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포니아에도 눈이 오는 곳이 있기는 하다. 주로 산꼭대기에 있는 동네인데 스키장이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아무리 추운 날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한국처럼 추운 겨울의 쌉쌀한 공기를 마실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의 기후에 익숙해진 지금은 이런 날씨라도 엄청 춥게 느껴진다. 


2022년의 동지를 약 일주일 앞둔 오늘도 역시 오후 네 시만 되면 해가 기울다가 다섯 시면 어두워진다. 덕분에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 매일 열심히 수행하던 걷기를 하지 못하고 새벽의 운동도 어렵다. 최근에는 코로나까지 걸렸었기 때문에 지난 한 주간은 운동도 많이 하지 못했기에 힘든 몸상태와는 별개로 답답하기 그지 없다. 


혼자 일하는 것도 한계가 온 듯, 2022년에는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뭔가를 해야만 한다. 당장 12/29까지 나갈 일이 한 건, 12/19까지는 나가야 하는 일이 여럿, 거기에 한국스타일로 쪼아대는 어떤 corporate client의 일도 가능하면 마무리해야 한다. 이런 저런 구상을 해보는데 혼자 일하는 것이 너무 편하고 사무실을 서재처럼 사용하는 것도 좋아서 굳이 직원을 새로 뽑을 생각은 없다. 사람을 잘못 쓴 탓에 큰 고생을 한 2019-2020 이후로는 그런 맘이 굳어졌다. 차라리 backend service업체를 잘 활용해서 support를 받는 것이 여러 모로 더 편할 것 같다. 내가 업무를 도와주고 있는 유관회사에서 직원들이 드나들면서 말썽이 잦은 걸 보니 더욱 그렇다. 


이제 약 10-15년 정도 일하면 노년의 일차시기가 온다. 아무리 지쳐도 그 정도는 더 일할 수 있을 것, 아니 일해야 한다. 딱 지금의 내 나이때 아버지는 누나의 대학입학을 맞았었는데 이미 burnout이 심했던지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일하기보다는 조금씩 일을 놓아가고 있었다. 그다지 물러날 준비가 잘 되어있었던 것도 아닌데 생각해보면 자신의 삶이나 가족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나이가 되어보니 나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는 것인지 요즘은 일이나 일상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늘 지쳐하고 있다. 하지만 quit하고 싶은 생각이 들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시기에는 빡세게 해서 물러남을 준비해야 한다고 다짐을 한다. 공부처럼 일도 때가 있는 법이니 어느 시기가 지나면 어차피 은퇴하기 전이라도 천천히 뒤에서 따라오는 젊은 친구들에게 market share를 내주어야 할 것이라서. 


큰 사업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내 두 손으로, 그야말로 적수공권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가끔은 혼자서 뿌듯해한다. 그래봐야 아버지의 커리어 클라이맥스 시절의 규모에는 아예 비교를 할 수도 없지만 그대신 나는 보다 더 알차게 내 몫을 챙기고 절약해서 물러남을 대비하고 있으니까 개념이 많이 없었던 2-30대 시절과 비교하면 다행이 아니겠는가.


언제가 되면 내 책과 영화, 게임들을 한 자리에 잘 정리해놓고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책이 넘쳐나는 마당에 영화/게임은 따로 꺼내지 못하고 박스에 넣어 정리된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의 일부와도 같아서 정리해서 버리거나 할 생각은 없다. 나는 맥시멀리스티라서 어려움속에서도 조금씩 사들여 즐기던 그간의 기억을 물건과 함께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사를 간 후 사무실과 집과의 거리가 좀 생겨버린 탓에 서점에 가는 빈도가 많이 줄었다. 서점이란 것이 작은 녀석들은 고사하고 대형서점브랜드도 이합집산을 거쳐 BN 하나로 통일된 후 다시 폐점이 된 곳이 많아서 서점을 가는 건 이제 일종의 시간과 거리의 호사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지난 10월 말에 가보니 사람들이 꽤 많던데. 노인들을 빼면 잡지는 사가는 사람이 없고 책은 그나마 바리바리 싸들고 book haul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한 하나 정도의 대형서점은 망하지 않겠지?


간만에 오아후에 사는 친구와 잠깐 통화를 하는 것으로 가끔은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하와이로의 이주에 대한 불씨를 살려보았다. 섬이라서 답답한 건 둘째로 하고 아파트는 관리비가 엄청 비싸고 외곽으로 나가면 집을 간수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고를 해보면 확실히 젊을땐 바빠서 늙으면 돈을 아껴야해서 못 갈 것만 같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가려면 미니멀리스트가 돈이 적게 들 것이니 책과 영상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야하는 나에겐 무리가 되려나? 


어쩌면 이번 해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알라딘주문을 넣었다. 다음 주중에는 받아볼 수 있으면 훌륭한 self gift가 될 것이다. 남에게 주는 건 있어도 남이 나에게 주는 선물은 별로 받아볼 일이 없는 나이가 되고나니 어쩌면 기쁨이든 슬픔이든 무엇이든 다 내가 하기 나름이란 생각이 든다. 


사무실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어둡고 쓸쓸한 겨울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 아침부터 꼬박 오후 한 시까지는 열심히 일했고 운동을 가려다가 추운 날씨와 코로나 막바지에 주저앉고나서는 뭔가 손에 잡히지 않았기에 일찍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다. 기실 책을 읽으려고 '달팽이 식당'을 꺼냈는데 우연히 서재를 열고 이렇게 씨부리고 있다가 시간이 가버렸다. 


 













요즘 즐겁게 읽고 있는 시리즈. 예전에 해적판으로 나왔던 것이 원제와 비슷한 의역으로 제대로 나와주고 있다. 일본어로는 '띠를 꽉묶어!'로 알고 있는데 '띠를 조여라!'보다는 뭔가 더 박력이 있고 만화에서 지향하는 스피릿을 잘 살린 것 같다. '야와라'와 함께 잘 만든 유도만화.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도 하나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는 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덕분에 몇 꼭지의 글을 제외하고는 그리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서경식선생의 글이 들어있어 구한 책인데 딱 그만큼이었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꽉찬 세상이니 당연히 이건 순전히 내가 이번에 느낀 것이 그렇다는 것.









아무래도 한 시간 정도는 더 버텨야 하루가 끝날 것 같다. 술이 땡기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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