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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 현모양처 신화를 벗기고 다시 읽는 16세기 조선 소녀 이야기
임해리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5월
평점 :
5만원권에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다고 했을때 제일 먼저 생각했던 건 "5만원 권이 그리 많이 쓰일 일이 있을까?"였다. 사임당이 되었든
아니든 간에 5만원권은 그닥 쓸모 있어 보이질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통용되고 있는 요즘도 사실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사용하다보니 그저 노란 돈이라는 개념 밖에 갖고 있질 못했다. 그러다가 <대장금>으로 유명한 배우 이영애가 <사임당>을
맡아 다시 사극에 도전한다고 해서 그녀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기에 이르렀다.
불행한 결혼을 했던 여인이자 대학자 율곡의 어머니로 알고 있던 그녀는 뛰어난 재주를 지녔으나 그 시절의 여성들이 그러하듯 갇힌 새장의
새처럼 느껴졌던 관계로 격정적인 삶을 살아갔거나 권력의 최 중심부에서 그 쥐락펴락을 함께 했던 여인들의 그것보다는 밀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녀의 삶을 다시 재조명해야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현모가 필요한가? 양처가 필요한 시대였던가? 저출산의 꼬리표를 떼고
여성의 각성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나? 그것도 아니라면 광해나 연산처럼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사극의 시의성에
대해 고민하던 중 그녀가 살던 16세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p 114 사람이 재주가 있고 없는 것은 배우고 배우지 않은 데 달려 있고,
사람이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은 행하고 행하지 않은 데 달려
있다
뭉쳐서 그저 답답했던 조선이라는 인식 너머의 16세기는 과연 어떤 시대였을까. 놀랍게도 우리가 알던 조선과 그 당시의 조선은 어느 정도의
갭이 존재했다. 19세에 혼인하여 48세에 죽은 그녀가 남편과 함께한 생은 겨우 29년. 그 사이 맏아들 선을 비롯하여 매창, 번, 둘째 딸,
율곡, 셋째 딸, 우를 낳아 4남 3녀를 양육했지만 남편과 금슬이 그다지 좋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이원수는 다소
우유부단하며 야망이 없던 인물로 비추어졌는데 놀기좋아했던 그는 부부간의 의리마저도 저버리고 사임당 사후 큰 아들 또래의 첩을 집안으로 들여 아들
율곡과 척을 지게 되는 아버지 이기도 했다.
신사임당을 두고 모든 조선 여성의 삶을 살펴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조선전기에 대한 생각들은 바꾸기 충분할 듯
싶다. 의외로 비교적 대등한 남녀관계를 유지했던 16세기에는 '이혼'을 여성이 먼저 청할 수도 있었고 처가살이가 일반적이었으며 외손자와 손자
구분 없이 조상의 제를 받들고 재산분할도 결혼과 상관없이 균등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어찌보면 요즘보다 훨씬 낫다고 여겨질법도 한 부분들이 눈에
띄이면서 나는 그동안 오해의 시선으로 조선 전기를 바라보고 있었구나 싶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예시들이 그간
두 눈을 덮고 있던 편견의 고리를 깨부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만들었다. 특히 현모양처라는 단어를 일제가 도입하기 전까지는 그 단어자체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사임당의 삶을 현모양처에만 묶어두려했던 것도 이익에 비례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p82 인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인은 서로 기대고 있는 두 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자가 말한 인이 바로 선다면 어찌 극악무도한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며.....
타인의 불행과 고통에 그토록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사임당은 한양, 파주, 봉평, 강릉을 오가며 살림을 책임지고 남편을 뒷바라지 하고 아이들을 키워냈다.
그러는 사이사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읽었으며 자신의 뜻을 세우기도 했다. 그 뜻이 세상에 펼쳐진 것은 자식들에 의해서였으니 율곡이 쓴
[격몽요결]만 해도 사임당의 교육론이 담긴 교육서로 조선시대 학생들에게 교과서 처럼 읽혔다 전해진다.
학문의 깊이, 인격의 고매함 이런 점들이 드라마에 잘 드러날 수 있을까. 비교적 담너머 외출이
자유로웠던 시대를 살았지만 그녀를 현명한 어머니로 격앙 시켜야 했던 조선 사대부들에게는 그 재주가 탐탁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특히 여자가 감히
그림을? 이라고 격분했다던 송시열에게 모성의 대모로 존재해야만 했던 사임당의 재주는 감추어야할 하찮은 재주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가
신씨'로 불리다가 '성현의 어머니'로 둔갑된 사임당의 삶은 5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재조명 되어도 좋을 정도로 다른 것이었다. 지금의 삶이
그 앞에 주어진다해도 꿋꿋하고 멋지게 살아냈을 한 여성의 삶이 그동안 너무 '현모양처'라는 새장에 답답하게 갇혀져 있었다. 마치 사후의 삶이
감옥인 것처럼.
p83 도대체 무엇 떄문에 우리 사회에서 '인'이 실종된
것일까
재난이 닥칠때마다 미흡한 대처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은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면서 그 울분이 가슴에 쌓이고 갈 즈음해서 마주친 <사임당>의 삶은 그동안 곡해하고 있었던 한 여성의 삶을 다시금 알아가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실종되어 버린 '인'의 마음을 다시 담는 좋은 계기가 되길 희망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