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감방하체운동루틴은 지금 상황에서 하체운동을 하기에 최고인 듯. 다리는 가볍고, 다리와 엉덩이까지 묵직하게 근육감이 느껴진다. 이번 달에는 벌써 87마일을, 81마일은 걸어서, 6마일은 뛰어서 움직였는데, 이젠 4-5마일 걷는 건 일도 아니다. 처음엔 2마일도 꽤 힘들었는데. 아침에 해가 뜰 무렵에 걷는 기분은 조깅하고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오늘 하려던 burpees full set은 중간에 반 조금 못하고 포기. 무릎이 아팠고 절대로 무리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특히 주말에 긴 거리를 걷고 뛰려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함을 잘 알기에. 


좀처럼 남이 권해서 책을 읽지는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어떻게 하다보니 '독서인간의 서재'라는 책을 타고 넘어온 끝에 이도우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장면은 예쁘지만 극화 자체는 좀 데면데면했던 드라마와는 달리, 하지만 드라마의 이쁜 시골풍경이 적절히 머릿속에 남은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마치 80년대 인천의 어느 외진 동네를 보는 것처럼 배경이 깔린 내 머릿속에서 잔잔하고 감성어린 어른의 연애와 그 밖의 많은 복잡한 것들을 잘 버무릴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남자가 어떻게 이런 좋은 감성으로 여자의 심리를 그려낼 수 있을까, 또 어쩌면 이다지도 feminine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결론적으로 작가는 여자라는 사실. 짧게 남기기도 했거니와, 지우나 서우 처럼 '우'자가 들어가는 여자이름이 많은데 도'우'는 왜 남자라고 그냥 짐작해버렸을까. 설마 이것이 내 성인지 감수성의 수준은 아니겠지요??? 은근히 걱정되는 70년대 어느 즈음에 태어나서 마흔의 중반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남자의 걱정이다. 


내친김에 작가의 산문집도 마저 읽었다. 아마도 중앙대 안성을 나오신 듯, 당시 시골 한복판에 세워진 학교에 대한 묘사가 있고, 소설을 그저 한 권 읽었을 뿐이지만 이미 차용된 듯한 모티브도 볼 수 있었다. 이미 50을 넘긴 작가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전까지는 많은 직업과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넉넉하게 쌓여 있어서일까, '문창과'출신 소설가들에 대한 내 편견이 누그러드는 순간을 경험했다. 남은 두 권의 소설은 좀더 아껴서 볼 생각이다. 겨울까지 기다려볼까 하는 생각도.


이젠 정말 늘어지는 이 작품. 와인을 좋아해서 매주 마시지만 여기서 다루는 와인들은 저가라고 해도 보통 3-40불대를 넘어가는 최소 중가와인들이 대부분이고,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 아직 제대로 마셔본 것이 없다. 주로 다루는 건 게다가 최고봉, 어쩌면 돈이 있어도 제대로 마시기 어려운 것들이라서, 아무리 묘사가 좋아도 이젠 좀 멀리서 보게 된다. 그저 마무리를 잘 하고 12사도의 정체를 밝히고 화해할 사람들은 화해하고, 맺어질 인연들은 맺어지면 좋겠다.


아직도 의문이다. 왜 지우나 서우는 여자로 바로 알게 되고, 도우는 남자라고 생각했는지. 


어제는 넷플릭스에서 'Trumbo'를 봤다. Red Scare가 한창이던 미국에서, 할리웃에 몰아닥친 광풍으로 인해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사냥을 당하던 시절 꿋꿋히 맞선 남자의 이야기. '로마의 휴일', '스파르타쿠스' '엑소더스'를 비롯한 대작의 시나리오작가이자 어려운 시절 ghost writer로 엄청난 양의 B급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대가의 일대기.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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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22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좋아했어요. 되게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인것 같은데 오래 남는 그런 이야기였거든요. 그 뒤에 [잠옷을 입으렴]은 별로여서,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도 안읽었는데, 트랜님 이 페이퍼 보니 읽어볼까 싶네요.
트랜님 사서함 110호 읽고난 후의 감상이 궁금해요. 제가 아는 남자사람은 도대체 이 책 읽고 뭘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거든요. ㅎㅎ

transient-guest 2020-05-22 10:58   좋아요 0 | URL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묵혀두고 읽을 거에요 ㅎㅎ 말씀한 그분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도 그런 감상을 가질지 궁금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