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추억 - 노먼 맬컴 <회상록> 개정판
노먼 맬컴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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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이자 코넬대 철학교수였던 노먼 맬컴의 회상록이 번역되어 나왔다. 재번역 출간이라고 하던데, 2001년 경에 먼저 출간되었다던 책을 접해보진 못하였다.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 : 천재의 의무>를 번역 재출간한 필로소픽에서 나왔다. 특별히 몽크의 평전을 언급하는 것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몽크의 평전을 먼저 읽거나 몽크의 평전을 함께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회상록'이라는 제목으로도 알 수 있지만, 이 책은 제자이자 친구인 맬컴의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회상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분량도 적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논평이나 해석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최대한 자제한 티가 난다. 실제로 이 책의 시점은 비트겐슈타인이 케임브릿지에서 교수로 강의를 한 이후부터기도 하다. 압도적인 두께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개론으로도 볼 수 있는 몽크의 책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몽크의 책을 읽거나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읽을때 보조적으로 독서를 돕는 수준으로 접하면 어떨까 한다. 물론 인간 비트겐슈타인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책일수도 있겠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삶에 대한 태도 자체가 그의 철학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생각할 때 이 책 만을 읽는 게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테니 이 말은 사족이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는 철학자나 예술가 기타 등등의 사람들의 전기를 읽는 것을 썩 즐기진 않는다. 누군가의 사상이나 작품을 파악할 때는 우선 그 자체로 파악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해설서를 먼저 읽지 않는 마음하고 비슷한 것이다. 특히 창작자의 사생활이나 생애는 선입견을 더욱 강하게 심어주곤 한다. 비트겐슈타인처럼 유별난데다 강한 인상을 주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은둔, 괴팍함, 강박, 무례함, 날카로움 같은  비트겐슈타인 개인에 대한 이미지는, 그의 때론 병적으로 치밀하지만 동시에 매우 불친절하고 난해한 그의 저서에 덧씌워져 그의 철학을 더욱 더 난해하게 심지어는 (비트겐슈타인이 결코 읽혀지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이) 신비롭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불안을 안고, 또한 비트겐슈타인 개인에 먹혀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비트겐슈타인의 개인적 기록이나 전기를 읽기 시작했다. 그의 저작이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데다, 해설서를 읽어도 학자들 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뇌까리고 있는 듯한 혼란 속에서,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다.

 

허나 결론적으로는, 도리어 그렇게 유별나기에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전기는 그의 사상을 접하는 중이라면 한 번 쯤 꼭 읽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을 자신의 삶과 일치시키려 했으며 철학하는 것에 대한 염증, 아울러 실천하는 삶에 대한 중요성을 항상 설파했던 비트겐슈타인의 개인적 삶이야 말로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키가 될 지도 모른다는 짐작이다. 비트겐슈타인의 특히 후기 저작을 읽으면 비트겐슈타인이 일상 언어에 대해 상당히 집착적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전개야말로 내가 비트겐슈타인을 읽어야 하는 이유기도 하지만, 그 자신의 삶과 철학에 대한 태도 역시 그런 논리 전개를 그대로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겨우 비트겐슈타인을 읽어가는 중이라 자신있게 말할 것은 하나도 없지만(이 책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괜한짓을 한다는 생각이 아주아주 많이 든다....), 분명한 것은 소위 '철학의 언어적 전회'라고 일컫어지는 일대 사건의 대표자로서-그 자신이 거기 포함되는 걸 원했는가와는 상관없이-비트겐슈타인이 보여준 논리전개 방식, 철학하는 방식, 그리고 철학에 대한 태도에서 보여지는 엄격함은, 그런 방식을 통해 나온 결론만큼이나, 철학을 넘어 여러 분야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으며, 실제로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 역시 철학전공자는 아니지만, 그런 영향을 조금 얻어갔으면 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고.

 

그런 엄격함과 치밀함 및 세기를 넘어 그의 책을 읽는 이들 까지도 고통스럽게 만드는 자신과 주위의 온갖 것에 대한 병적인 회의와 자기 검열을 간접 체험하며, 그의 철학 나아가 그의 철학에 어느정도 빚을 지고 있는 많은 현대 철학 및 기타 사상들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자 한다면, 노먼 맬컴의 페이지마다 애정과 존경과 경이가 뚝뚝 떨어지는 이 회상록 역시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장점 한 가지 더(또한 내가 이 책을 읽고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는 유일한 감상은),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을 다룬 책들 중에서는 가장가장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편에 속한다. 그리고 이 책속의, 맬컴의 눈에 비친 철학자이자 개인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사소한 버릇 하나까지도 따라하고 싶어하는 추종자들을 몰고 다녔다는 에피소드처럼, 매우 강하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의 철학이 그러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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