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Shelter in Place가 공표된 3/16부터 아마도 거의 같은 패턴으로, 하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다니지 못하고 갑자기 급전직하로 내려앉은 회사의 2/4분기 실적에 따라 매일 복리로 쌓이는 듯한 스트레스로 인해 책을 읽는 것도, 일에 대한 의욕도 다 떨어지고 그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운동 하나만 정신줄을 잡고 있는 것처럼 해나가고 있다. 


연초에 계획한 건 날씨가 좋아지면 프리다의 전시회도 가고 자동차로 다녀올 수 있는 관광명소들을 하나씩 찍어서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잘 풀린다면 3-5년 사이에는 하와이로 이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라도 더 많이 보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고, 가능하다면 그나마 이곳에서 동부를 통해 유럽을 가는 것이 조금 더 나은 방편이라서 유럽여행도 이곳에 살 때 좀 다녀볼 생각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계획과 2020년은 뭔가 그레이트한 해가 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연초의 예감이 무색하게 COVID-19을 완벽하게 말아먹은 트럼프와 개판에 오판이 쌓인 미국의 의료행정 탓에 모든 것이 일단은 다 정지된 것 같다.  5/31부터는 이곳조차도 단계적으로 열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갑자기 뭐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버티는 수 밖에.


하와이가 그리운 마음에 뒤적이면서 다시 읽은 '파라다이스의 가격'은 'New York,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가 조금 더 유명한 서진 작가와 배우자가 두 달 동안 오아후 섬에서 산 이야기다. 재밌는 건, 이 책을 처음 읽던 당시만 해도 하와이에 다녀오기 전이었다는 것 (으로 기억한다).  처음에 갔을 때도 좋았지만 그 뒤로 작년까지 오아후를 세 번, 빅아일랜드를 두 번, 마우이를 한 번 다녀오면서 계속 느낀 하와이의 매력에 빠져 나도 언제부터인지 이주를 계획하게 되었고, 그 전에도 내 마음 같아서는 짬이 날 때마다 가고 싶은 곳이다.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건 빅아일랜드라고 하지만 너무 시골이고 그래서 먹고 살 것을 고민해야 하고 게다가 화산이라도 터지는 날엔 재수가 없으면 집을 날려버릴 수도 있기에 패쓰; 마우이의 경우 좀더 나은 환경이지만 모든 것이 비싸고 상어가 상대적으로 더 많으며 한국의 서해안처럼 조금만 들어가도 낙차가 심해지는 해변이라서 역시 패쓰를 하고, 살기엔 너무 비싸고 너무 시골인, 너무너무 아름답다는 카우아이 또한 현실적으로는 멀기에 결국 오아후가 나에겐 제격이다. 그런 오아후에서 내가 머문 시간은 총 2주에서 2주 반 정도로 기억하는데, 역시 모든 걸 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던 듯, 이 책을 보니 가보지 못한 곳들이 너무 많다.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새우트럭의 새우는 그 값에 비해 너무 맛이 별로였었지만 와이키키를 중심으로 맛있는 오니기리와 무스비를 먹을 수 있고,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 가서 먹는 우동이 있고, 한국음식도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등, 음식도 아시안과 양식이 적당히 잘 퓨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역시 오아후가 최고라고 생각된다. 


언제 이주하게 될 지, 시험은 언제 어떻게 공부해서 다시 봐야 할 지, 막상 옮기면 하는 일은 잘 될지 등등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찾으면 끝이 없지만, 지금의 나로 사는 건 이번 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니 주저하지 말고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기왕이면 나이가 들었더라도 하와이에 어울리는 beach body를 만들어서 가면 더욱 좋겠다.  작가라는 인종이 부러운 큰 이유가 이런 뜬금없는 이주와 여행이 아닌가 싶다.  '비교적'이라도 '성공'했다는 단서가 붙어야 하겠지만, 그건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겠는가. 


한국에서 큰맘을 먹고 가는 여행이라서 그런지 많이들 보면 오아후 2-3일, 빅아일랜드 2-3일, 마우이 2-3일 정도로 한번에 다녀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고, 카우아이는 상대적으로 덜 가는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추천하는 건, 당연히 한번에 한 섬씩 다녀가고,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머물다 가는 것이다. 최소한 그 정도는 있어야 유명한 곳도 다니고, 하루종일 물놀이도 하고, 다운타운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평을 책으로 엮은 것 외에도 무척 많은 '책'이나 '독서'에 대한 책을 읽어왔다.  장정일 작가, 금정연 평론가, 그리고 최소한 러시아문학에 있어서는 undisputed champion과도 같은 로자선생 등이 기억에 남는 이 분야의 책들 중 이번에 구해서 읽은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서평집이지만 단순히 평가를 하거나 책을 소개하기 보다는 저자가 긴 독서인생에서 만난 명저들을 추리고 추려서 마흔 권을 고른 후 이를 권하기 위해 쓴 책이라고 봐야 옳겠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전혀 그 존재를 모르던 작가와 책들을 알게 되었고 몇 권 정도는 보관함에 담았고 바로 구할 책은 장바구니에 넣게 되었으니 저자가 의도한 바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자기만의 철학이나 깊은 배움과 오랜 연마를 통해 나오는 서평집도 좋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개도 좋겠지만, 이렇게 독서인생의 어느 즈음해서 자기가 읽은 것들 중에서 엄선된 양서를 남에게 적극적으로 권하는 것도 멋진 일 같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 2부작(?)의 두 번째. 최근에 나왔는데 벌써 초판이 아닌 2쇄라고 나온다. 요즘 같은 시대에 참 부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이미 마흔에 대학교에서 사람을 가르치고, 책도 잘 팔렸고 영화화되기도 했었고, 고정으로 하던 방송까지 (종종 홍보수단으로도 강력하게 작용하는) 있었으니 수입으로 보나, 위치로 보나 여러 모로 괜찮은 생활을 하던 그가 정작 글쓰기만 빼고는 다 잘 돌아가던 그 삶을 견디지 못하고 미국을 거쳐 이탈리아를 돌아다닌 과거의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많이 했고 많이 책으로 빼낸 이 짓(?)을 김영하는 이제 몇 번 정도 하게 되는 일인데, 향후 2-3년 간은 이런 일이 쉽지 않을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특히 이탈리아 하고도 시칠리아를 여행한 기억은 오랜 시간동안 특별하게 남을 것이다.  가성비가 끝내준다는 시칠리아의 와인과, 그날 잡아온 생선을 매일 구해서, 역시 즉석에서 만든 파스타와 즐길 수 있었던 그의 시칠리아 stay가 부럽기는 하지만, 내가 포인트로 잡고 있는 곳은 사실 로도스섬에서 쫓겨난 성요한기사단이 18세기까지 지배했던 몰타섬이다.  은근히, 아니 대놓고 이제는 어학연수를 하면서 여행을 다니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이곳이야말로 유럽여행의 base camp를 차리기에 적합한 곳 같은데, 언젠가 김영하 작가는 이곳을 가보려나?  


늘 좋다가 가끔씩 재수가 없다가 하는 김영하 작가가 방송에서 말했던 바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닌 '사놓고 읽는 것'이라는 말이 무절제한 책구매에 대한 단골변명이라서 그 방송을 본 이후로는 늘 그에게 빚을 지고 사는 기분이라면 조금 과장이겠지만, 어쨌든 가끔 느껴지는 과한 외국지향(?) 또는 외국 stay에 대한 자랑(?)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서는 비교적 호감도 높은 작가로 진화(?)한 것 같다.


대가이자 기인이라고 칭해지는 '할란 엔더슨'의 단편전집.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계속 SF를 출간해주는 '아작'에겐 늘 고맙다. 과거의 전집시대에는 어린이 혹은 청소년 버전이나마 SF의 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외판원들이 발품을 팔며 전국에 퍼뜨린 전집의 시대가 끝난 지금은 출판사에서 꾸준히 이렇게 SF를 내주지 않으면 여기 저기 나오는 것을 사서 띄엄띄엄 읽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SF는 척박한 출판시장에서도 마이너에 속하기 때문에 몇 권이 나오다가 시리즈가 끝나는 경우를 허다하게 많이 봤으니, 아작에서 계속 책이 나오는 건 그야말로 경이스럽다고 하겠다. 무척 혼란스럽게 이해가 어려운 것도 있고, 풍자로 가득한 사회성 짙은 소설도 있었는데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기승전결의 짜임새가 탄탄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야 한다.



'마의 산'을 몇 번의 실패 끝에 끝낸 것이 작년이니 2012년 경에 시작한 후 근 7-8년이 완독에 소요된 셈이다. 매번 중간에 끝내면 처음부터 다시 읽기를 시작하는 걸 기본방침으로 삼았기 때문에 다시 읽으면서 처음에 놓쳤거나 이해하지 못한 걸 볼 수 있었고, 덕분에 마지막의 성공한 완독은 상대적으로 기본내용은 충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명작으로 꼽히는 '부르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도 읽었던 바, 내용이 무척 촘촘하고 아주 깐깐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접근이 어려운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에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대가로서 가능하면 읽을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구해서 읽을 생각을 갖고 있다. 이번의 책을 시작으로 토마스 만의 단편 전집을 완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하는 바가 크다. 장편으로 나온 작품의 습작과도 같은 면도 있었는데 워낙 high density 스타일의 작가라서 이렇게 단편으로 보는 것도 처음 이 작가에게 다가가는 좋은 방법 같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도 중단편을 모아놓은 책으로 기억하는데, 이 역시 토마스 만을 처음 접하기에 나쁘지 않다.



일본에서 그의 문학사적인 위치나 찬사에 비해서는 아직도 난 그리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을 못 하고 있다. 여행기를 시작으로 두 편의 소설을 더 읽었는데 아직 그의 대작이라는 '둔황'을 읽지 못해서인지 이 둘의 소설은 솔직히 '그저 그렇다.'  '징기츠칸'은 그나마 나쁘지 않았지만 '공자'의 경우 읽는 동안 내내 이 고대라는 무대장치가 무색하게 '간사', '공자연구회' 등등의 현대어로 도배를 한 탓에 그 몰입도와 집중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정비석의 시대소설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서술하는 솜씨 등 여러 모로 필력이 그 이름만큼 대단한 작가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둔황'을 읽으면 모든 것이 더 명확해질런지?



내가 좋아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역사평설.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바로 그 다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결정된 사례들을 찾아서 열정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나폴레옹의 일화도 그랬고 레닌이 러시아로 돌아오게 되는 일, 처형 직전에 은사로 풀려난 도스토옙스키의 이야기, 톨스토이 등등 흥미로운 것이 많으니 누구의 말마따나 진짜 역사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경우도 왕왕 있는 일이다. 


늘 아쉽고 가슴 아프게 생각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최후는 나치나 히틀러 같은 인간들의 준동을 막아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바, 트럼프와 그의 일당이 획책하고 있는 수 많은 정치적, 사회적 테러를 막아야 할 이유라고 하겠다. 한국에서는 너무도 잘못 알려진 오바마의 대일정책 (결과만 보고 결정짓는 그에 대한 인식)이나 현재 트럼프의 대중국, 대일정책 (역시 마찬가지로) 등 트럼프에 대해 일견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으나 그는 인류의 주적이며 미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투기꾼 쓰레기에 다름 아니다. 이런 자들의 준동을 막아내고, 몰아낼 수 있는 수준의 시민역량이 필요한데, 정작 이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상하이'는 근대일본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디미트로스의 관'은 다른 제목으로 나온 같은 책을 함께 샀다는 사실에, '우리가 추방된 세계'는 그 독창성과 아이디어들에도 불구하고 한국문단의 고질적인 단편에서의 멈춤이 기억에 남는다. 이 부분은 기실 로쟈선생의 책을 읽고 평소에는 어렴풋이 느끼던 점을 구체화하게 된 건데, 늘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끝나는 듯한 전개의 갑작스러운 단절을 넘지 못하는 한국의 현대문학 전반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디미트리오스의 관'은 '...마스크'가 원제인 듯 한데, 같은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이 나오는 시리즈물로 생각하고 두 권을 모두 샀으니 낭비가 크다.  '상하이'에서는 식민지시대의 다양한 일본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수확이라고 하겠다.


대충 5월의 읽은 책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현재 11권을 읽은 것이니 5월 중에는 20권을 읽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  지금도 계속 2-3권을 붙잡고 있는데 진도가 너무 더디게 나간다. 그런 책들을 위주로 읽는 것도 있고, 머리가 복잡하고 의욕을 갖지 못하는 일상의 문제도 있다.  그저 노력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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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20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좋다가 가끔씩 재수가 없다가 하는 김영하 작가‘라는 말에 빵터졌네요. 저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몇 권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좀처럼 좋아지지도 않고 기다려지지도 않는 작가거든요. 좋다 싫다의 감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 작가랄까요. 작년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는 [여행의 이유]도 읽지 않았는데, 이번 신간이 이탈리아..와인... 이라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근시일내에 미국에 또 가고 싶었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1-2년간은... 어렵겠지요? 더 길어질수도 있을 테고요. 유럽도 그렇고... 저는 매해 낯선 곳으로 떠나는 걸 너무 좋아했는데 그걸 할 수 없다는게 너무 답답해요 ㅠㅠ 마스크 쓰는 것도 답답하지만 여행을 못가는 게 더 답답해요 ㅠㅠ

transient-guest 2020-05-20 09:05   좋아요 0 | URL
인터뷰나 강연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뭔가 좀 감정이 죽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작가에요. 저는 다락방님의 ‘감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는 말씀이 그런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아주 이상해요. 뭔가 웃고 즐기고 다 하는데, 동시에 자신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듯한.

예전에 강헌선생이 모르면 일단 시칠리아산 와인을 주문하라는 말을 하면서 와인이 많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 누가 시칠리아산이 뭔지 제대로 알겠냐면서 fake하는 방법이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들어보면 가성비도 좋고 맛난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여행도 하고 미술관도 가는 등 문화생활을 즐기기 시작했고 하는 일도 그럭저럭 어려운 와중에도 자리가 잡혀가고 있었느데 2/4분기가 완전히 다 털어먹었네요. 당분간은 한국 국내여행이 더 나은 방향 같아요. 아무래도 유럽의 경우엔 아시아인에 대한 포비아가 넘칠 듯...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