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문화는 그저 당황하고 있다.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규정한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피해자는 투쟁으로 ‘획득되는 지위‘다.

여성주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두 자원이 되지 않는 사회를 추구하고 지향하는 사상이다.

여성이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라 ‘몸‘일때, 모든 여성은 개인의 정체성, 능력, 지위에 상관없이 남성의 성 행동 대상으로서 개별성이 없는 동일한 존재가 된다.

성은 결국 어떻게 실천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철저히 사회적이다.

역사는 누군가의 입장에서 특정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주관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이나 존재는 특정한 시각에 의해서만 드러나기에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는 이들이 남녀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전복자이기 때문이다.

몸은 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적, 중립적인 몸은 없다. 모든 몸은 사회와 문화가 채현된(embodied) 몸(social body/mindful body)이다.

차이가 있어야 차별의 근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사상의 핵심은 ‘차이‘

섹슈얼리티는 젠더, 연령, 장애, 인종, 계급 등의 사회모순에따라 시민권의 경계를 규정하고 규율하는 첨예한 정치학이다.

아이를 얻은 부모에게 주로 처음하는 질문이 "아들이야, 딸이야?"이다. 여기 훌륭한 대답이 있다. "몰라, 그 애가 아직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아서"_케이트 본스타인

라이프니츠는 공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건과 사물 사이에 관계의 네트워크이자 질서라고 주장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재상산 능력과 성 활동은 여성 자신을 위해 기능하지 않는다.

개인 여성의 몸과 개인 남성의 몸은 특정한 사회가 구현하는 권력의 연장선이자 일부이며 동시에 축도(縮圖)이다.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나"다.

몸을 정신의 작용으로 환원한다면 몸과 정신의 상호작용을 설명할 수 없다.

몸은 고정된 의식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나 생성 과정에 있다. 몸은 스스로 행동하고 반응하면서 정신과 상호작용하며 그 자체로 생산적으로 기능한다.

미 2사단의 표어는 출생은 우연(Live by Chance), 사랑은 선택(Love by Choice), 살인은 직업(Kill by Profession)이다.

전반적으로 윤금이 사건은 기지촌 여성의 인권향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미군 범죄, 민족 자존심의 문제로 집중되었다.

인권은 사람(개인, 인간)의 권리이지 민족이나 국가의 권리가 아니다.

여성주의자들에게 평화란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지니는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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