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관을 나왔을 때, 침대에 혼자 누워 있던 갓난애가 울기 시작했으나 아내는 손수건이며 노트를 나에게 건네주고 있어서, 갓난애를 보러 가는 것이 그만 늦어지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 아들이, 그의 지나치게 여린 귀에 갓난애의 울음 소리라는 불에 달군 송곳을 쑤셔 넣기라도 한 듯이, 고통으로 몸서리치면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신발장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들은 이제는 나의 발치에 벌렁 드러누워 뒤통수를 타일 바닥에 박으며, 발랑 뒤집어진 새우 모습처럼 등을 뒤로 젖히고 양손과 양발을 버둥거리면서 악을 써댔다. 지난 며칠 동안 계속해서 밤중에 울어서 수면 부족이었던 나의 아들이 급기야 본격적인 발작을 일으킨 것을 나는 알았다. 이미 오후쯤이면 아들의 온몸에 참혹한 반점이 나타나는 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는 등뒤에 떡 버티고 서서 기다리고 있는 타인의 눈앞이기도 해서, 처음 얼마 동안은 아들에게 괜찮다고 말을 하는 등 그를 발작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공허한 시도를 했다. 걸핏하면 폭력적인 충동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충분히 다 변명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나의 아들이 발작을 일으켜서 악을 쓰는 목소리는,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자신도 또한 이 현실 세계에 일개 인간으로 실재하고 있음을 가슴 절절이 혐오케 하는 그런 목소리이다. 어떻게든 자신과 주위의 알력을 무마하고 지금부터는 완만하게 일상적인 행위를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분이 되었을 때, 곧이어 그 모든 감정의 밝은 부분을 좌절시켜 버리는 불길한 힘을 가진 목소리이다. 그 소리를 오래 듣고 있으면, 그 아이의 아버지인 나 자신이 그와 함께 벽에 머리를 짓이겨서 머리 모든에서 생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신음 소리를 토해내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목소리이다. 자폐증의 아들이야말로 사실은 나 자신의 우울증을 좀 더 첨예한 형태로 표현해 보이는 모델 타입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먼지를 뒤집어쓴 아들을 무릎에 안아 올리고, 그의 뺨을 질척질척 적시며 흐르는 눈물로 순식간에 넓적다리까지 젖어서, 바둥대는 아들의 엉덩이를 때렸다. 그러나 그 정도의 충격으로는 뻣뻣하게 굳은 몸을, 마치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무 뿌리처럼 나의 아랫배에 갖다 대고 뻗대면서 빠져 나가려고 울부짖고 있는 아들을 제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그의 입언저리를 때리자, 그제야 겨우 공포와 놀람으로 소용돌이치는 그의 머리 속에 외부로부터의 의지가 파고들었다. 인간다운 부드러움을 되찾아 점점 유연해지는 아들의 몸을 그대로 한동안 꼭 끌어안고 있으면, 발작의 여진이 모두 지나가버릴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 '산 제물 사나이는 필요한가'
광기와 고통이 절절하게 울려나오는 글이란 바로 이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