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밀린 일들 중에서도 writing이 heavy한 것들을 추려서 정리할 계획이다. 이를 시작하는 월요일은 그래서 페이퍼로 열어보기로 했다. 언제나, 늘 그렇듯이 깊은 리딩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은 숫자에 연연하는 독서인생이라서 이번 달의 저조한 성적에 마음이 쓰였던 바, 마침 도착한 작은 책들을 위주로 한 권씩 열심히 읽은 덕분에 정리할 것들이 좀 쌓였기 때문이다. 글이란 쓰면서 계속 좋아진다고 생각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 이야기하지만 최근의 몇 년의 나를 보면서 그것도 case by case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읽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은데 난 반대로 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보다 더 나은 작품이라고, 아니 나에게는 '날씨가...'가 그렇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비록 둘 다 어느 정도 클리셰가 있기는 하지만 '사서함...'이 좀더 구태스럽게,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속이 뻔히 보이는 판타지적인 서사로 전개된 것 같고, '날씨가...'에서는 이런 면에 있어서 좀더 깊고 복잡한 서사를 보여준 것 같아서이다. 게다가 '날씨가...'에서는 굳이 드라마로 떠올리지 않더라도 고즈넉한 시골이라는 무대의 장점까지 겹친데 반해서 '사서함...'은 대도시의 방송국, 방송작가, PD 같은 소재가 나에겐 별로였고,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읽자마자 내가 유추한 이야기가 전개될 방향이나 디테일이 그대로 흘러갔다는 진부함도 보았기에 '날씨가...'를 읽고 기대한 뭔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면에서도 꽤 실망을 했다. 호불호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 생각해도 '날씨가...'가 더 좋다. 어쩌면 시골, 고향, 겨울, 서점, 글, 첫사랑 같은 테마에 더 끌리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전혀 모르고 읽게 된 책이, 심지어 흥미가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재미까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 책이 그렇게 우연히 다른 책을 통해서 만났고, 제목에서 떠올린 일제강점기 경성의 모던걸-모던보이의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이야기가 아닌, 실화에 바탕한 사회주의자들의 반체제투쟁과 독립운동, 그 후의 비참한 결말까지를 함축적으로 그린 소설이었다. 경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서울의 한 시대를 생각하면 종종 독립운동보다도 예술가들과 신세대 멋쟁이들, 혹은 김두한 같은 깡패들의 낭만담이 떠오르는 건 어찌된 이유일까. 대중소설이나 경성기담, 경성XXX 하는, 포커스가 다른 많은 책도 그 이유의 일부가 될텐데...


사회운동과 반독재투쟁을 하다가 학교에서 제적되어 지금까지 꽤 고생을 하면서 살았을 것 같은 작가의 사상적인 노선이나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바탕에 삼고 반체제투쟁을 하면서 독립투쟁을 했던 주요등장인물들의 배경에서 온 태생적인 관점을 한계는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건 건국 후 7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보면 아주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활발한 연구와 발굴을 거치면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이 정립될 것이니 이런 시도는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보수와 진보, 그리고 사회주의까지 넒은 사상의 애국지사들이 함께 독립투쟁을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사상적인 대립을 했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의 국가를 향해 나아갔던 사람들인데, 해방 후에는 남북한이 각각 괴뢰정권을 세워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배제하고 탄압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넘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남한에서는 게다가 친일파를 그대로 다시 등용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사회의 조류를 엎을 기회를 주었고 한국전쟁을 통해 남북한의 괴뢰정권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각각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계파와 세력을 영구적으로 제거한 결과가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남북대립이고 남한에서의 친일계승세력의 독재와 일제강점기미화가 된다. 뜨거운 가슴으로 사회를 개혁하고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이들의 역사는 한국근현대사의 중요한 연구과제가 아닐까 싶다.

















책과 출판, 서점에 관한 책을 읽어온 것도 십년이 넘었다. 그간 책장 하나 정도는 충분히 채울 정도로 이런 책이 모였으니 상당한 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또 새로운 책이 나오면 결국 구해서 읽는다. 세 권 모두 책읽기가 버거울 때, 슬럼프가 올 때 읽으면 좋겠다. 서점을 꾸려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기 때문에. '오늘도, 무사'와 책방 무사와 '서점의 말들'의 이상북스는 게다가 하필이면 어쩌면 지향점이나 경영의 현실에 있어 완전히 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이상북스는 지역사회에 잘 파고들어 이런 저런 이벤트와 아이디어가 돋보이긴 해도 기본적으로 책을 팔아서 유지되는 서점이라면, 책방 무사는 신수진이라는 본명보다 훨씬 잘 알려진 가수 요조가 시작한 프로젝트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책방 무사 또한 서점의 취지에 맞게 늘 책을 팔고 늘 누군가 서점을 지키지만 들여놓은 책의 양과 종류를 보면 서점운영만으로 먹고 산다고는 절대로 생각되지 않는 바, 이렇게 같으면서도 극단적으로 다른 두 서점의 이야기라니.  '작은 출판사...'는 여러 모로 내가 생각하는 어떤 나이대가 되면 꼭 시작할 나의 어떤 계획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었는데, 역시 일은 저지르고 볼 일이다. 생각만 하고 계획만 하다가는 완전히 날이 새는 걸 깨달으면서 목관에 실려 지구를 탈출하고 있을테니까. 


이렇게 제목을 다르게 한 덕분에 밴 다인의 같은 작품을 여럿 갖게 된 것처럼 같은 책을 두 권 갖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책을 고르고 조사해야 할 것이다. 'The Talented Mr. Ripley'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은 뒤 팬이 된 하이스미스의 작품 여럿을 구했는데 이번에 읽은 작품. 서스펜스도 괜찮지만 하이스미스의 작품세계에서는 이렇게 늘 선과 악의 경계는 흑백이 분명하지 않고 인간본성의 약함, 정신적인 면, 멘탈의 shift 등 다양한 것들을 explore한고, 내 추측이지만 상당히 강력한 게이코드가 숨겨져 있다. 교환살인이라는 아주 평범한 추리소설의 장치를 이용했지만 전혀 다른 구성과 전개와 결말이다.


요즘 중국작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이들이 즐겨 다루는 해방전쟁에서 개방까지의 시기, 특히 문화혁명시대에 대한 천착을 보면서 그 깊은 트라우마가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퍼져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최근 언제부터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금의 중국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음에서 차용된 일종의 풍자를 위한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금 중국에서, 아니 중국 바깥에서, 중국시민이나 출신을 넘어 중국경제의 입김이 미치는 모든 곳에서의 중국비난이나 비판은 제재의 대상이 된다. 미국 또한 다른 의미와 방법으로 세계의 깡패짓을 해온지 오래됐지만, 중국의 overreaching한 자세는 또다른 울분과 비분강개의 재료가 될 것이다. '하안'을 읽으면서 그 혼란스러웠던 해방전쟁 이후 모택동의 중국이 겪어온 세월을 보면서 시진핑의 중국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전히 쑤퉁의 최고작품은 '나, 제왕의 생애'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떤 책을 읽어도 그의 작품들은 꽤 대단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번 주에는 몇 권을 더 읽을 수 있을까. 6월이 한 주 정도 남은 지금까지 한 달의 독서는 겨우 열네 권. 갈수록 힘이 딸리는 걸 느끼면서 40-80까지 만 권을 읽겠다는 호기로운 포부가 벌써 흔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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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6-23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경성 트로이카에 대해선 저 보다 설명을 더 잘하시네요.
저의 글 보고 바로 사서 보셨나 봐요.
저 시대가 참 흥미로워요. 사상도 문화도 팽창일로에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사서함...>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긴한가 봅니다.
날씨가...는 얼마 전 jtbc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아직 보지는 못 했습니다.
영화 감독 한지승이 연출했더군요. 평점도 높고. 전 조만간 드라마로 볼 생각입니다.^^

transient-guest 2020-06-24 01:00   좋아요 1 | URL
제 설명이 더 잘된 것이라기 보다는 그냥 중구난방 떠들면서 말이 길어진 것 같습니다만. 님의 글을 보고 세 여자도 구했으니 조만간 말씀하신 바에 따라 같이 읽는 기회가 올 것 같습니다.

‘사서함...‘은 남자인 제 관점에서 보면 참 그런 면이 있어서 공감을 못했어요. 일단 제가 츤데레 같은 스타일은 좀 별로라고 보고, PD님이나 PD님과 작가님의 연애전선이 그런 면에서 너무 진부했거든요. ‘날씨가...‘도 드라마가 딱히 잘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지만 시골의 겨울풍경은 너무 예뻤습니다. 그걸로 충분했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