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의 여자
샨 사 지음, 성귀수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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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에 우리에게 광주항쟁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천안문 사태가 있었다.

별로 부딪히고 싶지 않은 현대사에서 이 두 사건은 큰 물줄기가 되어 언제나 작품전체를 뒤흔들고 만다. 젊은 피가 거리에 뿌려지면서 그들의 피로 현재의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었던 것일까.

 

정말 샤오의 말처럼 인간이란 자고로 파괴를 선호하고 끝내는 자기파멸을 추구하는 존재일까. 전쟁을 방불케한 역사적 고통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타인에 대한 책임을 밀어낼 수 있는 것일까. 주인공 아야메이는 어느 순간 폭동의 주동자가 되어 쫓기게 된다. 맘씨좋은 운전수 왕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으나 집이 멀어 가까운 삼촌댁으로 향한 아야메이.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핏줄로 이어진 그들의 냉대뿐이었다. 쫓기고 있는 조카딸로 인해 가족이 해를 입을까봐 문전박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은 정말 이기적인 존재가 아닐까 라고 잠시 자문해 보게 되었다.

 

어려울 때엔 가족보다 남이 나을때가 있다고 했던가. 가족조차 외면한 그녀를 타인인 왕씨가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우여곡절 끝에 아야메이는 왕씨의 부모님의 거주지로 옮겨가게 된다.

 

한편 아야메이라는 범법자에 대한 심문을 맡게 된 자오는 68년 생으로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의무와 희생, 복종을 당연하게 생각해온 그가 아야메이를 쫓으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어린 시절 민이 아야메이에게 다른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자오는 아야메이를 통해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 

 

불어를 전혀 몰랐다던 샨사는 프랑스로 건너간지 7년만에 불어로 책을 출간했다. 그녀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다가오는 문체에 프랑스인들이 열광하면서 아멜리 노통과 더불어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샨사.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중국어가 아닌 불어로 작품을 쓰게 만들었던 것일까. 이전에 읽었던 [측천무후]와 더불어 가장 중국적인 것을 중국어가 아닌 불어를 이용해 세상에 내어놓고 있는 한 여류작가의 삶에도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역사라는 것이 인간에 대한 궁극의 이해를 돕는 것인지 방해하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결론짓지 못했지만 확실한 한가지는 가장 힘든 시기에 우리는 가장 본연의 모습답게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된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 깨닫고 있다.

 

샨사의 다음 작품을 찾으면서 내 머릿속에 빼곡히 들어찬 생각들을 오늘밤엔 일기장에 가득 옮겨보려 한다. 아야메이의 어린시절 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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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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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제리]를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답답함이었다. 목까지 죄어오는 숨쉴 수 없는 답답함이 진공의 공간 가운데서 나를 자꾸만 밀어대고 있었다.

 

20대.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찾아헤매어야 할 그 나이에...시도만으로도 모든 것이 용서되는 그 나이에 제리와 주인공 "나"는 하루하루를 죽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허무하게 살게 내버려두는 것일까.

 

제리. 스물 하나.

나. 스물 둘.

 

제리. 호스트로 노래방이나 룸에 불려다님. 시간당 삼만원 받고 만원은 회사에 입금.

나. 재수해서 2년제 야간대학에 다니지만 가족 사이에선 없는 듯 사는 존재.

 

 

주인공 "나"는 헤어진 남친 "강"과 "제리" 사이에서 무엇을 발견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들의 관계를 두고 사랑을 논하는 것은 너무 무거운 일이었고 그들의 관계속에서 사회를 말하는 것은 너무 가벼운 일이었다.

 

....회사에서도 에이스들은 특급 대우를 받아. 돌이켜 보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따위 신세였던 것 같아....라고 푸념을 늘어놓은 제리와

 

....내 나름대로는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나는 늘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제아였고 인간쓰레기였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주인공 나는 순간 오버랩 되어 버렸다.

 

 

술마시고 남자를 돈으로 사고...이런 모습이 20대 청춘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주인공의 삶 속에서 어쩔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포기를 발견하고는 답답하고 허무해져버린 것도 사실이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올 날들이 많은 그들이 앞으로의 인생을 포기하고 살아지는대로 살아버린다면 남아있는 몇 십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단지 책 속에서 묘사된 몇몇 장면들이 선정적이었다고 해서 파괴적이고 충격적이며 반도덕적이라고 소설을 일축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제리"를 통해 그래도 무언가를 꿈꾸려고 노력했던 "나"라는 인물이 허무함 속에서 탈출해보고자 노력했다...라고 생각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시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끝났지만 사실 끝내지도 못했던 강과의 과거도 끊고 돈 몇만원에 자신의 청춘을 팔고 있는 남자이지만 그래도 무언가 잡고 싶던 순간에 그를 잡음으로서 살아보고 싶었다....라고 그녀는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한없이 답답하게만 여겨졌던 소설의 끝에서 나는 지속적인 희망도, 그렇다고 끝나버린 절망도 아닌 애매한 단계에서 책장을 덮어버렸다. 지나가버린 것들보다 현재를 스쳐지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각하게 만드는 [제리]의 책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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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 예니체리 부대의 음모
제이슨 굿윈 지음, 한은경 옮김 / 비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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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 소설만 읽고 있는 듯 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나고보니 재미있는 일이었다. 이스탄불.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인데, 지금도 지도에서 찾으라고 하면 헤매일 그런 장소인데 소설 속 이스탄불은 모험의 도시 매혹의 도시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매혹의 도시 이스탄불. 1836년 오스만 제국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에겐 다소 낯선 지위 네이밍인 술탄. 그 술탄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장교 4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곧 그 중 한 명이 시체로 발견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총사령관 세라스케르는 탐정 야심을 불러 들인다. 그리고 명한다. 단 열흘안에 사건을 해결하라고.

수직하달식방식으로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만 하는 군대에서 명령을 받은 야심. 환관탐정이라는 특수한 신분이 우리의 눈길을 끌게 만들고 그가 의뢰받은 사건의 특수성이 우리를 궁금하게 만든다. 

사건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실마리를 쫓는 중 또 하렘에서 궁녀가 교살되고 술탄 모후의 보석이 도난 당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것도 나폴레옹에게 선물받은 그 소중한 보석이 사라졌다. 더욱더 복잡해진 사건을 풀기 위해 야심은 실종자들을 찾아나서고 그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의 최정예 부대인 예니체리에 접근하게 된다. 술탄의 군대. 직업군인제도 속의 예니체리에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1826년에 이미 해체 된 그 군대 속에 답이 있음을 알고 그들의 실체로 접근하는 환관탐정 야심.

우리에겐 다소 낯선 배경과 문화 속에서도 충분히 재미를 몰아갈 수 있음을 입증한 소설 한 권을 선선해지는 가을 낮에 다 읽고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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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 - 現 SBS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가 선사하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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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방송을 안 듣는 편이다 보니 저자가 pd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을 책의 이력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알게 되면 그의 세상을 알게 되는 것처럼 작가의 약력을 읽으면서 일상과 동떨어진 그의 머릿속 상상의 세상에 초대된 듯 스며들어 가기 시작했다. [카시오페아 공주]에 나오는 그녀처럼...

[카시오페아 공주]는 제목에서부터 뭔가 시시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접했더니 정말 읽고서는 그런 느낌만 남겨 버린 것 같다. 아쉽게도 멀더와 스컬리가 나오는 외계인 스토리 이상의 이야기가 이젠 나오지 않는 것만 같다. 상처를 치유하고 저멀리로 떠나버린 여인. 그리고 아내의 살해범을 용서하고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의 순정. 카시오페아 공주는 딱 그만큼이었다. 

그래서 뒷장을 넘기면서도 "딱 이만큼"만 감동받자 그랬는데, 페이지가 점점 뒤로갈수록 내 머리카락도 뒤로 쭈뼛쭈뼛 서기 시작했다. 헉. 소리가 나올만큼 뭔가 섬찟하면서도 괴기스러운 것이 꼭 오츠이이의 글처럼 읽고나서 곱씹을수록 더 잔인한 것만 같이 느껴졌다. 

[섬집아기]는 엄마가 섬그늘에.....굴 따러가면....이라는 노랫말이 흥얼거려질 제목을 달고 자신의 죄 앞에선 관대하고 타인의 죄 앞에선 강인한 인간의 추악한 모습이 실려 있었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며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는데, 그때가 가장 무서워지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마치 내 앞에 그 추악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가 서 있는 것만 같아서......

그에 반해 [레몬]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 동일한 제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훨씬 가볍고 어쩌면 가장 순수한 무게로 읽혀질 작품이었고,[중독자의 키스]는 매력적인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 작품이었는데, 죽어가는 남자와 갇혀 있는 여자, 그리고 엿보는 남자 그들이 엮어놓은 이야기였다.

[좋은 사람]이라하면 토이의 노랫말이 먼저 떠올려지지만 이 작품을 읽고나니 앞으로는 작품과 노래가 동시에 떠올려 질 것 같다. 어릴 때 죽은 쌍둥이 동생의 귀신이 보이고 소개팅으로 얼굴만 봤던 남자가 스토킹을 해 오면서 그녀는 서서히 노이로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가운데 범인에게 납치된 현주는 16년전에 납치되었던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을 거기서 마주하게 된다. 똑같이 생긴 것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라고 묻는 동생의 물음에 무어라 답해야 했을까. 여기서 좋은 사람은 반어적 표현이었음이 다 읽고 나면 밝혀진다.

정말 저자의 말처럼 상처없는 사람은 매력도 없는 것일까. 요시모토 바나나 식의 위로는 아니지만 책에 실려 있는 여러 단편들을 통해 좌절을 이겨내는 또 다른 방식을 배우고 특정 사건 때문이 아니라 사건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함도 단편들을 읽어가며 자연스레 알게 된다. 또 다른 방식의 치유라고 봐도 좋을만큼. 반대로 뒷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설만큼 인간이라는 존재를 무섭게 인식하게 만드는 소재들도 있었는데 미야베미유키처럼 사회성을 동반한 인간에 대한 통찰이 아닌 인간 심리 깊숙한 곳을 의심하게 만드는 호러,미스터리도 담겨져 있다. 

판타지,멜로,호러,미스터리,로맨스....딱히 한 장르만을 말하긴 어려운 이 몽환적인 작품 아래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면서 인간답다는 것에 대해 올바른 정의를 내리며 살고 있는지 반문하게 만들고 있다. 충분히 안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며 부정확한 것인지 통탄하게 만드는 작가의 작품을 뒤로 하고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호기심 어린 눈빛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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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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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이라는 사자성어처럼 낮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하다 나이 마흔에 폐결핵 악화로 세상을 떠난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

 

여행하고 싶은 도시 프라하에서 유대계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20세기 최고의 문제작들을 탄생시킨 천재작가였으나 죽기 직전 유언으로 자신의 유고를 불태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미완성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떠나는 순간 법정스님처럼 자신의 글들이 글공해라고 여겨서였을까.

 

카프카의 글을 읽기전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 중 하나는 그의 문학은 어렵다 라는 것이었다. 심각하고 어두우며 어려운 글을 읽고 싶지 않아 평생을 도망다니다시피했는데 운명처럼 어느 순간 그의 글과 마주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 첫장을 열게 된 작품은 유고작 중 하나인 [소송]이다. 어쩌면 불타 없어져버렸을지 모를 운명의 글이 살아남아 지금 내 손에 들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카프카의 [소송]은 아리쏭한 작품이다. 작가 이상 의 작품만큼이나 기괴한 작품들이 카프카의 작품인 듯 했다.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때문인지도 모른 채 결과로 달려가게 만드는 작품의 스토리라인만 봐도 그랬다.

 

주인공 k는 은행에 다닌다. 간부급인데 별다른 잘못이나 이유도 없이 갑자기 체포되고 소송에 취말린다. 죄목을 알지 못하는 것은 법정에 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구금이나 구류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제재를 받지는 않는다.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도 소송에 걸려 있다는 사실은 그의 발목에 족쇄를 달아놓는 것처럼 삶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끝까지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재판이 진행되고 기약없는 기다림이 계속되는 가운데 "처형"으로 결말 맺어지는 황당스러움은 놀라울 정도다.

 

이미 여러차례 번역되어 "심판"이라는 작품으로도 번역 된 적이 있다는 "소송"은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기도 전에 스토리 전개의 기이성으로 의문을 남게 만드는 작품이다.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야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내용면에서나 탐독면에서 카프카는 읽고나서도 여전히 어려운 글을 숙제처럼 내어놓은 작가로 기억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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