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술을 좋아한다는 건 내 서재에 들려본 분들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종종 술을 마시는 사진이나 술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지금도 다르지 않고 집에도 와인이 대충 따져봐도 스무 병 정도는 있고 회사에도 나중에 마시려고 숨겨 놓은 와인이 열 병 정도는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요즘은 술값이 싼 편이지만 와인, 그것도 뉴월드 와인의 경우에는 특히 참 좋은 가격에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접할 수 있는데 보르도 와인을 이긴 바 있는 나파 밸리, 소노마, 칼리스토가 일대가 자동차로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고 남쪽으로 조금 더 멀리 내려가면 산타바바라 와이너리가 펼쳐진다. 거기에 가성비 최고를 자랑하는 칠레나 아르헨티나의 와인 산지가 어쨌든 연결된 대륙에 위치해 있으니 '신의 물방울'이나 후속편 '마리아주'에서 다뤄지는 수준의 중급에서 최고급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늘 부담 없는 가격에 좋은 와인을 마실 수 있다.  맥주나 스피릿의 경우도 정말 많은 종류를 좋은 가격에 구할 수 있는데, 내가 아는 한에서는 아무리 요즘 한국도 가격이 많이 안정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곳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소주나 막걸리도 비교적 다양한 종류가 여러 경로로 한인마트를 통해 들어오는데 한국보다는 비싸지만 이곳에 물가로 볼 때 그리 부담되는 수준이 아니니 좀더 양질의 로컬 막걸리를 마실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럭저럭 괜찮다.  


10월에서 11월 사이에 상당한 양의 술을 마시는 등 내 패턴이 엉망이 되었다는 불평을 많이 했었다. 우습게도 그 후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술을 조금만 마셔도 금방 배가 부르는 걸 느낀다. 갑자기 양이 확 줄어든 수준은 아니고 그저 예전보다는 양이 줄어든 느낌인데 아무래도 나이 탓이 아닌가 싶다. 마치 엘러지라도 생긴 듯, 어느 정도 마시다 보면 딱 더 마시고 싶지 않은 지점이 오는데 안주발도 좀 있는 편이라서 그 지점에 이르면 진짜 한 잔도 더 마시고 싶지 않게 된다.  열심히 하루를 보낸 오늘 잠깐 시원한 맥주의 유혹이 있었으나 이 같은 이유로 샐러드를 한 바가지 만들고 엊그제 먹다 남은 Costco 닭을 좀 먹었더니 술생각이 싹 달아나 버렸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간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술을 덜 먹으면 그 만큼 안주로 먹는 음식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내 다이어트는 결국 술과의 싸움이다.  


몇 명의 작가를 전작했는데 그 시작이 무라카미 하루키였던 바, 지금도 그의 작품은 모두 구해서 본다. 거기에 중간 중간 생각이 나면 이런 저런 단편이나 에세이를 읽을 정도로 여전히 그의 작품은 많은 상상과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 수영을 하는 것처럼 나도 열심히 근육운동에 달리기와 스핀을 병행한다. 그가 말해온 바, 건강한 생활과 좋은 작품을 쓰는 상관관계를 믿기에 나 역시 건강한 생활이 좋은 업무성과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간 날씨 등등의 이유로 다소 게을리 한 달리기를 다시 제대로 해볼 생각이다.  달리기가 싫은 날엔 근육단련 후 최소한 스핀을 30분 정도 더해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다만 달리기와는 많이 다른 몸쓰기라서 달리기를 꾸준히 할 때처럼 다리가 가벼워지지는 않기 때문에 역시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언젠가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이렇게 여전히 열심히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스무 편이 넘는 단편을 싣고 나온 책. '코끼리 공장의...' '중국행 슬로보트...' '태엽 감는 새' 그 외에도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다양한 중편과 장편의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들로 넘치는 이 책도 구한 지 4년 만에 내 손에 들어왔다.  사무실을 차리던 2012년, 우연히 손에 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는 것으로 시작된 그의 전작시절이 떠오르며 간만에 즐겁게 그의 글을 읽었다. 


에세이나 한 두 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이 단편으로, 거기서 좀더 다듬어진 중편으로, 다시 구성이 정리된 장편으로 바뀌는 과정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예전에 조정래 선생의 단편 모음에서도 그런 과정을 엿보기는 했지만 습작 이상의 독립성을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경우 단편이나 중편으로 옮겨지는 과정의 이야기들은 그 나름대로 작품으로서의 독립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이 어쩌면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은 2002년에 나왔는데 모은 글들은 그 보다 더 오래 전에 쓰인 것들인데 2002년도 이미 17년 전의 일인 2019년의 지금에 보면 그저 모든 것이 엄청나게 오래 전의 일로 느껴진다.  역설적으로 늙은 지금의 내 몸이 아마 그 때의 내 몸보다 여러 모로 더 강건할 것이다.

사람은 그래서 꾸준히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이에 비해서 젊고 건강한 생활을 하려면 말이다.


참 이상하다. 광주, 도쿄엔 가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리즈에서 이 두 도시를 다룬 책은 읽는 내내 공감하며 가본 적 없는 거리 곳곳을 걸어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꼈었다. 그 다음, 세 번째로 읽은 '받아쓰기'에서는 거듭되는 작가의 두통과 축축한 기숙사의 침대와 공기에 지쳐 피곤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번의 용산. 서울내기가 아니라서 속속들이 서울의 곳곳을 알기는 커녕 강남역 일대, 압구정동, 청담동, 대학로가 있는 혜화동의 옛날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수준이지만 용산의 거리가 이다지도 낯설 줄이야.  순수하게 나의 느낌이니 오해는 없기를 바라지만 정말이지 읽는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묵직함이 감동을 주기보다는 작위적이랄까, 뭔가 학습된 복잡한 사유 같았다. 읽는 책이 늘 즐거움을 줄 수는 없고 불편함도, 괴로움도 그 외의 모든 것도 책을 읽으면서 얻는 소중한 경험이지만 뭔가 강제된 듯한, 아니면 특정한 세대에서 보여지는 이유 없는 무거움은 좀 버겁다. 내용이 그런 것도 아니고 글을 만드는 작법인지 무언지 모를 곳에서 그런 요소를 느낀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와 작법과 구성으로 글을 쓰고 그들 중 극히 일부의 일부가 되기에도 모자란 양이 내 눈길을 끌어 언젠가 내 서재에 모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인연들 중 이런 것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나에게 복잡하고 무거운 사유를 권하려면 그 이유는 좀 알고 싶다.


정확한 통계를 찾아본 적은 없으나 세계 곳곳엔 남의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살이를 하거나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면의 기사를 보면 법치가 비교적 잘 이루어진 것으로 포장된, 즉 법치국가의 facade가 완벽한 이곳에서도 종종 지난하고도 지난한 과정을 거쳐 수십 년간의 옥살이 끝에 무죄가 입증되어 풀려나는 사람들이 종종 나온다. 이 소설은 그런 일을 하는 변호사의 활약을 통해 풀려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늘 일정한 수준이 넘는 재미를 주는 John Grisham의 작품이라서 좋은 가격에 하드커더로 구입해서 잘 읽었다. 


최근 정치적인 이유로 검찰과 사회, 정권의 공격을 받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잃고도 죄인 취급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자국에서조차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관변단체와 정치인으로부터 모욕을 당한 할머니들이 있었으며, 바른 삶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밥그릇을 지키려는 검찰과 이들과 합세한 언론, 그리고 극우정치인들에게 가족과 사돈의 팔촌까지 탍탈 털린 사람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당하는 상처는 상상을 초월할진데 하물며 감옥까지 간다면 보통 멘탈로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경우 오랜 옥살이 끝에 무죄로 풀려나면 보통은 징벌적 피해보상이 포함된 수십 억에서 수백 억 단위의 소송이 제기되고 합의로 처리된 후 변호사가 통상의 관행에 따라 40% 정도를 가져가더라도 평생 부유하게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수준의 거액이 피해자에게 주어진다. 돈으로 그 억울한 세월을 보상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의 도리는 하는 것이라 여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 정치인, 재벌 같은 소위 사회의 '지도층', 혹은 관계상 갑에게 책임을 물을 땐 징벌적 피해보상이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뭘 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 21세기 대한민국엔 말이다.  '징집'되어 '의무'로 군대생활을 하다 다쳐도, 아니 평생 고칠 수 없는 불구나 장애를 얻어도, 심지어 죽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책임자가 처벌되는 경우도 거의 없는 대한민국엔 말이다.  


노는 일 말고 로또를 맞으면 하고 싶은 일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장학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집단과의 비밀스러운 싸움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당연히 없지만 그런 맘이 든다.  내 기질에 맞게 한 놈만 패더라도 아주 징하게 패는 그런 covert한 싸움을 꿈꿔본다. 


격렬한 운동을 한 다음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다. 혹사당한 몸을 간이 회복시켜야 하는데 그 힘이 오롯히 몸으로 가지 못하고 술을 해독하는데 쓰이기 때문이다. 별 생각 없이 들었던 말인데 은근히 신빙성이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고로 운동을 하고 온 오늘도 술을 마시지는 못할 것 같다.  뭔가 심심한 지금을 Monday Night Football을 보면서 풀고 있다. 그렇게 12월 둘째 주의 첫 날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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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9-12-10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그리샴 책 올리신 거 궁금해요. 덧붙이신 이야기도 역시 미국이다 그런 생각 하게 만들고. 아 페이퍼 읽으니까 미세먼지 오늘도 한가득인데 내일은 더 심해진다고 하고 다른 나라로 휙 날아가고싶어지네요. 현실 불가능하지만. 로또 이야기 멋져요. 크크크 하고 웃었습니다.

transient-guest 2019-12-11 07:25   좋아요 0 | URL
따로 구하지 않고 그냥 빌려 읽으셔도 무방합니다만 도서관에 구비해놨을지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어요.ㅎ 확실히 이곳 공기가 좋긴 한가봐요. 지난 7-8년간 인구가 너무 늘어서 엄청 나빠졌어도 중국 옆에 있는 한국보다는 낫다고 하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