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2
메리 셸리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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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1818년 판을 읽었다. 경기 버스를 타면 홍보용 모니터에 [스푸키즈]라는 짧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 홍콩할매, 강시, 드라큘라, 미이라 따위의 도깨비들이 등장해 한데 어울려 티격 태격하는 것이,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여기에는 물론 프랑켄슈타인(정확히 말하면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도 등장한다. 얼굴에 실밥 자국이 있고 머리나 목 양쪽으로 나사가 두 개가 박혀 있다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방금 드러났듯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사실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이다. 그 괴물은 이름도 없다.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이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아래 보여지는 이미지들이 한 몫을 크게 했을 것이다.(영화 검색창에 '프랑켄슈타인'을 검색하자 무려 43개의 영화가 검색된다.)

 

 

괴물의 원형적 이미지를 창조한 제임스 웨일 감독의 [프랑켄슈타인, 1931]

 

 

 

 괴물의 원형적 이미지를 창조한 제임스 웨일 감독의 [프랑켄슈타인, 1931]

 

 

 

메리 셸리의 원작에서 주요 캐릭터를 빌려다 쓴 멜 브룩스 감독의 [영 프랑켄슈타인, 1974]

 

 

 

그리스 신화에서 인류에게 가장 매력적이고 고마운 캐릭터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프로메테우스를 꼽는다. 그는 제우스로 대표되는 신계에서 가장 반항적인 인물이었다. 티탄의 일족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줌으로써 인류에게 큰 축복을 선사했다. 그로 인해 으뜸신으로부터 끝이 없는 벌을 받게된다. 독수리가 그의 간을 파먹어 없어지면 그 간은 감쪽같이 다시 생겨나와 똑같은 형벌이 또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데 메리 셀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일컬어 어째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고 했을까?              

 

프랑켄슈타인의 호기심은 처음에 순수한 과학적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현상 중 하나가 인체,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동물의 신체 구조였다. 어디에서 생명의 원리가 비롯된 것일까?"    55쪽

 

이 호기심은 열정을 나았고 무덤과 시체더미들 사이에서, 그것들에 혐오감을 느낄 틈도 없이 연구에 매진한 후 마침내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된다. 신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하고 인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연구를 매진했어야 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빠른 성취를 원했다. 우선 이론이 실제로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커다란 덩치(키가 240cm)에 흉칙한 몰골의 괴물을 제멋대로 가져다 부친다. 그것이 움직이기 전까지 전혀 인식치 못했던 감정이 그것이 살아 움직이자 혐오감으로 밀려 들어온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고 했건만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피조물은 흉칙한 괴물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놈을 완성하기 전에도 놈을 찬찬히 바라보곤 했다. 그때는 그냥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근육과 관절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놈은 단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그런 괴물이 되고 말았다.  65쪽

 

그는 자식이나 다름없는 피조물을 외면한 채 현실에서 도피하기 이른다. 상상해 봐라. 외모가 어떻게 생겨먹었던(심지어 그가 직접 그렇게 흉칙하게 만들었다)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아직 보호와 가르침이 필요한 미성숙한 개체가 버려진 세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까? 아니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

 

결국 괴물은 복수의 화신이 된다. 자신을 이렇게 흉칙한 괴물로 만든 장본인, 프랑켄슈타인의 파멸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다. 실행을 위해 목표물의 주변을 배회하고 프랑켄슈타인의 어린 동생을 첫번째 희생양으로 삼는다.

 

괴물과 프랑켄슈타인의 첫번째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괴물은 겉모습과는 달리 신체적 능력뿐 아니라 지적 능력도 뛰어나다. 그의 언어습득력은 보통 사람을 훨씬 능가한다. 만들어지고 나서 몇년 만에 거의 완벽한 언어를 구사한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읽을 줄도 쓸 줄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괴물은 [실낙원], [플루타르크 영웅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책들을 탐독하고 그것들에서 충분한 교훈도 얻을 줄 알았다. 그의 대사를 보자.

 

"사람들 누구나 추한 것들을 미워하지. 그러니 어떤 생명체보다도 추한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울까! 그대, 나의 창조자여, 하물며 당신까지도 자신의 피조물인 나를  혐오하고 멸시하고 있소. 그래도 그대와 나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풀릴 끈으로 묶여 있소. 당신은 나를 죽이려 하지. 어찌 생명을 가지고 그렇게 놀 수 있는 거요?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하시오. 그러면 나도 당신과 다른 인간들에 대한 내 본분을 다하겠소.  ~ 하지만 거절한다면 죽음의 뱃속을 다 채울 때까지 당신의 남은 친구들의 피를 실컷 마셔대겠소."  125~126쪽

 

괴물이 원하는 것은 외로움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불어 살아야 한다. 헌데 인간이란 족속은 끝내 흉칙한 괴물과 어울리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에게 요구한다. 자신과 똑같이 혐오스럽고 못난 반려자를 만들어 달라고. 인간세상을 떠나 둘이 오붓하게 서로 의지하게 살아갈테니 자신에게도 누군가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이것이 부당한 요구일까?

 

프랑켄슈타인은 그러마 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깬다. 그것도 괴물의 눈 앞에서 다 만들어진 두번째 피조물을 갈기발기 찢으면서... 괴물이 분노할 수 밖에. 괴물이 외친다.

 

"나도 한때 애정을 느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품는 애정의 대가는 혐오와 경멸뿐이었다. 이봐! 너는 정말 싫겠지만 조심해야 할거다! 앞으로 네게 남은 시간은 공포와 고통뿐일 거다. 머지않아 네게서 영원히 행복을 앗아갈 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내가 참혹한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동안에 너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너는 내가 열망하는 다른 모든 것도 파괴할 수 있겠지만 나의 복수만큼은 어쩔 수 없을 거다. 이제부터는 내게 복수, 그것은 빛이나 음식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나는 죽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먼저 네 놈, 나를 괴롭히는 폭군인 네 놈이 네 몸의 불행을 지켜보는 태양을 저주하게 될 것이다. 부디 조심해라. 나는 두려움을 모르고, 그래서 강인한 놈이니. 나는 뱀처럼 교활하게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독니로 물 것이다. 이봐, 네 놈은 물린 상처를 보며 뼈저리게 후회할 거다."  221~222쪽 

 

 이어서 프랑켄슈타인의 연인이자 사촌인 엘리자베스와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괴물의 복수가 이어진다. 가까운 가족 친구 연인을 잃은 프랑켄슈타인.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 이제부터는 프랑켄슈타인의 추적이 시작된다. 극한의 추위가 할퀴는 북극의 빙하지대까지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삶을 파괴한 괴물을 쫒는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어느 탐험선의 선실에서 못다한 복수에 아쉬워하며 쓸쓸히 죽어 간다. 그러나 그의 곁에서 죽음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괴물은 절규한다.

 

"저 사람도 내가 죽였구나!" 그가 소리쳤어. "그를 죽인 것으로 내 죄악은 이제 끝이로구나! 계속된 나의 비참한 삶도 이제 종말 앞에 다가서 있구나! 아, 프랑켄슈타인! 관대하고 헌신적인 존재여! 이제 와서 당신에게 용서해달라고 간청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당신을 완전히 파멸시켜버린 나를. 아아! 그대의 몸은 싸늘하고 이제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구나." 그놈은 목이 메는 듯이 보였어.~    295쪽

 

자신을 만들어낸 창조주, 아버지가 죽어버린 지금, 이제 괴물도 더 살 이유도, 의지도 상실한다. 죽음을 암시하며 북극의 어둠속으로 사라진 괴물. 그 다음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메리 셀리는 오픈 엔딩으로 끝을 맺었지만 그 뒤에 나고 죽은, 또는 현대의 여러 작가들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프랑켄슈타인 크리에이티드 우먼] 등 수많은 변주이자 또다른 사생아를 만들어 내왔다.

 

 

디바인이 열연한 연극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또 다른 변종 영화 [프랑켄후커]

 

 

 

됐고,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때다. 작가 메리 셀리는 어째서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라는 제목을 붙혔을까? 서두에 언급했듯이 티탄족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생명과도 다름없는 불을 가져다 줌으로써 은혜를 베풀고 축복을 주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처음 의도(죽어가는 혹은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는 의학적 가능성)야 어찌되었건 세상에 자칭 '괴물'을 내놓았다. 너무 혐오스러운 나머지 본인 조차도 그것을 외면했다. 결론적으로 괴물은 인류에게 어떠한 선물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까진 프랑켄슈타인과 프로메테우스와의 공통 분모는 없다.

 

둘이 겹치는 부분은 지금부터다. 프로메테우스는 으뜸신 제우스에 반기를 들었다. 그의 행위는 인류에게 축복이 됐을 지언정 제우스에게는 미운 털이 제대로 박힌 꼴이 되었다.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내린 죽음보다도 무서운, 영원할 것 같은 형벌(한참 후에 헤라클라스에 의해 형벌로부터 해방된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도 생명의 창조라는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산업용 로봇을 만든게 아니다.) 방식 또한 그때나 지금이나 용납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 불법적으로 모았을 것이 틀림 없는 여러 개의 시체들을 어떤 법적 윤리적 통제없이 훼손하고 재조합하는 등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천재성이 광기와 만난 것이다. 이제 벌을 받을 차례, 판결문에 있는 그의 형벌은 뒤는게 찾아온 후회, 사랑하는 가족, 친구의 죽음이다. 그리고 한때 고결했던 정신의 완전한 파괴였다. 그는 죽어서야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을 것이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만들어 냈지만, 사람들의 눈에 그것은 공포의 대상인 괴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진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닐까. 고대의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푸스 으뜸신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구하고자 했던 인류애(?)는 사라지고 신뿐만 아니라 인류, 또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조차 복수의 대상이 된 프랑켄슈타인은 광기와 복수에 사로잡힌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즉 진짜 '괴물'이 되어 버렸다. 그런면에서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관계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관계의 다른 버전과 다름 아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라는 결론, 절제와 관습아래 감쳐둔 인간의 야수성, 그게 진짜 '괴물'이다. '프랑켄슈타인(우리가 흔히 괴물로 오인하고 있는 그가 만든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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