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아이 - 상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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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텐도 아라타가 1999년 최대 화제작으로 발표한 [영원의 아이]는 가족내 폭력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이들은 잊지 않는다. 어리다고 해서 어린시절 받아온 학대를 잊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꽁꽁 숨겨둘 뿐.
잊는다는 것은 어른의 전유물이 아닐까 싶어진다. 

17년 전 소아종합병원 정신병동에 세 아이가 서 있다. 각각 열두 살 동갑내기인 그들은 가정내 폭력으로 마음을 좀먹은 아이들이었다. 성폭행당한 구사카 유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각 학대를 받은 아리사와 료헤이, 이혼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나가세 쇼이치로. 이 아이들은 그날 병원에서 무슨 일을 꿈꿨던 것일까. 서로 몰랐던 아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그렇게 가슴에 새기고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이 다시 만나졌을때 유키는 간호사로 쇼이치로는 변호사로 료헤이는 형사가 되어 마주친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과거가 불러온 그림자가 끊어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누구일까.

비극의 시작은 만남에서 시작되어 만남으로 이어졌다. 
텐도 아라타가 말하고자하는 바가 너무나 극명해서 소설은 어느샌가 정직해져버린다. 너무나 정직하게 말하고자하는 바를 알리는 소설. 그러나 그 어두움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모른채 독자로서는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점이 맘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다 읽고나면 어떤 느낌일까. 그것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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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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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게이지가 갑자기 상승하면...
 작년 말 [성탄피크닉]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잠시 회의에 빠졌었다.
로또가 한 가정의 풍족함을 가져다준 동시에 개개인의 인간다움을 앗아가버린 듯 했고, 도덕적으로 하면 안되는 일을 함께 행하면서도 그들에겐 죄책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쿠다 히데오 식의 가볍게 지나가는 듯한 유머가 섞여 있긴 했지만 작품의 재미와는 별도로 등장인물들의 파탄성은 그리 쉽게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고령화 가족]을 읽으면서 [성탄피크닉]의 가족구성원 못지 않은 분노가 맘 속에서 솟아올랐다. 
 

 실패한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실패한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조차 편히 쉴 수 없다. 어쩌다가 가족이 이렇게 된 것일까. 그들에겐 서로 더 빼앗을 희망거리도 없는데. 가난할수록 서로의 거리는 따뜻하다라는 공식은 이들 가족에겐 이미 해당사항이 아니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땐 [고려장]설화를 떠올렸다. 책을 읽기도 전에 나이가 많아서 가족을 버리는 이야기인가? 라고 엉뚱한 상상을 마구마구 해댔다. 하지만 이야기는 나이가 많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상상을 전부 비켜갔다.

서로의 실수와 잘못들을 폭로해대는 전쟁터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어머니는 여전히 먹거리로 이들을 맞아들인다. 어머니의 먹거리는 이들에게 최후에 보류된 안심일까 아니면 절망 끝에 남아있는 작은 희망의 불씨일까. 
 

 서로 상처내면서 화해해가는 이상한 가족...


2003년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거머줬던 작가 천명관의 두번째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은 분명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픔을 감싸안아주는 가족애도 없으며,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평균 나이 사십 구 세의 세 남매가 늙은 어머니에게로 돌아왔다. 각자의 가족이 아닌 노모의 가족으로 다시 되돌아왔을때 이들은 세상에 지치고 찌들어 있었다. 일흔의 늙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온 그들의 푸념은 때로는 과격하지만 또한 때로는 유쾌하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상금을 사업한답시고 날려먹고 백수가 된 형 "오함마"
딸 "민경"까지 데리고 들어온 여동생 "미연", 실패한 영화 감독이자 한량으로 평생을 살아온 50대의 "나". 이들의 복잡하고 콩가루적 집안 스토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평범한 가족이 아닌 특별한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 이 가족이 사는법은 정상적인 범주는 벗어났을 지언정촌스럽지 않아 좋다.

속수무책딸과 욕쟁이 무대포 엄마가 나왔던 [애자]식의 가족내 갈등과 화해의 패턴과는 다르지만 왠지 지구별 어딘가에선 이런 가족의 화해기도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 천명관이 아니라 다른 작가가 썼다면 지독하게 심각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손을 타면서 서로 상처내면서 화해해가는 이상한 가족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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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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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작가의 [은교]는 말이 많은 작품이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70대 노인이 10대의 소녀를 향해 품은 욕망이라는 말들이 새어나오면서 윤리적으로 노인을 매도하는 사람들의 입들이 가만히 있질 않기 때문이다. 왜 읽어보지도 않고 편견부터 가지려고 드는가.

대한민국의 윤리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조차 금기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일이다. 문학 작품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적어내려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누가 그 책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논란의 여지를 주기 이전에 노인이 사람이라는데서 이해를 시작해 봐야할 작품이다. 노인은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노인도 늙었다. 그런 노인의 눈에 평범한 은교는 잃어버린 향수요, 가질 수 없는 젊음의 대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레게 만드는 인물이다. 시인의 욕망은 비단 은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제자 서지우와의 우월관계구도 속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며, 대필작가로서 세상에 드러내는 자신의 또 다른 욕망도 거세다. 

지우는 존경하는 시인으로 인해 살아가는 방법을 바꾼 사람이다. 재능은 없지만 무던히도 글을 쓰고자 했던 남자. 살리에르 같은 그의 마음에 은교가 들어오면서부터 그는 스승과 은교사이에 갇혀 버린 사내다. 은교를 쉽게 가지면서도 은교로 인해 스승이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는 그런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또 은교. 그 아이는 열 일곱 그 예쁜 나이에 두 남자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끼여 살았다. 한 남자의 육체적 탐미가 되면서 또 다른 남자의 욕망의 실오라기가 되었다. 가장 순수하면서도 치명적인 독. 은교는 그런 소녀였다. 하지만 두 남자 사이의 애증관계 속에서 한없이 외로움을 느껴야 했던 소외된 영혼이기도 했다. 


인간의 내면의 숨겨진 면모와 세가지 욕망을 잘 드러낸 작품이 은교가 아닐까 싶다. 
은교는 단순히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노인의 눈은 복녀를 바라보는 왕서방의 그것과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인간이기에 흔들릴 수 있고, 또한 인간이기에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인간적이었다. 작가 박범신은 세월이 흘러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가장 심도있게 풀어내는 작가인 듯 했다. 은교가 올 봄 새로운 바람으로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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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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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쁜 이름이건 좋은 이름이건 남겨진 다는 것은 기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회자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세자 소현, 그의 이름이다. 

그는 비운의 왕자였고 야망과 꿈을 펼치지 못한채 우리 곁을 떠난 사람이다. 그가 살아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사도세자가 살아있었다면? 해명태자가 살아있었다면? 이라는 역사적 가정법은 사실 어리석다. 그들은 살아있는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면? 이라고 해도 그것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일뿐 죽은 사람이 하는 말은 아니다. 

죽은 자는 말이없다. 그래서 오랜 세월 묻혀 있었던 세자 소현이 이제 사람들의 눈과 귀로 쏙쏙 들어오고 있다. 그는 여러 드라마에서 배경이 되고 행동의 원인이 되며 주변인이 되었다. 이상한 일은 그토록 안타깝게 그려지는 그의 죽음이 왜 단독샷으로 주목받지는 못할까? 였다. 

그는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며 탐구될 여지가 많은 삶을 살다간 사람이다. 그와 그의 아내인 강빈, 그리고 어린 자녀들. 그들이 결국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파헤치다보면 


소현은 1644년 심양에 볼모로 붙잡혀 있었다. 그가 살다간 시대는 내일을 알 수 없는 혼란기였다. 세자를 대군과 함께 볼모로 바쳐야했던 조선의 실정이 그러했고, 후사를 정해놓지 않은채 하루아침에 왕갈이가 이루어지는 청의 실정 또한 그러했다.  어디에서나 피바람이 일고 있었다. 

소현뿐만 아니었다. 소설은 그들 주변인들을 통해 살아있는 자들이 감싸안아야했던 비참한 역사를 말하고 있다. 종친의 딸이었으나 황제의 여인이었다가 대학사의 작은마님으로 살고 있는 흔,누이와 어미를 짓밟혔으나 그 역시 그 짐승들처럼 살고 있는 만상,정승의 아들로 태어나 배신의 삶을 살아야했던 석경, 신의 딸 막금. 그들 모두가 살다간 세월이 참 잔혹했다. 

그 중 가장 참혹했던 삶의 주인공은 소현이었는데, 그 푸른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환국한지 두 달만에 죽은 세자는 여러 의문을 남기고 갔다. 세자의 세 아들과 부인 강빈 역시 의문스럽게 사라졌다. 우리네 왕은 아비의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기에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도 면책권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짐승의 삶처럼 느껴져 하나도 부럽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현. 그는 우리에게 그리움의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가 있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역사 앞에, 이젠 제대로 주인공으로 조명될 그의 이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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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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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은 골라먹을 수 있는 맛나는 아이스크림처럼 느껴질때가 많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서도 13편이나 골라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이 주어졌다.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차례로 읽지 않아도 좋다고 허락받은 것과 마찬가지여서 목차를 보고 읽고 싶은 단편부터 한 편 씩 야금야금 골라 읽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는 그렇게 인연맺기 되어 읽기 시작한 소설이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났을까.

 

제목은 단편의 주인공들인 그들에게 시선을 모아지게 만들고 주목하게 만드는 무언의 마법같았다. 그 생략문장 끝에는 몰랐다. 알지 못했다. 관심없었다. 등등의 문구가 붙여질 것 같았는데, 읽으면서 동일제목의 단편 외에 실려 있는 모든 단편에 그 문장을 붙여도 하나도 어색한 바가 없이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연애할때 두 사람 사이의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수많은 변수가 있어 당장 보이는 사건만으로는 자잘못을 가리기 어렵다. 그런 생각을 더 짙어지게 만드는 13편 속에서 나는 작가가 살고 있는 오늘을 발견해낸다.

 

살아있다는 것. 그래서 어제에 대한 변명도 필요없고 내일에 대한 설명도 필요없는 오늘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사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을 때만해도, 최근 읽은 [아랑은 왜]에서조차 김영하 작가는 어떤 작가다 라고 규정짓기 어려웠다. 물론 이 소설들을 통해서도 작가를 한 틀에 얽매어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 같이 느껴진다. 날카로운 예전 글들에 비해 세월이 흐르는 속에서 작가의 글도 많이 둥글어지고 있고, 모습조차 강원래랑 닮았다 싶을 사진을 보며 미소짓게 만드는 등 친화적인 면모로 변하고 있는 듯 하지만 김영하 작가에게 기대하게 만드는 그 무엇은 여전히 변한 바가 없다.

 

[로봇]이나 [여행], [밀회]를 통해 본 사람들은 어제와 미래를 궁금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늘 일어나는 일과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점이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착한 누군가와 나쁜 누군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에게 오늘 일어나는 일일뿐이야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 것. 그들 사이의 상처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일에 그물처럼 걸려버린 사람들의 오늘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 그 심플함에 매혹되어 버렸다.

 

작가의 다른 여행서적에 함께 실렸던 소설이라 아는 반가움을 느끼게 만들었던 [마코토] 역시 세월이 지난 어느 오늘에 알게 된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이라는 것은 세월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언제나 반복처럼 주어져 그 소중함을 당장은 깨닫지 못하게 만들지만 지나버렸을 어제의 오늘을 되돌아보면서는 반성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바로 그것을 재미난 작품을 통해 깨닫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주어진 오늘 할 수 있는 고민들로 머릿속을 채워본다.

 

나는 오늘 정말 있어야 할 곳에 있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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