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
슝둔 지음, 김숙향.다온크리에이티브 옮김, 문진규 감수 / 바이브릿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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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의 저자 슝둔은 2012년 11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꺼져버려, 종양군>이라는 영화 소개를 어딘가에서 보면서 그녀의 투병을 듣긴 했는데, 잘 이겨내줄 줄 알았던 그녀는 짧은 생을 그만 마감해 버렸다고 한다. 유쾌하고 긍정적인 그녀를 앗아간 비호지킨 림프종이란 병은 어떤 병일까.

 

 

 

딱딱한 병명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데, 그 통증은 얼마나 심할까 싶었건만 책 속 그녀는 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아파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갇혀 지내야하고 미모를 잃어가는 것을 더 슬퍼하는 것 같았다. 심하게 아파본 나로서는 어디에서 그런 무한 긍정의 힘이 솟아날까 싶어진다. 진짜! 아프면 '진통제'라고 외치는 것 외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는데....저자 슝둔은 그 아픈 와중에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그래서 하루에 5천 개의 응원 메시지를 받았던 것이 아닐까.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 번째 항암화학요법을 마치면서 "합병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에 '살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대머리 상태로 꼬맹이들과 강시 흉내를 내는 것을 보면서는 피실피실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중병에 걸린 와중에도 다이어트를 하고 외모를 가꾸다니....오랜 기간 입원해 있던 나는 이런 환자를 본 적이 없다. 만약 그녀 같은 입원 룸메이트를 만났었다면 병원 생활(?)이 좀 더 즐거웠을까. 둘이서 작당모의해 별별 사건을 다 만들었을 것 같긴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면, 별 것 아닌 일들이 많아진다. 일상 속 사소한 투정거리들이 별 것 아닌 것들이 되어 버리고, 오늘 다 해내지 못해 헉헉대는 일들 때문에 속상해할 일도 사라진다. 건강을 잃으면 그 어떤 것도 소용없는 일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또 다른 우주의 깨달음이 내려진다. 그래서 가끔 아팠던 때를 떠올리며 '불평하기보다는 오늘에 감사하자!!'스스로에게 되뇌이게 된다. 슝둔이 병마를 이겨내 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안타까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유쾌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에게.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웃음을 선물해주고 떠났다. 아프지만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 최선을 다해 주어진 하루를 유쾌하게 보낸 그녀의 일상은 그래서 힘이 되고 약이 된다. 뒤늦게 그녀를 알게 되었지만 그녀가 참 좋아졌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지만 그녀를 기억하고 싶어졌다.

 

 

'오늘, 나는 열심히 살았을까' 자가진단하게 만든 <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는 오늘이 허무하다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네가 의미없이 보낸 하루를 정말 탐낼만한 사람이 저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고 말해주면서 갖다줘야지!!! 누군가의 투병에세이가 이토록 일상의 큰 각성을 가져올 수 있다니.....그림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아니, 긍정의 힘은 날개짓이 태풍보다 힘찬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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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 2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 2
퍼엉 글.그림 / 예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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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W 에서 주인공 남녀의 달달씬에 등장했던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의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의 2권이 나왔따. 그라폴리오 에서 보았던 그림이라 참 낯익다 싶었는데 드라마 보는 중간에 나와서 깜짝 놀랐다. 심플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이런 따뜻한 감성의 색감도 참 좋다. 특히 가을, 겨울에 딱 보기 좋은 내용이라 함께 보자!!고 꼬시고 싶은 사람들을 몇몇 떠올려 본다.

 

 

달달한 연애가 필요한 사람, 현재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 커플, 잃어버린 사랑으로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친구,,,,모두에게 필요한 평온함이 이 책 한 권 속에 들어 있었다. 귀지와 함께 쌓여가던 흉악한 뉴스들은 잠시 잊고 , 후회로 마감했던 어제의 행동들도 지워버리고... 해질 무렵, 창가에 걸터 앉아 이 책을 팔랑팔랑 넘기며 좋은 꿈을 꿀 수 있는 하루로 마감되도록 노력하는 것! 요즘 내가 시도 중인 힐링 이브닝요법(?)이다.

 

 

살면서 과부하가 걸릴 때가 있다. 사람으로 인한 공해를 제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법은 홀로 조용한 시간을 가지는 것 외엔 없다는 것을 서른이라는 나이를 넘어 터득했다. 누군가에게 블라블라 이야기를 늘어놓을 필요도 없고, 가슴에 품어 멍으로 앙금을 남길 필요도 없다. 좋은 생각, 좋은 음악, 좋은 그림, 좋은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집중하다보면 모든 일은 그저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퍼엉의 그림은 그때 함께하기 딱 좋은 친구다.

 

 

가장 좋은 때를 기억나게 하는 그녀의 그림. 고요한 시간을 함께 해주는 다정한 색감. 무심한듯 던져놓은 한 마디. 판타지가 아니라 일상이라 더 정겹다. 다만 길고양이 가필드를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적혀 있어 살짝 아쉽긴 했다. 먼 곳으로 이사를 와 버렸다는데, 작가가 데려와 함께 살만큼 정들진 않았나봐! 싶어진 거다. 다른 길고양이들을 만났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그림 속에서 함께 했던 가필드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니.....아쉽다! 아쉽다! 아쉽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거고, 가필드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을 해 주었을 거라는 믿음으로 아쉬움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라는 것도 타인에 대한 강요가 될 수 있기에 이런 마음도 깎아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요즘-.

 

 

어느 심리학자의 말처럼  변하지 않을 사람에 대해 기대를 걸기 보다는 관점과 시선을 달리해 세상을 다르게 보고 싶어졌다. 40이 되고, 50을 넘고, 60이 다가와도 '두근두근'대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싶어졌다. 그럼 세상도 사람도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렇다고....누군가에게 살짝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해질 무렵 나는 이 책을 펼치며 저녁을 마감하려 한다. 커피 한 잔도 좋고 따뜻하게 우려진 차 한 잔도 좋겠지. 속이 따뜻해져 오는 것은 차 덕분이겠지만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건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덕분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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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양이 - 사계절 게으르게 행복하게
미스캣 지음, 허유영 옮김 / 학고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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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깜찍한 캐릭터가 가득한 책, 너무 좋아!
단체 사진 찍는 거 정말 끔찍하게 싫어했는데, 고양이 단체 사진은 너무 바람직한(?) 모습이라 눈길을 거둘래야 거둘 수가 없다. 단 한 녀석도 같은 표정이 없다. 그래서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계절 내내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얼굴들. 사람얼굴은 밝고, 선한 얼굴이 좋은데 고양이 얼굴은 도도하거나 새침해도 좋다. 또 뚱하면 어때? 어떤 표정이건 고양이니까 용서되는...사랑스러운 면죄부를 갖고 태어났다. 이 러블리한 생명체는...

 

블로그 방문자수 200만을 넘어선 대만의 작가겸 일러스트레이터인 '미스캣'의 그림은 사실 책에 앞서 이웃님의 포스팅에서 먼저 본 적이 있다. 배경은 참 따뜻한 느낌을 전하는데 고양이들의 표정은 상큼하기 그지 없어 얼른 스크랩해 왔더랬다. 분명 함께 살아본 사람만이 아는 표정들이다 싶었는데 역시나 미스캣은 어릴 적부터 고양이, 강아지 친구와 장난치며 자랐다고 했다.

 

 

 

 

 

일본의 목판화 '우키요에'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또 고양이>는 그래서인지 집사들에게 단단히 입소문을 탄 책이었다. 이미 많은 리뷰들이 올라와 있어 얼른 구매해야지!! 했건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미루다가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꿈에서도 소망했던 이 책!! 지구상 모든 사람을 애묘인으로 만들겠다는 그 결심!! 꼭 이루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지는 건 이 책을 보는 날 일어난 한 사건 때문이었다. 손발이 묶여 쓰레기 봉투에 담겨 음식물과 함께 버려져 있었다는 고양이 소식! 하루가 지나고 어느 못된 인간의 소행인지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마음이 참 씁쓸해지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괴롭힐 권리는 없다! 자꾸만 잊어버리는 인간들의 뇌에 이 그림들이 따뜻하게 박혀버렸으면 좋겠다 싶어진다.

 

미스캣(본명 왕위팅)의 소망처럼 지구상 모든 사람이 애묘인이 되면 이런 말도안되는 사건들이 뉴스지면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채소를 먹고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까먹고(?) 친구와 함께 차를 마시고 대청마루에 드러누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건 인간이나 고양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그런 일상들이 동글동글하게 그려져 더 예쁜 <또 고양이>속에는 우리집 고양이들의 얼굴도 숨겨져 있었다. 지도책을 펼쳐든 라임이, 이불을 둘둘말고 앉아 눈구경하고 있는 나랑곰, ox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호랑냥이, 생선에 집중하고 있는 라나, 열심히 금붕어를 낚고 있는 마요마요, 낙엽속에 숨은 꽁여사....있다! 있어! 우리집 고양이들도.

 

 

유머가 있고 나른함이 엿보이는 그림들은 족자를 만들어 걸고 싶을 만큼 탐나는 것들이라 책을 몇 번이나 다시 펼쳐들었는지 모른다. 고양이 캐릭터는 정말 어떤 그림이든 소장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묘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집사가 되고나서 지갑은 털털 털리는 중이지만 웃음은 두 배, 세 배 넉넉해졌다. 자꾸만 웃고 싶어진다.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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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선물 14일 2 - 무삭제 오리지널 대본집
최란 지음 / 소네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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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는 한국 드라마 소식을 접한 적이 있는데 바로 <신의 선물 14일>이었다. 이후 소식이 잠잠해져서 착착 진행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한 바는 없지만 헐리웃에서 탐낼만큼 멋진 드라마라니...! 본방사수했던 시청자로서도 이만큼이나 흐뭇해지는데, 하물며 작가나 연출가의 그 뿌듯함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역사스페셜>,<인간극장>,<pd수첩>등 굵직굵직한 프로그램에서 잔뼈가 굵어온 필력의 작가 최란은 <순정을 묻다>와 <슬픈 미이라>로 드라마 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녀를 가장 유명하게 한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일지매>가 아니었을까. 시청률 30%가 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지만 그래도 내겐 <신의 선물 14일>이 가장 멋진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만큼 임팩트가 강했고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던 작품이기에 잊혀지질 않았다.

 

재미나게 봤던 그 드라마의 무삭제 대본집이 나왔다. 두툼하게 두 권짜리로. 16회 작가판 대본에 스페셜 17회가 얹어진 것도 신나는 일인데 외전까지 추가되어 있어 2권까지 단숨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타임워프 하기 전에 있었던 진실이 숨겨진 17회 대본도 좋았지만 외전까지 마저 읽고나니 작가의 의도가 읽혀져서 더 만족스러웠다.

 

동찬이 죽고 1년 뒤 저수지로 딸과 함께 온 수현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던 16회의 엔딩씬과 달리 외전의 이야기는 이미 익숙한 동찬의 저수지 자살 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동찬은 돌아왔다. 2004년 3월, 교회창고에서 수정이 죽는 그 순간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막고 형의 사형을 막으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물론 변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긴 했다. 수현의 남편처럼. 주민아와 바람나진 않았지만 대신 다른 여자와 호텔에 있다가 동찬에게 걸린 그는 과거가 어떻게 뒤바뀌어도 바람필 운명으로 태어난 남자처럼 그려졌다. 마찬가지로 과거가 변했지만 2014년이 된 엔딩에서 동찬은 <묻지마 서포터즈>로 활약하고 있었다.

 

다른 결말이 아닌 보너스 스토리라고 하지만 시청자가 원하는 결말은 외전의 결말이었을 것이다. 보면서도 훈훈해지는...그리고 동찬이 살아있는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두 결말 다 맥락있는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느 쪽이건 종영된 드라마이고 대본집으로 다시 읽으며 그때의 그 드라마를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어 의미가 남달랐음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이미 죽은 딸의 살해범을 잡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간 엄마의 추격전!!결국 딸을 살린 엄마의 모정이 14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긴박하게 펼쳐지면서 속도감이 붙은 드라마의 재미 역시 가속도가 붙여졌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나오면서 "정말 붙잡고 싶었다!!"는 절규를 마음 속에 품고 나왔던 것처럼, "꼭 살리고 싶다"는 수현의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드라마를 기억하고 있다면 대본집을 통해 그 감동을 다시금 되살려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두껍지만 추천하고 싶은 책이 바로 <신의 선물 14일 대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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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여자 - 개정판 발란데르 시리즈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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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일까. 우연히 발생한 하나의 살인이 억눌려 있던 키를 망가뜨려 버렸다.

기폭제가 되어 연쇄살인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물론 수녀원에 잠입해 외국인 수녀넷과 나이든 여행자 한 명을 죽인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이날 그들이 알제리에서 저지른 일이 무엇의 시작점이 되었는지.....!

 

 

 

 

이번에도 헤닝 만켈이다. 나를 놀라게 만든 필력의 작가는. 대중성과 작품성은 평행선을 달릴 때가 많은데, 그의 작품은 그 두가지가 알차게 부합되어 있다. 그래서 놀랍다. 왜 그동안 그의 소설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트릭이나 반전이 없어도 결말이 시시하지 않았고 범인의 윤곽을 처음부터 드러내고 시작하는데도 불구하고 시시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경찰의 더딘 수사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원망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그들이 영웅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수사 과정을 주의깊게 바라보며 사회범죄로 국가가 병들어가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진배없다는 점까지 시사하고 있다. 부정과 부패, 폭력의 진화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감정이 무뎌져가는 것이 더 큰 문제임을 지적해내는 소설이 바로 헤닝 만켈의 작품들인 것이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인가? 그는 왜 살인을 이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보다 그 과정을 읽는 동안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나의 생각'들이 더 중요해진다. 특이하게도 채 10권이 되지 않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참 많은 생각들에 잠겼더랬다. 

 

분명 몰입도는 최고인 작품이지만 뉴스를 보며 그냥 흘려 보았던 것과 달리 헤닝 만켈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효과를 내는 크라임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그 재미보다 범죄의 파장을 염려하게 된 소설을 읽은 기억은 없다 .그래서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이 작가의 소설은-.

<다섯 번째 여자>는 국내 외국인을 몰아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인을 성스러운 임무로 받아들인 알제리 남자들의 살인으로 시작된다. 이 때 살해되었던 여인의 딸에게 어느날 도착한 편지 한 묶음은 왜 그녀의 어머니가 알제리 국가로 인해 익명의 '다섯번째 여자'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려주기에 충분했고 책의 제목이 왜 '다섯번째 여자'인지, 왜 중요한 의미가 될 수 밖에 없는지 알려주며 시작된다.  1993년 8월 20일..

 

 

78세의 시를 쓰는 노인, 아프리카로 '난초'를 보기 위해 떠난 꽃집 주인, 대학의 보조연구원이 왜 죽창에 찔려 죽고 나무에 목매달렸으며 호수에 내던져져 익사하게 되었는지를 수사하면서 그들이 찾아낸 키워드는 '용병'과 '여성을 향한 폭력'이었다. 그래서 용의자는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폭력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가정내 폭력, 사회적인 폭력, 집단적인 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폭력의 폐해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다섯번째 여자>에서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진 않았다. 다만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라는 의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독자 스스로 내뱉게 만드는 영리함을 보여줄 뿐이다.

 

악인에 대한 정의는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칼같이 정의내려질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은 어느 일면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 나뉘게 되며(희생자들의 보여진 삶처럼) 살인자라고 해서 그 사연까지 악하진 않다는 사실을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만 '폭력에 대한 응대가 폭력'이어서도 안되며 여기에 절대 익숙해져서도 안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각성하게 되었다. 재미있게 읽고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얻을 수 있어 좋은 헤닝 만켈의 작품을 계속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제 몇 권 남지 않았다.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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