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낮에 운동장을 뛰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해가 중천에 뜬 점심시간 무렵이었기에 햇살이 너무 강해서 예정했던 5마일을 채우지 못하고 3마일 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봄이 오는 듯 따스한 햇살과 적절한 온도의 바람은 좋았으나 꽃가루 엘러지를 생각하지 못한 건 나의 실수였다. 덕분에 자정이 넘도록 콧물을 흘리면서 뒤척거리다가 서랍 어딘가를 뒤져 작년 이맘 때 먹다 남은 엘러지약을 찾아냈다. 


3월과 4월 그리고 지금까지도 마구 먹고 마신 탓인지 운동은 오히려 더 많이 다양하게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늘어난 느낌이다. 나이를 먹으면서는 일년마다 열량소모가 떨어지는 듯, 작년하고는 또 다른, 다소 낮아진 듯한 소화력이 아닌가 싶다.  결국 나이를 먹을수록 소식하고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는 건 나이와 함께 점점 더 힘이 들게 되므로 결과적으로는 적게 먹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식성이 좋아야한다는 뜻으로 배고파야 젊은이라는 말을 듣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내가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해주어야 할 것만 같다.  써놓고 보니 약간 서글프다.  그 시절 그 말을 듣던 내 모습도 떠오르고.


물뚝심송이란 필명으로 글도 쓰고 책도 쓰고 팟캐스트도 하시던 올드타이머 박성호씨가 암으로 투병하시다 5월 12일 돌아가셨다.  호불호가 갈리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연배에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분인데 명복을 빈다.  쓸모없는 놈들은 오래 잘 사는데 쓸모있는 사람들은 왜 이리도 빨리 가는 건지.


조기숙교수가 조병갑의 증손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굳이 분류하면 '우리'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인데 갑자기 뭔가 기분이 묘하다. 조병갑은 고부군수로써 전봉준장군의 동학무장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학정의 탐관오리였다.  이런 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처세를 어찌나 잘 했으면 나중엔 고등재판관이 되어 동학 2대 접수인 최시형선생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자리까지 갔고 그 아들, 조기숙교수의 할아버지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기자로 일했다고 하니 대충 이 땅의 지배층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친일세력의 tech tree가 그려진다.  과거는 그렇다해도 조기숙교수의 말이 더 황당한데 조병갑이 탐관오리가 아니었다고, 역사가 잘못 기록되었고 말하자면 동학난의 이유로 역사에 기록된 것은 그 나름대로 희생양이 된 것이라는 취지의 인터뷰.  조기숙교수가 조병갑의 증손이거나 친일파의 자손이라서가 아니라 이딴 개소리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의 책을 읽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인정하고 말 일이지...뭐 그리 대단한 집안이라고...잘하면 언젠가 이 사람도 이인호처럼 돌아서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다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남은 2018년을 살아가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환경이 어쩔 수 없다면 내 자신이라도 계획했던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시류까지 나의 편으로 돌려놓겠다는 각오로...


그나저나 시간 참 빠르다. 벌써 5월 중순이 다가오고 다음 달이면 6월, 한 해의 반이니 말이다. 이젠 정말 시간 가는 것이 무서운 나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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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3 0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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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0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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