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3년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한 <화차>를 처음 읽으며 '미야베 미유키(일명 미미여사)'라는 작가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후, <스나크 사냥>,<모방범>,<낙원> 등에 매료되면서 미미여사의 신간이 출간되면 서둘러 구해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물보다는 사회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날카롭게 비판의 칼날을 세운 현대의 미스터리 물쪽이 훨씬 내 취향에 맞았음을 고백한다.

 

 

그녀의 작품 중에서 <솔로몬의 위증>만 읽기 시작했다가 잠시 보류해 둔 상태인데 최신작인 <음의 방정식>은 전작에 등장했던 인물이 20년 후 변호사가 되어 다시 학생들 사이의 미스터리를 밝히는 내용이라고 하여 흥미가 솟구쳤다. 읽어야겠다! 이 책! 결심한 순간에서 구매까지 일사천리로 몰아부치고 첫 장을 펼치자 마자 금새 다 읽어낼만큼 작고 얇은 문고판 같은 소설의 문체는 매우 간결했다.

 

 

 

p116  음의 방정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 이끄는 쪽과 따르는 쪽, 억압하는 쪽과 억압받는 쪽의 조합부터 잘못되었고,

        그러니 어떤 숫자를 넣어도 마이너스 답만 나온다

 

 

 

중2, 중3을 걱정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은 비단 대한민국의 일만은 아니었나보다. 참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의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도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1960년에 설립된 중고등 일관 교육기관인 세이카 학원에서 선생과 학생들 간에 서로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부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 성적별로 A/B/C/D로 나누어 교육하는 세이카 학원에서 '피난소 생활 체험 캠프'라는 이름 하에 6월 15일, 교실캠프가 이루어졌다. D반 21명 중 참여한 학생 수는 15명. 남학생 7명과 여학생 8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데 사건은 홀수명수의 남학생 반에서 일어났다.

 

 

당시 통솔교사였던 D반 담임 히노 다케시(38세)가 밤 열한 시쯤, 아이들 앞에 나타나 '실제 재해 사항이라고 가정하고 여섯 명이 살아남기 위해 희생시킬 단 한 명을 가상으로 뽑아보라"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 아이들의 주장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지목된 아이가 1층 출입문을 통해 뛰쳐나가면서 이 일은 학부모들과 학교측 모두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사건 조작에 대한 분노, 징계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던 히노 선생쪽의 변호사 후지로 료코와 학부모 중 한 사람에게 의뢰받게 된 탐정 스기무라 사부로가 상호 협조를 하면서 사건의 내막은 시원스레 밝혀졌다. 보통 살인범이 있고 탐정이나 형사가 이를 밝혀내면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청량감이 끝에 남는다. 반대로 사건은 해결되었으나 희생자나 범인 쪽에 사연이 기구하다면 눈물도 글썽거리게 된다. 하지만 미미여사의 사회 소설은 해결 끝에 묵직함이 남겨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소설의 이야기일 뿐이야'라고 눈감아 버릴 수 없게 만드는 책임감 그리고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것을 심어놓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인정해 버리고 나니 더 허무해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다 라는 것에 대한 인정!

 

 

변호사 후지노 료코의 입을 빌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였을 것이다.

목적이 옳아도 수단이 잘못되면 모조리 틀린 것이 되어 버리는데...왜 나쁜 놈이 저지른 진짜 나쁜 짓을 하나하나 모아서 입증하고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어?(P126) 라고 터트렸던 분통. 하지만 이는 아직 세상 밖으로 나와보지 않은, 성인이 되지 못한 사춘기 소년들에게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아이들이 똑부러지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표출하는 세상이 왔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여물지 못한 14~15세의 어린 소년들인 것이다. '악'이라고 생각했던 선생에 대한 그들이 내린 최선의 선택을 보며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에서 마지막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왔던 문장이 오버랩되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가능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희망은 있다  라고 했던 그 말.

 

후지노 료코의 말은 그 희망의 불씨라고 생각하고 싶어졌다. 소년들에게 화를 냈다기 보다는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이런 일들과 마주할 때마다 침묵하거나 목적을 위해 수단따위야 어쨌든 상관없다고 판단하지 말고 입증하고 정면으로 맞서는 정의로움을 선택하라고 그러면 희망은 있을 것이라고. 그런 성인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희망의 외침이었다고 해석하고 싶어졌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6-03-17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도 에도 시대 이야길 좀 더 위에 두는 데 아마 과거 ㅡ먼 과거라 그런지도 ..현실은 가끔 종종 아프니까 말예요~^^

마법사의도시 2016-03-18 13:10   좋아요 1 | URL
취향의 차이겠지요~^^ 어떤 작가의 소설은 시대물이 훨씬 더 좋은 반면 미미여사의 경우는 현대물쪽이 훨씬 잘 읽히더라구요. 제 경우엔~!!
아마 그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에도 시대보다는 헤이안 시대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그 시대물을 쓰는 작가들의 소설은 또 참 좋아하거든요 !^^ㅎㅎ

뭐 책이라면 어떤 내용이든 다 좋긴 합니다만~

[그장소] 2016-03-18 13:48   좋아요 0 | URL
헤이안 시대 ㅡ가 더 잘 읽히고 현대물 쪽이 ...
작품이 뛰어남과 다른 ㅡ확실히 취향의 문제!^^

책이면 다좋다는 말 ㅡ에 책그지 ㅡ동감!^^ 맨날 구해도 책은 늘 고프니..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