘의 퇴근도 저녁을 넘겨버렸다. 그래봐야 내 직업군의 평균업무시간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어쨌든. 이런 날은 한잔을 제대로 걸쳐야 하는데 마침 이 만화를 읽으니 가벼운 안주를 계속 바꿔가면서 이 술에서 저 술로 옮겨다니고 싶다. 나성에 있었으면 필경 술도 더 많이 먹고 다른 말썽도 많이 부렸을 것이다. 워낙 late bloomer라서 그런지 나이를 아주 많이 먹어버린 지금에 와서야 이런 저런 경로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가드를 조금만 내려도 큰일이 날 것이다. 가뜩이나 '유혹 외엔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다'라는 개소리를 종종 시전하는 인간인데 술까지 들어가면 답이 없을 수도 있으니 아예 불 근처엔 가지 않는 것이 화상을 입지 않는 방법이다.


빨랑 붙잡고 있는 책들을 다 끝내야지 이젠 슬슬 지겨워지려고 한다. 진도가 나가지 않기에 다른 책으로 가지 못하는 이 상태를 벗어나야지 싶다. 


그나저나 코로나에 걸렸다 회복한 이후부터 가끔씩 마른 기침을 하는데 아주 귀찮아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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