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 - 내 인생에 빛이 되어준 사람들
류통 지음, 이지수 옮김 / 올댓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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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을 당시 나의 나이는 열 두 살이었다. 그 어린 마음에도 깊이 들어찰만큼 스님의 글은 짧고 간결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무엇보다 감정이 과잉되지 않는 그 담담함이 참 좋았다. 그래서 엄마의 서가에서책을  빼내 한동안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으며 문장의 담백함을 곱씹곤 했다.

이번 주 <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를 읽으면서 문득 그 옛날 스님의 글이 떠올려졌다. 현 광시엔미디어 부총재인 류통의 글도 그만큼이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었으므로. 제목만 보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아닐까 짐작했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리고 말았다. 잃어버린 사람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아닌 자신의 추억을 담담하게 공유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슬픈 일도 있고 후회되는 순간도 있고 그리워지는 그때가 있기 마련이다. 류통의 지난 날도 그러했다.  다르지 않았다.

그도 나처럼 학창시절 찰떡처럼 붙어다녔던 단짝친구(샤오바이)와의 추억도 있었고, 아픈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될까봐 도망친 과거의 순간도 있었으며, 바보같아서 거짓말을 했다가 오히려 순수한 그 마음에 동화되어 소중한 사람으로 가슴에 품은 푸톈 삼촌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맞이했다. 진학을 하지 못한 채 '콩나물을 팔아야 했던 동창 더우야'를 통해 얻게된 삶의 지혜나 양친을 일찍 여의고 가난하게 살 지언정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소중히 여겼던 '낭랑'과 친하게 지내며 깨닫게 된 감사의 마음이 저자인 류퉁을 분명 더 좋은 사람으로 살게 만들었을 것이다.

 

과거의 모든 순간이 지금의 그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면서도 주목해야할 일이 아닐 수 없겠다. 비록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 한밤중에 소리 내어 운다는 스물여섯'도 지났고, '더 이상 인생의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그동안 뿌려놓은 씨앗의 열매를 수확한다는 서른 셋'도 지났지만 나는 에세이형식으로 쓰여진 그의 일기를 펼치며 배우고 또 배운다. 좋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메모해야하는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가끔 쉬어 읽기는 했어도 결코 멈추지는 않았던 <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

 읽고 또 읽어도 참 좋아 그 옛날 스님의 책처럼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이곳, 저곳에서 읽게 될 듯 하다. 닥터 김사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좋은 글들을 나눔하면서......!


::: 좋은 문장 몇 구절

- 어떤 사람이 성숙한지 어떤지 보려면 그 사람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는지, 어떤 질문을 하는지 봐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좋은 질문을 하고 현명한 대답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사람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p120)

-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무너지는 경우는 다른 사람이 모질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p127)

- 예전에는 싫어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내 미워했는데 이제는 싫어하는 것이 생기면 아예 관심을 끊어버린다. 너무나 싫은 것이라면 미워하는 것조차 감정 소모가 아닌가(p136)

- 괴로운 일도 잊어야 하고, 평생 놓지 못할 것 같은 일도 언젠가 놓아야 한다. 이 페이지를 넘겨야 다음 페이지를 써내려갈 수 있고 그래야만 인생이라는 책이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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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김성한 지음 / 새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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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내가 맡았다"

 

 

 

일본인 작가가 쓴 <인간의 증명>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인간의 욕망이, 그 욕심이 삶을 얼마나 거짓으로 만들어버리는지에 대한 허무함으로 밤을 꼬박 샌 적이 있는데, <달콤한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이미 많은 것을 가졌으나 멈추지 않았던 한 로펌 변호사의 폭주는 결국 그를 망쳐 버렸으니까.

주인공 박상우는 대형로펌의 잘나가는 변호사다. 근무하는 층의 숫자가 그의 성공을 증명해주는 물욕 가득한 직장에서 단숨에 2층이나 뛰어올라갈 수 있는 건수를 물었다. 그것도 제 손으로 죽인 사람을 담보로 해서. 고액연봉, 핫한 내연녀, 임신한 아내, 보장된 내일, 이웃인 유력대선 후보...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공에 눈이 멀어 지냈다. 그랬다가 손 안의 행복마저 놓쳐버렸다. 행복은 이미 그의 곁에 머물러 있었는데....이 바보 같은 남자는 한치 앞도 모른 채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3이라는 숫자는 불길하다. 언제나 누군가는 외로워진다. 상우, 정재, 경준의 경우도 그랬다. 셋이 친구였고 상우와 경준 모두 정재에게 반했으나 정재는 상우와 결혼했다. 그리고 임신한 채 경준과 모텔에 들락거리다가 사진을 찍혔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경준의 직원과 고딩친구는 상우의 발목을 잡을 뻔했고, 그 과정에서 상우는 우발적인 살인 하나, 고의적인 살인 하나를 저질렀다. 그리고 늪에 빠졌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집 앞에서 저지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국회의원 함백만의 모자란 아들 함상진에게 뒤집어 씌운 것. 완벽한 듯 보였던 이 사건에는 얽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목격자와 관계자 그리고 증거 사진들. 이 모두를 없앨 수 없다면 상우는 상당히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죄를 뒤집어쓴 함상진은 억울한가. 그는 스물네 살 때 이미 사람을 죽였다. 유학생활을 술과 대마초로 보냈던 그는 잠시 한국에 들어와 진탕 놀다가 손수레를 끌던 백말의 할머니를 차로 치었고 권력자인 그 아버지는 심복을 통해 처리했다. 약간 부족한 그의 아들 병호는 이제 살인 용의자로 구치소에 갇혀 있다.
한민수를 죽였다는 죄목으로. 그 변호를 맡은 이웃 변호사 박상우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그의 아내 정재, 외도대상인 이경준, 경준의 카센터 직원인 임주영의 죽음, 죽음을 조사하고 나선 최우식, 최우식을 죽여달라고 상진을 찾아온 박상우. 연결된 하나의 고리처럼 지독하게 얽힌 그들의 관계 속에서 맡아지는 썩은 냄새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멈출 줄 몰랐다.

 

서른 여섯의 박상우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던 것일까. 무엇이 그의 눈을 가렸던 것일까. 어떻게 해야 옳았던 것일까. 마지막이 신파로 끝나버린 듯해서 약간 씁쓸하긴 했지만 몰입도가 최고였던 <달콤한 인생>이 영화화 된다면 예상 캐스팅으로 적당한 배우는 누가 될까. 각색된다면 <내부자들>, <더킹>,<베테랑>보다 더 신랄하고 어둡게 그려져야 하지 않을까. 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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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테크닉, 내 몸의 사용법
프레더릭 알렉산더 지음, 이문영 옮김, AT 포스쳐 앤 무브먼트 연구소 감수 / 판미동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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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 컴버배치나 휴 잭맨 등 헐리우드 배우들이 익혀 온 130년 전통의 훈련법을 만든 이는 놀랍게도 의사가 아닌 연극배우 프레더릭 알렉산더였다. 공연 중 목이 쉬어버린 그는 의학의 힘으로도 목소리를 되찾을 수 없자 스스로 치료법을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알렉산더 테크닉>을 창안했다. 조지 버나드 쇼나 존 듀이도 그의 가르침을 이수했다는 말에 <내 몸의 사용법>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고 면연력이 약한 몸을 좀 더 강인하게 단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감수자의 서문에서처럼 어렵고 모호하게 느껴졌다. 간략하게 비법을 알려주거나 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서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원리를 풀어놓은 부분들이 많아 처음 접하는 독자인 내게는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경험적으로 접한 사람에게는 많은 깨달음을 줄 수 있으나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제 체험을 요할 수도 있다고 서문에 적혀 있다.



그래서 100%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문제의 근원을 발견한 그(알렉산더)가 어떻게 자신을 치료해 나갔으며 또한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에 중점을 두고 읽어 나갔다. 가령 그가 '습관적 사용'을 자각한 부분에서는 '내게는 저런 습관적인 자세나 몸의 사용'이 있어오지 않았나? 잠시 고민해 보기도 하고, 나를 사용하는 디렉션이 어떠한지도 더듬어 보기도 했다. 평생은 '나'로 살면서 어쩌면 이럴 때만 '타인'에게서 벗어나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책을 통해서라도 한순간씩 나에게 집중할 시간을 얻어낼 수 있는 건 축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더해가면서-.

 

 

"우리는 자신을 사용하는 방법을 개나 고양이보다 더 잘 알지 못하잖아요."(p50) 라는 문장은 읽자마자 무릎을 탁 쳤는데, 실제로 척추가 아파서 통원 치료를 받으면서 고양이 자세를 많이 관찰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다. 신체의 유연성과 한계를 잘 알고 사용하는 동물들처럼 인간도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쓴다면 상당부분의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느리게 천천히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면서 생활하는 고양이를 보며 따라했던 점이 건강을 회복하는데 꽤나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의사의 충고는 내게 보약이 된 셈이다. 알렉산더 테크닉도 그러했다.

 


상당부분 철학적이면서 1인칭으로 기술되어 읽기 어렵긴해도 다시 건강하지 않은 길로 들어섰음을 각성하게 만들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 책은 내게 상당히 유용했다. 건강을 잃었던 그때의 마음을 잊고 다시 자세가 흐트러지고 나쁜 습관들이 들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일상의 호흡과 움직임이 무너져 면연력을 끊임없이 다운그레이드 시키고 있지 않았나 싶다.

 

 

다만 입문서처럼 이 책을 읽었기에 실천서로 나아갈 내용들이 더 간소하게 간추려져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가 자신의 성대를 건강하게 고쳐놓았듯 그 방법들을 기술한 실용서가 절실해졌기 때문에. 알렉산더처럼 굳이 삼면 거울을 설치해 자신을 관찰할 필요 없이 쉽게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래서 더 빠르고 디테일하게 스스로를 관찰하고 탐구할 수 있다. 이를 십분 활용한다면 잘못된 것을 쉽게 그만 둘 수 있다. 그 외의 것은 인간의 의지에 달린 셈이고.

 

 

건강은 운동을 하는 시간과 강도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운동할 때 자세와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퍼스널 트레이너의 교정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한 동작, 한 동작 얼마나 힘겨웠는지....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는지....운동은 절대 양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천천히 진행하더라도 바른 자세로 해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을 알렉산더 테크닉을 읽으며 되새김질하게 된 것이다.

 

 

130년 전보다 인간의 수명은 더 길어졌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건강에 관한 책들을 두루 살피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분명 서글픈 일이지만 어릴 때 몰랐던 것들을 챙기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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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 이야기 - 사다함에서 김유신까지, 신라의 최전성기를 이끈 아름다운 고대 청년들의 초상
황순종 지음 / 인문서원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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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오누이가 지금은 부부가 되었다. 처는 이러면 안 된다
부부이자 오누이입니다.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P114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화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책인가? 했었으나 그와 달랐고, 화랑이 되는 방법이나 그 시대상이 반영된 역사물인가? 했더니 또 그와 다른 이야기였다. <화랑이야기>는.....! 23대 법흥왕부터 30대 문무대왕에 걸친 170년간의 '화랑' 32명에 관한 이야기이자 성골과 진골,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 얽히고 섥힌 그들의 이야기였다. 조선을 거친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문화일지도 모른다. 마치 먼나라의 고대사를 들여다 보듯 그들은 삼촌과 조카가 결혼하고 어제의 오누이가 오늘의 부부로 맺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금기시 되고 있는 근친은 물론 남편이 있는 부인을 바치기도 하고 아이를 가진 여인을 취해 그 아이의 대부가 되기도 하는 낯선 풍경. 이집트 왕족, 인도의 신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우리네 역사 속에 속해 있었다.

 

 


'화랑'이라고 하면 학도병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신라의 꽃청년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화랑이야기>속 그들은 그보다는 한층 더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 질서보다는 자유를 택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처럼 보여진다. 1대 위화랑부터 32대 신공까지 풍월주 중 익숙한 이름은 총 12명 정도. 그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접해봤던 이름들이 대부분이긴 했다. 누가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부인이자 형제이며 누구랑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복잡해서 차라리 도표를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쉬웠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도 있었으나 '서프라이즈'나 '천일야화'처럼 좀 더 풍성하게 엮여졌다면 한층 재미나게 읽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살짝 남기도 했다.

 

 

때로는 정사보다는 야사가 훨씬 재미나게 읽힌다. 몇몇 화랑은 역사 속 인물이 아닌 이야기 속 캐릭터처럼 각인된 부분들도 있었는데, <화랑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었고 신라에 좀 더 다가설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궁금한 점은 많다. 그래서 화랑에 관한 책들을 좀 더 찾아보고 싶어졌다. 사다함도, 김유신도 이미 예전에 땅에 묻힌 사람들이지만 책 한 권으로 그들이 가까운 이웃처럼 느껴졌다면....눈 앞에 그들의 사랑과 질투, 절망과 탄식이 펼쳐졌다면....너무 과한 상상일까.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만큼 짧은 길이로 쉽게 쓰여진 <화랑이야기>는 많은 인물을 담고 있었으나 단 한 번만으로는 다 기억할 수 없기에 조만간 시간을 내어 재벌읽기에 돌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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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컬렉터 링컨 라임 시리즈 11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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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작가인 '제프리 디버'의 신작 소식에 마냥 신나서 구매한 책 <스킨 컬렉터>.

<본 컬렉터>를 읽으면서 믿고 보는 작가 중 한 명이 된 '제프리 디버'의 범죄 소설은 구멍하나 없이 촘촘하게 짜여져 있는 것은 물론 언제나 전문적이라 혀를 내두르며 읽게 만든다. 살인 동기, 범행 루트가 아닌 치밀하게 계획된 그 범죄 자체도 감탄을 자아낼만큼 잘 짜여졌지만 그를 풀어가는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 콤비를 보는 재미도 쏠쏠해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그의 소설은. 그런데 이번에는 모방범의 범행도 아닌데 본 컬렉터가 다시 사건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만 이번 연쇄 살인마는 천재적인 솜씨를 가진 '스킨 컬렉터'로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재빠르게 독극물로 문신을 새기며 만족하는 살인마로 의문의 문자를 남겨 라임을 자극한다. "두 번째, 사십, 열일곱 번째, 육백 번째...."대체 밑도끝도 없는 이 단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건의 단서이기는 한 것일까. 그저 살인범의 만족을 위한 컬렉팅 문자일 뿐인 것일까.

그런데 반전은 '연쇄살인'이 목적이 아니었다는데 있었다. <스킨 컬렉터>라는 제목으로 인해 <본 컬렉터>를 떠올렸던 독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 작가는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로 내용을 이어나갔으며 그 과정에서 근친성폭행 관계까지 엮어 주종관계, 가정 내 폭력등을 밑 바탕에 깔고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범행을 계획해 왔는지 그 뿌리를 엿보게 만들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자행된 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이 도리어 공포스럽게 느껴진 것은 '테러'와 연관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테러가 무서운 건 그 폭발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향해 있다는 거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모르는 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 그릇된 생각으로 타인의 삶을 침해하는 것. 그래서 원한에 의한 단 한명만을 향한 범죄보다 테러는 무섭다. 그리고 그 파장은 클 수 밖에 없다.

 

 

빌리 헤이븐의 문신 솜씨는 귀신 같았다. 빠른 손놀림도 놀라웠지만 그가 새기는 문신들은 가히 예술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모에게 어린 시절부터 성적으로 학대 및 사육 당해왔던 그는 자라서 그녀의 도구처럼 쓰여졌고 이모 해리엇 가족이 뉴욕으로 왔을 때 접선했다. 수정 헌번 제 2조(잘 규제한 민병대는 자유 국가의 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며, 무기를 소유하고 소지할 권리는 절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를 신봉하는 민병대 사조직을 이끌고 있는 해리엇의 가족들이 뉴욕시로 온 것은 단순한 관광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상수도관에 독을 풀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라임이 밝혀냈고 그들은 체포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하 수도관에 직접 잠입했던 빌리 헤이븐은 죽은 것으로 여겨졌으나 이 대목에서 작가는 또 하나의 반전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놀랍게도. 앞 서 그는 옷가게 여직원의 배에 독극물 문신을 새겨 살해했고, 간 크게도 라임의 집에 잠입해서 술에 독을 타기도 했다. 색스의 아킬레스 건인 팸을 공격하려다가 마침 그녀의 집에 머물고 있던 남자친구 세스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종료된 것으로 여겨서 독자가 편안히 숨을 내려 놓을 때 세스로 되살아나 팸을 위험에 빠뜨린다.

 

 

"지금부터 네 역할은 내 여자가 되는 거야.
우리 사람들이 네가 내 옆에 서 있는 걸 봐야 해.
충성스러운 아내로...(p448)"

 

 

문신사 빌리가 새긴 묵시록은 사실 시계공의 아이디어였다. 그가 살아 있었다. 링컨 라임과 치열하게 두뇌싸움을 했던 그가. 첫문 장을 쓰기 전에 8~9개월 동안이나 구상과 자료 조사를 꼼꼼하게 한다는 작가 '제프리 디버'가 시계공을 되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국내에는 번역본이 들어오지 않은 <The Steel Kiss>나 <The Burial Hour>에서 그 이유를 알 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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