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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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니, 바닷가에 서 있는 집 한 채의 이미지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그 집의 재료가 신선하다거나 기발하다 정도는 아닐지라도, 책에 대한 탐욕과 열정을 절제하지 못했던 한 남자의 파괴된 영혼이 상징적으로 잘 표현되었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제목대로, 책에 대한 과도한 열정이 때로는 인간의 영혼과 삶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또한 운명의 일격을 맞았을 때 과연 책의 모습은 어떠할런지를 작가는 회의적으로 묻고 있다. 그러나 그 주제를 풀어나가는 서술의 힘은 조금 부족한 듯. 여자의 죽음이 예견되어 있었다는 듯한 뉘앙스와 발신 불명의 책의 정체를 추적해 나가는 부분도 어설픈 미스터리의 냄새만 풍길 뿐 퍼즐처럼 뭔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았고, 화재 이후의 주인공의 행로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하여, 전체적으로 추상적 느낌과 흐릿한 이미지에만 의존해야 해서 그다지 깊이 있게 공감 할 수는 없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라는 너무 쎈 한 방에 내성이 생겨서인가. 밋밋하고 심심하고 모자란 느낌밖에 들질 않네. 결론적으로 내겐 딱 이 책 두께 만큼의 깊이로 기억될 듯.   

*책 접기 

'난 모든 책과 씹을 한다네. 책에 아무런 표시도 남기지 않는 건 오르가즘이 없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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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론리하트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 마음산책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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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하고, 1930년대에 씌어진 작품이란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 심리극을 본 듯한 느낌이다.  

주인공은 신문사에서 미스 론리하트라는 필명으로 독자들의 고민 상담을 해 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도 그리스도 콤플렉스에 빠진 신경증 환자이며 종종 무의식과 꿈을 오가는 환상을 경험한다. 특히 그가 체험하는 이런 환상(꿈)들이 이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신을 사랑하는 애인을, 순수해서 오히려 괴롭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밀어내고, 상관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며 독자에게 준(?)강간을 당하기도 하고 술집에서 노인을 괴롭히는 등 뒤틀린 인관 관계속에서 외로운 그는 독자들의 고민을 진정 해결해 줄 수 없는 자신과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농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무기력과 위선을 느끼며 방황한다.  

문제 덩어리인 주인공이 타인의 고민을 상담해 준다는 상황 자체와, 쉬라이크와의 컬트적인 대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환상을 통해 일종의 정신적 절름발이였던 자신이 온전하게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육체적 절름발이에 의해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결말이 주는 블랙 유머, 그리고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1930년대의 미스 론리하트와 그의 독자들의 풀 수 없는 고민에 대한 찐한 공감이 이 작품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남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다.  

덧붙인다면, 미스 론리하트를 자극하고 끊임없이 깐죽거리는 쉬라이크라는 인물에게 가장 끌렸는데, 그의 도피처에 대한 명쾌한 분류에 퍽 공감했다는. 그러나 신만이 유일한 도피처라는 그의 결론엔 동의할 수 없었다는.  

도피 또한 인간의 본능일까? 흙과 남태평양, 예술,쾌락, 자살, 마약, 신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당연 남태평양이닷. 남태평양까진 아니더라도 제주도라도 감지덕지다. 비록 고갱과 몇 몇 깨이신 분들이 이미 써 먹은 한물간 카드라 할지라도.   

마지막으로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좀 아쉬웠다는...  

*책 접기 

"인간은 늘 꿈을 가지고 자신의 비참함과 싸워왔다. 과거에 꿈은 아주 막강한 것이었지만 그 꿈은 이제 영화, 라디오, 신문 때문에 유치한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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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TIME LIFE BOOKS - LIFE - LIFE AT WAR
알라딘(디폴트) / 198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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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LIFE 엑기스 중의 엑기스 The Best of LIFE를 먼저 접했던 탓인지, AT WAR편은 상대적으로 감흥이 덜 했지만, 전쟁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춘 만큼 사진 자체의 임팩은 좀 덜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큰 틀안에서 흐름이 끊기지 않고 볼 수 있어 좋았다.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과 기타 전쟁 순으로 편집되어 있고, 각 전쟁 발발과 진행 과정등에 관한 설명과 함께 사진 기자들에 대한 짧은 이야기 -로버트 카파가 첨엔 가공의 인물로 탄생했고, 결국 베트남전에서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든지 하는- 도 곁들여져 있어 이해와 재미를 돕고 있다. 

아마 종군 작가들 대부분이 전쟁의 실상을 담아낸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사지로 뛰어들었겠지만, 누군가의 고통과 불행, 죽음이 돈과 때로는 부와 명성으로 치환되는 엄연한 현실을 생각하면,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마당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듯 너무 잔인한 짓거리(?)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좀 크고 길게 보면, 전쟁을 겪지 못한 나같은 사람에게 잘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한 권의 책이 주는 그것보다 훨씬 강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아주 의미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국전쟁편에 수록된 사진들 속의 낯익은 풍경과 사람들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 땅에서 일어났지만 남의 전쟁이기도 했던 전쟁, 사진 속에서조차 북을 떠나는 피난민, 엄마잃은 아이, 사살된 빨갱이, 전향한 반공 포로가 아니고서는 결코 전쟁과 승리의 주인이 될 수 없는, 한국 전쟁속의 한국 사람들, 철저히 미국인의 눈으로 찍혀지고 해석되는 컷과 코멘터리들. 사진 너머에 감추어진 한국 전쟁의 이면들을 제3자로서는 꿰뚫어 보지 못하듯, 스페인 내전과 2차대전, 베트남 전쟁 사진들에서 내가 받은 느낌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사진조차도 순도 100프로의 진실을 담아낼 수는 없는건지? 유엔군,중공군,공산군,국군 모두 확실한 이념에의 신념이 있었을까? 그들 모두 가족과 이런 저런 꿈이 있는, 그냥 멋모르고 철없는 젊은이었을텐데 등등등.... 

시절이 하 수상하여 아래 위로 전쟁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너나할 것 없이,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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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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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살아보고 먼저 고민했던 인생 선배로서, 저자가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애정 어린 인생 가이드랄까. 지나치게 딱딱하지도 무겁지도 않다. 젊은이에겐 피가 되고 살이 될, 젊은이가 아니더라도 한 번 쯤 되새겨 볼 만한, 좋은 강의를 하나 들은 듯한 느낌이다.  

제목대로, 사유의 극한까지 밀어부치는 고민의 힘과, 타인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덧붙인다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독서의 힘도 보여준 책이 아니었나 한다. 나쓰메 소세키 작품의 평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작품들이 많이 인용되며, 막스 베버, 톨스토이도 등장한다. 저자의 이런 고민하는 힘도 다양한 독서가 밑받침 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자, 그럼 강의 정리.  

1.나는 누구인가? - 자아는 타자와의 상호인정에 의한 산물, 타자를 배제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타자와 마주하면서 끊임없이 자아를 찾아갈 수 밖에 없다.   

2.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돈을 벌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돈을 사용하고, 그러면서도 돈 때문에 마음을 잃지 않도록 윤리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본의 논리위를 걸어가는 것. 

3.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 정보의 홍수속에서 지의 임계점에 도달하고자 노력하거나 자연에서 얻은 지에 주목 

4.청춘은 아름다운가? - 고민하는 청춘의 아름다움. 나에 대한 물음을 계속해도 결국 해답은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수 밖에 없다는게 청춘의 결론  

5.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 믿음의 대상이 무엇이더라도 거기서 주어지는 해답에 납득할 수 있다면 그대로 좋으나 만약 아니라면 자기 지성만을 믿으며 자기와 끝없이 싸우며 살아갈 뿐.

6.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 타자로부터의 배려와 타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 사회속에 있는 자기를 재확인, 이를 통해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자신감 획득 

7.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 사랑은 개인과 개인사이에 전개되는 끊임없는 행위의 결과이므로 한쪽이 행동을 취하고 상대가 거기에 응하려 할때, 그 순간마다 사랑이 성립되며, 그런 의지가 있는 한 사랑은 계속된다. 중요한 것은 매순간 둘 사이에 물음이 있고 서로 그 물음에 대해 반응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  

8.왜 죽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확실한 것을 얻지 못한 죽음은 의미가 없는 사건에 불과하고 무의미한 죽음밖에 얻을 수 없는 삶 또한 무의미할 수 밖에 없다 

9. 늙어서 최강이 되라 - 할리 데이비슨이 아니면 안된단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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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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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유명세와 필 충만한(?) 표지에 끌려 읽었다. 결론적으로, 표지만큼 매력적인 소설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표지 선정은 정말 잘 한 것 같다. 2000년 전에 그려진 이집트 사람의 초상에서 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소설의 배경은, 글쎄 어딘지 딱 떨어지게 언급되지 않는다. 남미나 아프리카 어디쯤일까. 소위 제3세계라고 불리는, 거대 자본의 횡포에 착취 당하고, 미국의 군사력이 활개치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익명의 배경속에 역시나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익명의 '그들'에게 저항하는 운동가 커플이 주인공들이다. 이중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X와 그의 연인 A가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그들의 사랑과 투쟁, 고통받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잔잔히 그려지는데, 전형적인 소재와 방식에다 내용의 밀도도 낮아, X를 향한 A의 사랑이 현실감있게 절절히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쩜 작가의 탓이라기 보다는 내 감수성의 메마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치 21세기를 살고 있는 X와 18세기를 살고 있는 A가 편지를 주고 받는 듯, 두 남녀의 정서 사이의 흐름이 뚝뚝 끊겨 몰입하기 힘들었다.   

가난한자, 억압당한자, 착취당한 자들의 고통과 저항, 그리고 그 속에 피어난 남녀의 사랑을 적절히 버무리려 한 작자의 의도는 엿보이나, 그 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서로 겉도는 느낌만 남아 아쉽다. 차라리 한 우물만 팠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책 접기 

"오직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만 역사는 상승하는 움직임이었고, 그들의 오늘은 항상 최고의 정점이었다.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역사는 돌아보거나 미리 내다봤을 때만 답을 알 수 있는 질문이었고, 그를 통해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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