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근교대라는 것이 있었다. 근대일본의 탄생 이전까지 300년 동안 일본을 지배했던 도쿠가와막부가 군웅할거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지역의 영주들에게 막대한 재정부담을 주기 위해 고안한 이 제도에 따르면 각 지역의 영주들은 정해진 순번에 따라 2-3년에 한번씩 막부가 있는 에도에 와서 근무하게 되어 있었다. 짧은 근무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정실과 자식을 에도에 두고 영지를 오가는 제도였으며 지위와 녹봉에 맞는 수준의 규모로 여행을 꾸려야 했기 때문에 참근교대로 인한 영주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하며 도쿠가와막부는 덕분에 이전에 일본을 손에 넣었던 세력과는 달리 오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모든 일에는 돈이 드는 법인데, 당시의 교통사정을 고려하면 영주는 좀 잊을만하면 본거지로 돌아갔다가 다시 좀 시간이 지났는가 싶으면 어느새 에도로 상경하고 있었고 이 여행경비 외에도 두집살림이라는 것이 원래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서 반란을 획책할 돈이 없었다고 한다.  가난한 번의 경우에는 이 참근교대는 정말 큰 부담으로 작용했는데, 전체로 보면 결국 이 참근교대비용, 그리고 당시의 엄격했던 직업과 계층간의 이동제약 같은 것들은 무사계급의 경제적인 몰락을 가져왔고, 근대무기의 발달과 오랜 평화로 인해 검술이나 무술이 갖고 있던 위치도 덩달아 떨어지면서 종국에는 무사계급이 떠받치고 있던 막부자체가 무너지게 된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번에 구한 '낭만픽션'시리즈는 상당부분 낭만과 이상적인 모습의 영주와 무사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 스토리의 재미도 좋았지만, 남자답고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독성이 매우 좋은 소설이었다.  가난하지만 인간적인 영주에게 갑작스러운 '참근교대'명령이 하달된다. 문제는 돈이 한푼도 없는 번이고 이미 얼마 전에 에도에 다녀왔다는 것.  안 가면 무조건 할복이고 가자니 돈이 없어서 기한을 맞춰 번의 수준에 입각한 여행을 꾸릴 수도 없어 어차피 할복인 상황이다.  모든 건 이 번을 빼앗아 다른 이에게 넘기려는 막부고관의 수작이다.  물론 '낭만'스러운 '픽션'에 맞게 주인공일행은 피나는 노력과 기연으로 해피엔딩을 맞지만 막부의 최고권력자의 냉정한 면은 '낭만'뒤에 숨은 현실을 보여주는 듯 매우 마키아벨리적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나라와 시대를 막론하고 시대극은 즐겁다.  










어느 세월이면 이 소설이 완결될까. 아마존을 뒤져봤더니 최소한 5권까지는 있었고 작품과 작가의 위상에 더해 책의 희소가치를 입증하듯 고작 페이퍼백 헌책 한 권이 $150도 있고 $960도 있다.  정말이지 이럴 때마다 생각하지만 책의 세계는 넓고도 깊어서 내가 모르는 명작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인연이 닿지 않을 책들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우주와도 같은 것이 책을 매개로 한 '지'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세 번째 권으로 넘어가면서 player가 하나 더 늘었다. 지금까지는 지구인, 아주 머나먼 과거에서 시간속을 달려 지구의 현재로 온 가니메데인, 그들의 모성인 거인별의 사람들, 여기에 아주 오래 전 지구에서 갈라져나와 거인별에서 키워진 호모 사피엔스계의 인간종이 새로 등장하는데, 현재의 지구인이 많이 떨쳐낸, 떨쳐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악'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음모를 꾸미는 흑막으로 등장한다.  드라마도 그렇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점 더 많은 player들이 도입되는 건 결국 소설을 길게 끌어가기 위함이다.  비록 여러 권으로 되어 있지만 한 권이 끝날 때에는 대략 그 한 권의 주요상황이 정리되어 끝없이 다음 권을 기다리지 않아도 적절히 만족할 수 있는 점은 큰 플러스다.  미래의 과학은 SF를 통해 구현되는,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과학기술들을 어떻게 끄집어낼까 궁금하다.  


기사 윌리엄은 사자심왕 리처드의 아버지시절부터 용맹을 떨친 당시 기사도의 전형으로 역사에 남은 유명한 기사다.  불충분한 사료와 정황자료 그리고 전승을 바탕으로 추적한 그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은 하지만 어딘가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를 갖추고 있어 다소 지루했다.  '신해철'은 입담이 좋은 강헌선생이 연배와 지위를 떠나 친하게 지냈던 뮤지션 신해철을 정리한 책인데 주요내용은 이미 팟캐스트에서 많이 다뤄졌기에 읽는 신선함은 조금 떨어졌다.  신해철에 대해 잘 정리한 책인데, 어떤 의미로는 공감이 좀 어려운 부분도 있다.  '다리 위 미친 여자'는 장편이 아닌 단편모음의 한 작품인데, 쑤퉁의 이번 책은 솔직히 그저 그랬다.  뭔가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그 상태에서 끝난 듯한 작품도 더러 있는데 아무리 짧은 구성이라도 기승전결은 제대로 갖춰주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  


이번 달의 독서는 순항중이다.  지금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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