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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배가 쓰러지니 어서 회사로 들어오라는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다 읽고 난 후 소설에서의 배는 배 일수도 있고, 다리, 건물, 크레인 또는 탈선한 열차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에서의 2002호 배이든, 무너저 버린 다리이든, 건물이든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어떤 당황스러운 일이 조직내에 발생했을때 그 문제를 바라보는 각자의
생각과 반응과 그에 대응하는 조직적인 행동들이 어떻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반영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 말미에 여러 추천의 말에도 적혀있듯이
한 조선회사에서 배가 넘어지고 이에 대응하며 지내는 일련의 일들이 정말 그 회사를 공중에서
보면서 세세한 것까지 들여다보는 트루먼 쇼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직접 그 회사에
들어가서 옆에서 같이 그 일을 겪는듯한 현장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조선과는 전혀
다른 업종에서 직장생활을 경험한 제게 업종에 관계없이 회사라는 조직이 큰 틀에서는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조선회사에서 배가 쓰러저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음에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없고 시간은 흐르고 그 와중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승진도 하고,
조직은 이리저리 섞이고, 배가 쓰러져서 바로 눈앞에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렇게
아무일 없(었으면 좋겠)다는듯이 돌아갑니다. 다른 일로 그 일이 무마되면서 넘어가기를 2년
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바라 보지만 각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국은 어떻게든 해결을 하기위해
모이게 됩니다. 물론 회사내 누구에게도 책임은 없고 그저 배를 일으킬 뿐이고 배가 일어나자
다시 이런저런 일로 관심 밖으로 밀리게 됩니다. 회사내의 알력, 경기불황 등이 겹쳐서
떠나는 사람이 생기고 또 나머지 사람들은 남아서 그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봐왔던 인간군상들이 고스란히 소설속에 들어 있었습니다만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 가해자이고, 누가 위로받아야 하는 피해자인지 구분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 부류들 중 어디에 더 가까운 존재인지 그리고 선배, 후배, 동료들은 저를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중간에 황사장의 행적에 대한 묘사가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만 지금까지 회사라는 조직에 대해 묘사한 소설중에 가장 현실을 잘 반영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여러사람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하지만 회장은 아무 불만도,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수량 넉넉한 호수처럼 관대하게 웃었고, 횡설수설하는 임원들을 지켜보며 이따금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원만히 이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P75)
회장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군림했다. 임원들이 가짜를 말해도 회장이 진짜라면 진짜가 되고 진짜를 말해도 회장이 가짜라면 가짜였다. (P84)
팀장 처지에서 억울한 것이 있기야 할 테지만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라면 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게 부끄러울 것도 없지 않은가? 팀장 역시 회사원에 불과했다. 회사라는 성벽 안에서 안정과 정착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왜 솔직히 투항하지 않는가? 굴목하고 복종하지 않는가? 백번 양보해, 다른 사람들처럼 인정과 애사심을 베풀어 정신승리라도 하지 않는가? (P102)
퇴근 버스 막차에 올라타면 온종일 바쁘기는 엄청나게 바빴는데 정장 어떤 일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나를 거쳐가는 것 같았다. 매일 쓰레기 치우듯 일을 치워나갔다. (P122)
매일 똑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나는 요령을 익혀나갔다. (P125)
나는 내 것이 아닌 것들, 그 욕망들을 쓸어내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마흔여덟이었지요.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뱃사람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요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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