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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신화로 말하다
현경미 글.사진 / 도래 / 2015년 4월
평점 :
마지막 남은 월급을 탈탈 털어 떠난 "필리핀" 여행.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음을 그때 저자는 알고 있었을까. 이후 10개국, 30여
개가 넘는 도시를 여행하면서 '여행'은 그녀를 방황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정착'하게 만들었다. 짧게든 아니든 그 곳에 정착하면서 여행자가 아닌
낯설지만 머물고 있는 자로서의 시선으로 삶에 정착하게 만들었다. 인도와의 인연은 마치 3분 차이로 엇갈린 남과 여의 안타까운 운명마냥 살짝
비켜서긴 했지만 결국 그녀는 인도의 이야기를 완성해냈다. 인도를 떠난 후 한국에서.
p17 석기시대부터 지구촌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역사가 아직도 활발히 살아 숨 쉬는 곳은
지구상에 인도밖에
없다 (마이클 우드/ 인도 이야기)
이전에 접했던 인도의 신화는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실연을 심하게 당한 회사의 여직원이 장기간의 휴가를 내고 머리를 빡빡(?) 깎은 채
떠났던 나라가 인도였다. 그 이전에는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인 그 나라에 관해 관심이 생긴 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대체 어떤 나라이길래
실연 당한 여인들이 죄다 그 나라로 떠났다가 치유가 되어 돌아온다는 말인가.(그 여직원이 돌아와서 말하길, 인도 여행길에 만난 세 여자 모두
실연당한 한국여자였더란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서 여행친구가 되었고 돌아와서는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평생지기가 되어 산다) 현재의 인도는
너무나 삭막하고 답이 없어 보여 나는 인도의 과거부터 거슬러 올라가 만나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과거라는 것이 신화로부터 출발했더니 사흘
밤낮을 헷갈리고도 남을만큼 복잡한 것이었던 것.
인도 신화 속에서 신들은 한 신이 여러 신이 되기도 했고 여러 이름이 되기도 했으며 자꾸만 다시 태어나 이름만 여러 개, 혹은 아바타격의
다른 신이 되기도 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나루토'(애니메이션 주인공)는 나뭇잎 마을에 사는 한 닌자 소년이지만 그가 그림자 분신술을 펼치면
여럿이 된다. 그 모두가 나루토 이기도 하며 또 그렇지 않기도 한 것처럼 인도의 신도 그러했다. 힌두교 3대 신 중에 보존자로 불리는 비슈누는 다양한 얼굴과 이름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아바타 캐릭터의
모델인 그는 스머프처럼 푸르딩딩한 피부를 가진 신으로 악으로부터 선이 탄압 당할때마다 새로운 아바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세상의 악의
갯수만큼 그의 아바타가 등장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수가 얼마나 많을지. 라마, 크리슈나가 그 중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한다. 시바신의 아내 역시
죽은 뒤 환생했고 그 이름이 여러 개인 신이다. 시타와 파르바티는 동일인물로 평소에 그녀는 인자한 모습의 가우리 여신의 모습으로 살지만 화가나면
전쟁의 신 칼리로도 그 모습이 변모된다.
p89 살면서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어릴 적 봤던 일본 만화 영화 속에서 나는 시바를 처음
발견했고 그 모습에 홀딱 빠졌더랬다. 세월이 흘러 그 이름을 잊었다가 인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다시금 그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파괴자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가 파괴하는 것은 정의로운 것들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것들이다. 인도의 신들은 본디 세상이 원래 있던 그대로 잘 돌아가게
만드는데 그 뜻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의 파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파괴와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른 것이었다. 힌구교인들의 인생 목표
4가지는 'Dharma/Artha/kama/Moksha'(의무/재산/즐거움/해탈)라고 한다. 이 말씀만 지키며 살면 성자의 나라처럼 될 수
있을테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 삶을 늘 시험에 들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날의 인도는 박차고 오르는 용의 형상이면서도 늘 발목잡혀 허덕이는 나라처럼
그 발전이 급진적이지만은 않다.
인도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카스트 제도'일 것이다. 그 신분에 따른 삶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인데 최첨단 시대를 살면서
이게 무슨 이야기지? 하다가도 이것을 문화로 봐야할지 악습으로 봐야할지는 그 선을 긋는데 주저하게 된다.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어로 '색'을 의미하는 카스트 는 피부색으로 구별된다고 한다. 법적으로는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관습이나 제도상 제약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그 어원이 불평등인 것을 제쳐두고라도 왜 여전히 실생활에서 그 업을 등에 업고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우리에게 조선의
양반제도를 현대에 그대로 부활시켜 살자고 하면 국민 중 단 한사람도 찬성하는 이가 없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도만의 법이다.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p103 인생이 꼬일 때마다... 도와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제발 발목 잡는 일만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 외에도 공부의 신 사라스와티, 부의 여신 락슈미,인생의 장애물을 걷어주는 신 가네슈,바람의 아들 하누만, 사랑의 신 카마 등등 많은
신들이 지켜온 인도. 공식 언어가 18개, 비공식 언어는 400개가 넘고 표지판은 힌디어,펀자브어,우르드어, 영어로 표기되고 인구로는 세계 2위
국가인 그들을 책 한 권으로 다 이해하려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다만 평소 인도에 대해 관심없던 사람들에게 쉽게 그리고 재미나게 접근할 수 있는
다리 하나를 놓은 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p247 세상은 내 뚯과는 다르게
움직이지만 나는 세상의 뜻대로 움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