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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도 일단 따끔따끔하다. 게다가 근대성이라는 개념에 천착해온 노학자가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띄우는 44통의 편지라니. 제목이 따끔해온던 차에 괜히 따스해지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들은 <여성들을 위한 라 레푸블리카> 라는 이탈리아 주간지에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근 2년간 실었던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모은 것이다. 이렇게 친절히 한글로 번역된 책이 아니었다면 읽지 못했을 편지들을 지금 내가 받아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동하는 이 세계를 조금은 실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시대에 던지는,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띄우는 학자들의 이론 내지 주장은  차고 넘치지만, 근대성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깊게 파고들어간 학자가 바라본 시대의 통찰이라는 점에서 책은 충분히 제 몫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이 시대를 '유동하는 근대'로 정의내린 저자는 또 하나의 시대 정의를 내놓고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연결과 만남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금의 세대가 혼자있음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세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잡아내고 있다. 또한 트위터, 프라이버시, 10대의 문화, 유행, 쇼핑 등과 같은 노학자가 따라잡기 힘들 것 같은 최신 사회경향을 짚어내는 안목과 건강, 교육, 위기 등 다양한 키워드로 사회현상을 진단하는 저자의 넓은 스펙트럼은 44통의 편지의 소재로 고스란히 묻어난다. 


유동하는 근대와 고독과의 연관성은 저자의 생각에 의하면 자연스러운 추론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혁신하고 변화하라는 명령에 의해 살아가는 우리는 좁고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변화는 유동하는 근대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세대들에게 나타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유동하는 시공간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사람들은 그렇다면 고독의 실종을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는 어쩌면, 44통의 편지를 통해 잃어버린 그 시간들을 찾으려는 노력에 대한 당부를 넌지시 심어둔 듯 하다. 그리고 바우만으로부터 받은 44통의 편지를 읽어가는 그 순간, 당신은 어쩌면 벌써 그 노력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불행의 근원은 인간에게는 조용히 혼자서 자신의 방에서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라던 파스칼의 예언같은 이 말이 바우만의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확인된다는 것에 괜히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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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먹는 것을 워낙에야 좋아하는 나로서는 선뜻 이 책을 펼쳐들기가 어려웠다. 제목에서도 연상되다시피, 어떤 어떤 음식을 먹지 말아라 하는 류의 경고문이 가득 적혀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두려움으로 책을 펴드는데 이게 웬 걸. 책은 분명 일침을 가하고 있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런 류의 경고문은 아니었다. '음식' 그 체가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여러 루머'에 대한 경고를 설득력있게 서술한 이 책은 음식을 둘러싼 과학, 역사, 경제, 심리학 등 다양한 방면을 두루 다루며 그 근거를 구축해놓았다.


독약으로 치부된 화학적 식품 첨가물, 영양덩어리에서 건강을 해치는 악덩어리가 된 우유, 생명연장의 묘약이던 야구르트의 물거품이 된 꿈. 등 이 책에서 다루는 식료품들은 소비자들의 열광을 끌어오기도 했지만, 반대로 위협적인 공포를 심어주기도 했다. 어떤 때는 건강을 부르는 식품으로, 또 어떤 때는 건강을 해치는 식품으로, 이렇게 극과 극으로 움직이는 음식들, 과연 무엇이 문제인걸까? 


이 책은 '음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음식, 그 자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음식을 어떻게 요리할까를 궁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이 음식을 요리해서 소비자들의 돈주머니를 열게 할까에만 초점을 둔 각계 각층 이해관계자들의 담합, 즉 그들의 꼼수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급자족으로 음식을 손수 마련했던 옛 시대의 사람들에게 음식은 곧 믿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논과 밭에서 기르고 수확한 곡물들과 이웃들로부터 산 식재료들이 그들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신뢰'를 바탕에 두고 있었다. 한 마디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면서 우리들의 식탁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식재료로, 베일에 쌓인 유통, 조리 과정으로 올라온 식탁의 음식들을 믿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아니, 지금은 믿을 수 없는 정도를 넘어서서 무감각해져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무감각해진 혀와 둔감해진 뇌는 미국인 특유의 청교도적 죄의식과 만나 쉽고 편하게 조리된 음식에 대한 죄의식으로 자기 자신을 철저히 절제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완벽한 조합이 음식공포를 탄생케 한 것이다. 


소위 전문가들의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전문적 견해 한마디에 소비자들은 공포에 떨며 혹은 안심하며 음식을 끊고 다시 산다. 그것도 같은 음식들에 대해서. 입에 들어가는 음식조차도 믿을 것이 못되어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유일하게 안식할 수 있는 것은 전문가의 '뻔한' 그 말한마디였고, 그것은 언론을 타고 보다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하비 리벤스테인은 고로 독자에게 말한다. 전문가와 언론들,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이 꼼수를 부린 그 말 한마디에 빨리 반응할 필요는 절대 없다고 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자세로, 끈기있게 기다리다보면 음식공포를 조장한 루머들이 걷히게 되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런 저런 충고들과 조언에 지치시거나 혹은 슬슬 짜증이 날 법도 한 독자가 읽으면 그야말로 통쾌함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즐기는 것, 그리고 음식은 무엇이든 '적당히' 정신으로. 


우리가 두려워해야하고 경계야 할 것이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배후에 있는'공포조장자'들이라는 사실을 낱낱이 폭로해 준 이 책에 나 같은 호식가들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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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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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라는 지성의 상아탑에서 내 눈에 가장 인상깊었던 문구를 고르라하면,

단연 '마르크스'라는 이름이 적힌 포스터들이다.

학교 게시판에는 늘 '이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시간'이라던가,

'마르크스 자본론읽기 세미나' 따위의 현수막이 늘 붙어있던 것 같다.


마르크스는 곧, 공산주의 곧, 빨갱이라는 단편적이고 유치한 공식논리를 가지고 있던 나는

읽어선 안 될 금기의 인물과 사상이 대학가에서는 외려 꼭 해야만 할 필수의 권장사항인 듯한

느낌에 약간의 겁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주의의 동기나 선후배 중에서는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마르크스주의이니,

자본론이니, 공산당 선언이니 하는 것들에는 관심 밖의 일상을 지냈던 것 같다.

그 예전 대학가에 사람들은 사상에 불온한 영향을 끼치는 소위 금지된 빨간 책을

지하방에서 돌려 읽어가며 밤새 토론에 열을 올렸다지만, 글쎄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의 어구는 더 이상 뜨거운 이야깃거리나 관심사로부터 멀어진지 오래다.


그래도 수업시간 종종,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 얼핏 몇 가지 주워들었던 것들은 있었다.

이른바 헤겔 철학의'위로부터의 혁명'이 지배적이던 당대 사회를 뒤흔들었던 

마르크스의 철학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관념론이 아닌 철저한 유물론적 사관으로

역사가 흘러가야 함을 주장한 그는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 밖에 없는 

프롤레탈리아가 혁명의 주체가 되어 국가중심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체제하에

전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할 것을 외쳤다.


유럽을 떠돌던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동유럽으로까지

떠돌게 되었으며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선언문을 따라 공산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완벽한 것 처럼 보였던, 그리고 근, 현대 사회를 이끌어갈 유일한 이론으로 추앙받던

공산주의는, 구소련의 몰락을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종언'을 맞이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는 왜 실패의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논쟁은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인 논쟁이다. 그리고 이 책은 마르크스에서부터 시작된 공산주의의 승리와 실패의 흥망성쇠 역사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로 부터의 공산주의 원론밖에 알지 못했던 나같은 독자들은 필연, 왜 각 나라로 번져나간 공산주의가 지금과 같은 붕괴를 맞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와 과정에 대해 나름대로 그 분석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는 그 이론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말처럼, 각 나라에 퍼져나간 공산주의는 그 민족적 전통성이 가미된 형태로 계속 진보 발전해나가기도 했지만, 쇠퇴의 길을 걷기도 했다. 책은 그 과정을 충실히 따라간다. 1917년 이전의 기원에서부터 공산주의의 실험이 시작되던 1929년까지의 기간과, 29여년간을 도약해 나가던 때, 57년까지 지속된 확산과 20여년간의 변형 그리고 80년 이후의 종언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 역사의 세계사를 저자는 꼭꼭 담아내었다.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이념이 실현되었을 때 가장 파괴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공산주의를 깊이있게 보다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단순한 백과사전식 나열에서 벗어나

거대한 흐름을 비교적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다. 

공산국가 간의 비교를 통한 차이와 공통점을 발견한 저자의 방대한 이 책은 가히 공산주의 대서사시라 칭할 만 하다.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에 대해 어렴풋하게만 알고있는, 그러나 그 어렴풋한 지식을 확실하게 다지고 싶은 독자에게 두말없이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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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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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빠르게 역사적 유물이 되어 갔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큰 참나무인 줄 알고 주위를 산책했던 공산주의가 실제로는 하찮은 버섯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1917, 10월 혁명 러시아 레닌

1949, 중화인민공화국 마오쩌둥 

북한, 베트남

1959, 쿠바 카스트로

1970 초 칠레


*화급


당이 지배를 독점하는 일은 묵인되었다. 도갲와 테러는 노동자를 위한 포괄적인 복지 체제를 감독하기 위한 도구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혁명가들은 정치, 경제, 문화, 민족적 억압을 종결할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적들이 하는 말로는 자본주의는 곧 절멸될 예정이었다. 


공산주의는 과학적이고 인도주의적이며 막을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되었다. 인류의 필연적이고 바람직한 미래라고 주장되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궁극적 비전이 실현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예기치 못했던 일은 국제 공산주의의 내분이었다. 


마르크스주의 창건자들의 불변의 관념을 수정하려고 하는 것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에게 더 큰 죄악은 없었다. 


유러코뮤니즘; 서유럽, 이탈리아 에스파냐에서 공산당은 소련이 제공한 모델에서 조금씩 탈피

무장혁명이 아니라 선거 등 합법적인 방법으로 공산주의 정권 수립, 다당제 허용하며 종교 단체와도 협력한다는 독자 노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은 결코 단일하지 않았다.


공산주의 국가만큼이나 많은 공산주의 변종이 존재했다.


공산주의 프로젝트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1917년 이후의 세계 전반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하거나 쓸 수 없었다. 


1970~73년까지 칠레에서 존속ㄹ한 아옌데의 연립정부를 제외하고 공산주의 통치 기록은 일반적으로 독재와 경찰 테러, 엄청난 인권 유린으로 이어졌다. 


공산주의 통치자들은 엔진을 멈추고 무선 통신을 중단하는 잠수함 사령관 같았다. 


이런 정보 차단은 공산주의자들이 우월한 사회 조직 방식을 갖고 있다고 계속 주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공산주의는 정치적 자유, 문화적 기회, 사회적 물질적 복지를 제공하는 능력에서 자본주의를 능가한다고 가정되었다. 


스탈린의 소련은 전체주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했따. 히틀러의 제3제국처럼 소비에트 체제는 공정한 선거와 법치를 억압했고 테러를 지시했다. 


지난날에는 가장 야심적이던 독재 체제도 많은 전통을 짓밟고 집단과 조직을 절멸하기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에는 사회를 전복해서 자신의 이미지에 따라 재건하고자 하는 정치 운동들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 운동들-좌로는 공산주의자들, 우로는 파시스트들-은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자율적 결사의 흔적을 깡그리 파괴했다. 


완벽한 모델에서 벗어나지 않은 공산주의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집권한 공산주의는 도처에서 문제가 있었다. 공산주의는 자신의 목적에 대한 사회적 분노나 무관심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 또 혁명 전의 문화를 완전히 근절하지도 못했다. 종교를 탄압했지만 제거하는 데는 실패했다. 공산주의의 노동 규율은 대체로 엉망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국가의 사멸'을 예측했다. 공산주의 역사는 그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국가 권력은 급속도로 강화되었다. 노동수용소는 확산되었다. 공산주의에 적대적인 개인과 집단을 억압하는 일은 현상 유지를 위해 계속 필요했다. 시민 사회는 분쇄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밝은 희망이 왜 좌절되었는지는 끊임없는 논쟁의 주제였다. ...

진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불완전하고 일관되지 못한 유산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들의 후계자는 적법하게 자유로이 반대 의견을 표명할 수 있었다. 이데올로기 분쟁은 마르크스주의 유전자의 특징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곤경을 예상치 못했다는 점에서 어리석었다. 


예외가 있음은 규칙이 있다는 증거다.


각 공산주의 체제의 민족적 측면은 언제나 중요했다.


오래 지속된 공산주의 체제들은 여러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 체제들은 경쟁 정당을 없애거나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종교, 문화, 시민 사회를 공격했다. 공산주의 통치부가 용인한 민족성 외에는 어떤 형태으 ㅣ민족성도 짓밟았다. 공산주의 체제들은 사법과 언론의 자율성을 철폐했다. 권력을 중앙 집중화했다. 반체제 인사들을 강제 노동 수용소에 수감했다. 보안경찰과 정보원들의 네트워크를 수립했다. 교리의 무오류성을 주장했고 자기들이 인간사의 무결점 과학자라고 과시했다. 정치와 문화에서 외부의 영향력에 맞서 사회를 고립시켰다. 국경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사회 생활의 모든 면을 당국의 개입이 필요한 것으로 취급했다. 인민들을 동원 대상으로 다루었다. 생태나 관용, 관습을 거의 존중하지 않았따. 이러한 공통점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일반화해 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코뮤니스트, 로버스 서비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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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
유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옛이야기를 들어볼 이유는, 그것이 어쩌면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깨달음을 줄 수도 있으니"

라던 저자의 서문을 계속 곱씹어 보는 건,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던지는 오싹한 공포와 연민이 

책 속의 오래된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면면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었던 고전들은 어쩌면 '정석'에 맞춰진 정설일 가능성이 크다. 

가르치고 배우기에 알맞은 내용으로 일부의 내용은 확대되고 또 어떤 내용은 축소된 그 틀 안에서

우리는 고전을 가르쳐왔고 배워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정석'의 '정설'을 뒤엎는 통쾌한 시도를 한다. 고전은 이래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공식을 과감히 깨부수고, 작가의 기발한 통찰력으로 당대와 지금을 관통하는

몇 가지의 코드를 짚어낸다. 


세속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구운몽>은 이 책에서 '정절과 포르노크래피를 동시에 꿈꾸는 가부장의 이중생활'이라는 발칙한 이야기가 되고,

호부호형 하지 못한 설움을 받았던 그 유명한 <홍길동전>은 이 책에서 더 이상 홍길동이 쌓았던 의로운 행실이나 업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첩이라는 '계약족 여종'의 인생에 초점을 확대시킨다.   

가축이며 가족의 간을 빼먹는 <여우누이>는 있을 법할 것 같지 않은 이야기에서 자식에게 간도 쓸개도 다 빼내주는 지금 시대의 부모 이야기로 이어짐으로써 더한 섬뜩함을 가져다준다.


이처럼 작가는 "결국 이래서 망했더라, 이랬더니 흥했더라"하는 식의 고정된 고전관의 나사를 

풀어나간다. 작가의 해석이 자칫 대중적 인식과 어긋날 경우 독자의 비위를 거스를 수도 있을 법도 한건만, 이 책은 그렇지가 않다. 왜 작가는 이 고전을 이렇게 바라보고 이야기를 풀어내는지에 대한 이어지는 설득들이 꽤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들이다. 그래서 1차적인 표면으로만 접해왔던 고전의 이야기는 작가의 정과 끌로 벗겨지고 다듬어져서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드러내보이고자 한다. 


항상 지루하게만 여겼던 고전들이 이 책에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끌고 가는 '현재'와의 연결성이다. 그저 옛날 일로 끝나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에서도 발견되고 되풀이되는 가족의 모습들이 겹쳐지는 순간,

책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한층 더 실감나게 다가올 테니 말이다. 


고전에 대해,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삭막하고 험난한 현실을 고전에 기대어 에둘러 표현한 책의 묘미를

쉽게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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