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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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밀러]로 유명한 헨리 제임스의 유령 이야기이다. 그러나 느낌은 '슬리피 할로우'류의 고딕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밤 그림자처럼 은밀하면서도 새벽 안개처럼 끈적끈적'하다. 이야기는 큰 사건 사고 없이, 낯선 고장에서 부모 잃은 두 아이를 맡아 새 삶을 시작한 20대 초반의 가정교사의 관찰일기처럼 진행된다.

 

천사같은 남매, 마일스와 플로라. 두 꼬마의 가장 가까운 혈육은 젊고 잘생겼지만 베일에 쌓인 백부 뿐이다. 백부는 아이들을 잘 훈련된 하인들에게 맡기고 교육을 위해 가정교사를 고용한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여인은 까다로운 조건을 감수하고 가정교사로 부임하는데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구김살 없고 시골생활도 그럭 저럭 훌륭하다. 그러나 전임 가정교사가 요절했음을 알게되고 잘생긴 백부의 하인 역시 의문에 쌓인 채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여기까지는 '팩트'다. 그리고 젊은 가정교사의 눈에 어느 순간 등장하게 된 죽은 자들의 모습들, 마일스와 플로라의 비현실적인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진다. 그런데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서술답게 화자의 심리는 구체적이고 적나라 한 반면, 그외 인물들의 심리나 상황은 온전히 가정교사의 시야에 국한되어 있다. 그녀의 '의식의 흐름'대로 쫓아가다 보면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유령이 실재하는지, 가정교사가 미친 것인지, 아이들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딱 부러지게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19세기 말 억압된 여성의 사회적 고립감을 심령소설의 형태로 풀어낸 것이라는 일부 평론가들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

 

'나사의 조임'처럼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솜씨가 가히 '심리적 사실주의'의 거장답다. 구체적인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는 [드라큐라],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지킬박사와 하이드]류의 공포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품격있는 공포소설을 경험했다. 

 

p.s. [드라큐라],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품격이 없다는 말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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