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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루스 웨어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전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요
변호사는 이런 편지를 한 달에 몇 통씩이나 받을까. 2017년 9월 3일부터 렉스햄 변호사에게 짧은 편지를 보내던 27살의 로완은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면서......유괴범인가? 과실치사를 주장하나? 짧은 순간 상상해봤지만 의외로 시작은 평범했다. 리틀 니퍼스라는 도심 속 어린이 집에서 근무하던 로완이 보수 좋고 전원생활이 보장된 일자리 공고를 보고 지원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침 함께 살던 룸메이트가 해외여행을 떠나버려 집세 부담을 안고 있었고 일하고 있던 어린이집의 보수나 대우가 좋지 못해 이직을 희망하고 있던 차에 눈에 띈 공고여서 적극적으로 지원한 결과, 외딴곳에 위치한 빅토리아풍의 아름다운 집에서 일하게 된다. 단 고용주 중 남편은 손버릇이 좋지 못했고 부인은 8살 매디, 5살 엘리, 18개월된 페트라와 익숙해질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남편과 떠나버린다. 주의사항이 적힌 두툼한 파일북만 건네주고. 14살 리안논은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아무리 급해도 참 무책임한 부모라는 생각이 든 것과 동시에 입주 돌보미라지만 아이 넷을 겪어보지도 않은 낯선 여자에게 덜컥 맡겨버리는 일이 가능한가. 출퇴근도 아니고 긴 출장을 떠나면서 집 안엔 아이들과 로완만 남겨두다니.....하지만 읽어나갈수록 걱정되는 쪽은 아이들이 아닌 로완이다. 리모델링 전 헤더브레 저택에서 아이가 사망했고 집 안에 독 화원은 아직까지 치워지지 않았다. 또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방과 연결된 다락방엔 먼지 투성이 아기 침대와 도자기 인형들, 온통 뿌려진 새의 깃털 외에도 "우린 당신이 싫어(p315)" 라고 적혀 있어 공포감이 배가 된다. 집 내부에 설치된 최첨단 시스템은 아날로그가 그리워질 정도로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다락방에서 봤던 인형머리는 어느 날 눈 앞에서 떼굴떼굴 굴러다녔다. 유령이 머무는 집인 것일까.
리안논이 밝힌 로완의 정체
열네살이면서 남자랑 어울리기 위해 외박을 하고 아이같지 않은 언행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첫째 리안논은 그들의 부모보다 더 철저한 소녀였다. 인터넷을 뒤져 로완의 정체를 밝혀냈다. 그리고 그녀가 저택에서 근무하려한 진짜 이유도 정확하게 알아냈고. 아이가 죽던 날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알리바이가 있었다. 별채에서 지내면서 헤더브레 저택의 잡일을 맡고 있던 운전기사 잭과 밤을 보냈던 것. 하지만 추후 경찰을 통해 그가 유부남임을 알게 되었고 이 사실을 도리어 불리하게 작용했다. 분명 진실을 말했지만 유부남과의 관계, 아이가 추락한 위치, 로완의 실제 이름과 정체는 그녀에게서 살인범이라는 굴레를 벗겨주지 못했다.
또 다른 반전, 두 장의 편지
2년이 지난 '2019년 7월'의 편지는 벽 속에서 발견된 편지 더미의 처리 문제를 두고 의견을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그토록 애절하게 살인범이 아니라고 외치던 여자가 왜 구구절절하게 밝힌 내용들을 부치지 않았던 것인지, 그 후 그녀는 어떻게 된 것인지.....궁금하게 만든 대목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려주는 마지막 편지인 "2017년 11월 1일"자 편지.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가 아닌 감옥으로 전달된 편지 한 통. 그 속에 모든 답이 적혀 있었다. 범인은 누구이며, 왜 애절한 편지를 붙이지 못하게 된 것인지. 그리고 신분을 숨기면서까지 저택에 고용되길 원했던 한 여자가 너무나 불쌍해졌다. 그 옛날 엄마의 충고를 받아들였다면......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 이 집에는 저를 쫓아내고 싶어하는 사람과 저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누가,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p392)
■ 전 사실을 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여기에 갇혀 버렸어요. 진실이 저를 구해줄 거라고 믿어요, 렉스햄 변호사님(p432)
■ "그 인간이랑 엮여서 좋을 거 하나 없어" 엄마 말이 옳았어요. 정말 그 말 그대로였죠.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p416)
*"소설이최고"서평단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