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마조프 식이 될 거야 : 인간에 대한 고찰
아버지와 큰아들, 둘째아들, 막내아들로 이어지는 까라마조프 가의 이야기. 단순하게 줄거리로만 보자면 아버지와 큰아들은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고, 서로를 증오했다. 둘째아들은 냉소적인 인물, 막내아들은 신앙심이 깊은 인물이다. 큰아들은 방탕한 생활을 즐겼으며 공공연하게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결국 그것은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아버지는 죽게 되고 큰아들은 결국 친부살인범으로 몰리게 되는 내용. 방대한 페이지에 혹시 이 소설은 삼대를 기록한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의외로 소설 속에서 시간은 많이 흐르지 않는다. 약 1340페이지 가량의 긴 여정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치정극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있다. 종교와 인간에 대해서 그 어떤 철학서보다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책.
상-중-하로 이어지는 장편 소설중에서 우선 상권의 이야기를 해본다.
상권의 주된 이야기는 아버지와 큰아들이 한 여자를 가지고 싸우는 내용. 큰아들에게는 이미 약혼녀가 있었으나 그 여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게 된다. 아버지와 큰아들은 돈과 여자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다. 큰아들에게 주어야 할 유산, 그리고 빼앗기고 싶지 않은 한 여자. 상권을 이끌어 나가는 갈등 자체는 막장드라마의 소재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그 주변 사람들에게 있다.
상권에서 나온 몇 가지 물음은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과 인간에 대한 개별적 증오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가?
-국가가 지상에서 배척되고 종교가 국가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면?
-인간은 누가 살 가치가 있고 없는지 결정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자신의 명예와 살아갈 희망 중에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지상의 빵과 자유는 양립될 수 있을까?
중권은 의외로 줄거리가 단순하게 전개된다.
앞에서는 조시마 장로의 죽음, 뒤에서는 드미뜨리(첫째아들)의 친부살해 의혹. 조시마 장로의 죽음에서는 신과 인간, 인간애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룬다.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조시마 장로는 그의 시신이 부패되고 썩은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는다.
드미뜨리(첫째아들, 미쨔)는 친부살해 의혹을 받는다.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 것이 그의 죄라면 죄.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한 여자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던 드미뜨리. 자살을 생각하려고 했었던 그의 여러 행적들은 친부살해 의혹에 불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알료샤(셋째아들)와 어린 아이인 꼴랴의 대화는 사회주의에 대해서 짤막한 대화를 나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그러나 민중에 대한 시선들은 톨스토이의 <부활>에서도 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중권에서 나올 수 있는 물음은
-인간을 제외한 만물은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들어졌을까?
-인간의 이성은 개성이 있는 고립된 것인가 혹은 인류의 보편적 전체에 있는가?
-스스로 뉘우쳤다면 꼭 벌을 받아야할 필요가 있을까?
-자유는 개인을 향하는가 혹은 인류를 향하는가?
-성인에게 증표는 꼭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결말은 까라마조프의 저열한 힘, 까라마조프 식이 된다. 하권에서는 드미뜨리의 재판 과정이 이어진다. 각각의 변론과 함께. 물론 소설에서 드미뜨리의 최후는 나오지 않는다. 하권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간의 자유의지이다. 악마와 대화하는 이반(둘째 아들)의 독백도 주목할 만하다.
하권에서 나올 수 있는 물음은
-인간은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 있는가?
-하느님(종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선행을 할 수 있을까?
-암묵적으로 살인을 동의했다는 것은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어디까지 자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할까?
-진리와 양심은 종교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