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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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종교가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며 동시에 어떤 종교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불교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진 편견은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종교의 최종 목표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오직 스스로 얻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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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다이스케는 특정한 직업도 없이, 아버지께서 주는 돈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인 히라오카가 돌아왔다는 것을 듣고 찾아간다. 히라오카가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듣고 찾아가게 되었는데 히라오카의 아내인 미치요를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은 단순한 불륜 이야기가 아니다.
  


다이스케에게 있어서 미치요는 죽고 못 사는 불륜 상대가 아니다.


아버지가 명령한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해서, 거절하기 위해서 생각해 낸 핑계일 수도 있다.
  

마땅한 거절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 순간 미치요가 나타난 것이다.
  


아버지의 도움 없이 일자리를 알아보러 떠나는 순간,
다이스케의 눈에 세상은 새빨간 회오리로 다가온다.
  


회색빛이었던 현실이 새빨갛게 변했다.
  


돈에 대한 아쉬움 없이 살았던 때에는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이스케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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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에서 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나에게는 아픈 어머니가 계시고, 감옥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옆 사람의 정보를 캐야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잡혀 온 사람에게서 함께 한 동료는 누구인지, 어디서 모일 것인지 등..



그런데 나는 그만, 그 사람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영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던 영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영화까지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당신과 나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펐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당신에게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는지.
  


이 이야기는 나의 관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당신은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일 수도 있다.
  


괜찮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가 함께 있었던 순간도 사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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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란 무엇인가
  
  

유리알 명인인 크네히트의 전기. 그가 어떻게 해서 영재로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최고의 자리인 명인에 앉게 되었는지 크네히트의 일대기를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도, 그리고 읽고 나서도 ‘유리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유리알은 유리 구슬로 꿰매는 놀이가 아니라, ‘정신적인 유희’를 말한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끊임없는 연구와 명상을 통해서 가능하다.
  


유리알을 다루는 사람들은 카스탈리엔과 같은 수도회에서 ‘속세’와 분리되어 살아가고 있다. 마치 종교처럼 다루어지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는 아니다. 종교가 다루고 있는 역사 대신에 ‘정신적인 그 무엇’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유리알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노동’이란 노예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일반 사람들이 진로를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하는 자유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기 때문에. 말로는 자유라고 하지만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버리고 타인을 무작정 따라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절망감과 깊은 허무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시간을 때우는 짧은 오락뿐이다. 스마트폰을 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혹은 영화를 본다거나 tv를 본다거나.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그러나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막연한 ‘일’에 대한 정의와 또한 동시에 가지고 있는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한 혐오감에 대해서.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이 물질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면서 반드시 보람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한다거나 기쁨을 느낀다는 것은 주입된 강박관념이 아닐까.

-그렇다면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는데 쏟을 필요는 없다.

-물론 이 경우에는 월급이 최저시급이 아니라 생활을 유지하는 수준까지 올라가야 한다.

-일이 생활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함뿐이라면 신성시될 이유가 없다.

-일을 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라, 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결국 모든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는 나중에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니까.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정작 부자는 일을 하지 않는다.
(보통의 근로자처럼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노동’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자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혐오감에 대해서.

-대기업에 취업하려거나 의사가 되려고 하지만 이들이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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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1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로‘가 ‘근면‘이라는 단어와 조금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노동‘보다는 근면성실하게 일한다는 의미가 느껴지는 ‘근로‘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씁쓸한 아몬드 향내는 언제나 그에게 짝사랑의 운명을 떠올리게 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아름다운 첫 문장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지막 문장에는 주목하지 않는 듯하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첫사랑이자 오래된 사랑, 그리고 마지막 사랑은 단 하나 오직 페르미나 다사에게 향해 있었다. 페르미나 다사는 그와 편지를 교환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만 거리에서 본 그의 초라한 모습에 현실을 부정한다.


결국 페르미나 다사는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와 결혼을 하게 되고, 꽤 오래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물론 그것은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으며 싸움도 잦았고 그녀에게 분노를 안겨 주기도 했지만 꽤 사이가 좋은 부부였다.


어느 날 허망하게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장례식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만나게 된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는 그의 말을 듣고 그녀는 화가 났다.


그러나 그의 끈질긴 편지는 그녀를 구원해주었다.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한 그의 사랑이 드디어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늙고 병들고 죽어감, 또 결혼에 대해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오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게 만든다.


연애하다가 ‘사랑’을 하게 되어서 결혼을 해도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사랑’ 없이 결혼을 하게 되어도 끝까지 잘 사는 경우도 있다.


지금이야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거 같아, 라지만 결국 어떤 사람을 선택해도 나와 크게 어긋나는 경우가 아닌 이상은 누구든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무난하게 평생을 함께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확률과도 같은 불안정 요소가 많은 ‘사랑’보다는 눈에 확실히 보이는 ‘경제력’을 택하기도 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이 책은 말해 주지 않는다. 아마 어떤 책도 사랑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의 마지막 구절처럼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생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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