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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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떼가' 라는 켄 리우의 단편소설집에 실린, 단편 '뒤에 남은 사람들'

 

 

수백년 이후 미래에 과학이 발전하여,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 데이터 처럼 가상세계에 업로드할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된다. 데이터한 인간의 의식은 컴퓨터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영생을 보장 받는 기술 처럼 보인다.

 

 

 

이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더이상 좁은 지구와 한정된 자원으로는 쾌적한 삶을 살 수가 없기에,또한 '영생'이라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소망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를 포기하고, 의식을 데이터화 하여, 가상 공간 속에 살기로 결정한다.

 

 

 

이 소설은 '뒤에 남은 사람들' 즉. 의식의 데이터화를 거부하고, 현실의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기로 결정한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나. 현실속의 삶의 가치에 의미를 두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의 생각을 마지못해 따르는 아버지.그리고 아무생각 없는 누나.

 

 

이미 현실세계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상의 세계로 떠났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폐해 졌다.

과학기술이 기반이 된,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함은 물론이고, 공권력도 사라져, 무법자들이 횡횡하는 시대.

 

 

매해 문명은 퇴화하여, 이제는 원시 수렵 생활에 버금가는 위험한 시대에 점점 가까워 지는 이 세상에서 나의 어머니는 꿋꿋하게, 그녀가 생각하는 '인간 다운 삶'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옛 전통을 보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우정, 사랑등의 가치에 집착한다. 그런 그녀가 이 가족의 중심이었으나, 그녀는 불치의 병에 걸린다.

 

그녀는 죽음이 가까워질 수록 병마에 시달리고, 하루하루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을 겪지만, 끝내 자신의 의식을 데이터화 하는 것을 반대한다.

 

 

 

죽더라도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버지는 그녀가 죽는순간 그녀의 의식을 데이터화하고, 자신 역시 육신을 버리고, 가상의 세계로 떠난다.

 

남겨진 자식들에게도, 곧 뒤따라오라고 하며.

 

그녀의 누나는 곧 부모를 따라, 가상세계로 떠나고, 이제 현실에는 '나'만 남겨진다.

나중에 나 역시 결혼하여, 딸을 가지게 되지만, 결국 딸도 육체를 포기하고, 가상의 세계로 떠난다.

 

 

 

나는 그런 딸을 말리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딸의 뜻을 따른다.

 

나의 아내가 내게 말한다.

 

"내가 당신 곁에 남을게.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거야.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래서 죽음도 두렵지 않으니까,하지만, 루시(딸)은 어려. 그 애는 새로운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어"

 

캐럴(아내)이 말없이 내 곁에 앉는다. 나는 아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꼭 끌어안는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어 주면서. 아무 말도 필요치 않다. 우리는 둘러본다.

이 순진무구한 세계를, 망자들에게서 물려받은 정원을.

 

세상에 남은 시간은 모두 우리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데이터화한 가상세계.

 

1999년 개봉된 영화 '메트릭스'를 연상케 한다. 메트릭스가 가능 했던것은, 양자역학 덕분이다.

우리 인간의 의식, 두뇌의 작용이, 전자들의 전기적 신호에 지나지 않음을, 과학적으로 밝혀냈기에,그전까지, 신의 창조물. 혹은 영적인 존재였던 인간이 육체와 더물어 정신마저도, 전자와 양자로 구성된,기계적 존재임을 깨닫게 된것이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신학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인류가 좌절하였다.

 

또한 유전자의 존재가 밝혀지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단지 유전자의 운반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이 더욱 발전하자, 이제는 인간의 의식마저도,

수치화된 데이터로 바꿀 수있다는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지금 이순간.

그리고 먼 미래에는.

 

이런 의문속에 쓰여진 이소설은, 실제 주인공 "나"의 삼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좀 더 현실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게 해 준다.

 

과연, 그런 과학기술문명이 도래 하였을때,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추구하는 진정한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이런 것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있다.

 

코로나 시대에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은 줄어들고, 이제 우리는 어쩌면, 가상세계와 비슷하게,인간관계를 전자기적 신호로만 유지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또한 한정된 자원과 불어나는 인구. 인간의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하여,

지구에 인류이외에 다른 생명체는 살 수 없게 하는 지금의 기술문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게 해준다.

 

실제로, 인류가 가상세계에서 살아가는 동안, 지구는 자연이 완전히 회복되어 많은 생명체가 축복속에 살아간다는 묘사가 소설 속에 나온다.

 

 

켄리우.

 

이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당신 인생 이야기'의 테드 창이라고 한다.

 

테드 창은 나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읽다보니, 켄 리우의 글에서 테드 창의 문체가 느껴졌었는데,

작가의 말에서 켄 리우가 테드 창을 오마주한 소설이 많다는 얘기를 직접 들으니 , 신기했다.

 

역시 작가의 문체에서 그사람의 향기가 나는 구나! 하고.

여튼 오랫만에 재밌는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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