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의 질주 - 정운영 교수가 천년대의 전환기에 던지는 화두
정운영 지음 / 해냄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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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외환위기 사태로 세기말에 한국인들이 겪었던 슬픔과 아픔이 한 경제학자의 필봉에 녹아 있다. 그의 비판은 위기를 추동한 김영삼 정부뿐만이 아니라, 위기 관리에 무능했던 김대중 정부에게도 향해 있다. 좌파적 면모와 민족주의자의 성격이 어우러진, 위기의 시대를 톺았던 보고서와 같은 칼럼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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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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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희망과 미래가 없다는 것, 구성원들의 존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처럼 신랄하게 드러내는 책은 간만이다. 떨거지 취급받는 이십대가 행복을 찾으려 국적을 바꾼다는 얘기는 이 땅의 다수 사람들이, 버림받은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프게 보여준다. 시대정신을 담은 흔치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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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5-3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누군가 나에게 21세기의 젊은 한국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그 대답으로 네 권의 책을 말머리에 올릴 것이다.
ㅡ김의경 ˝청춘파산˝, 김사과 ˝천국에서˝, 장강명 ˝표백˝, ˝한국이 싫어서˝

2) 젊은작가상을 읽고 마요네즈 한 사발과 비계 덩어리를 먹은 느낌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그 느끼함과 메스꺼움이 조금 가셨다.

교외 2015-06-0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다맨 님 이 책을 김치처럼 받아들이셨군요. 소설에 관한 수다맨 님의 평 항상 잘 보고 있답니다.
저는 이 소설이 시대를 마치 `호주나라` 사이트처럼, 유학 블로그처럼 반영하고는 있지만 정신이라고 할 건 담지 않았다고 읽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단편적인 묘사들은 생생한데 인터넷 댓글에서 보는 성토와 다르지 않았구요. 저는 화자가 헬레니즘 시대에 폴리스를 떠난 개인주의자들과 통한다고 보았습니다. ˝헬레니즘 시기의 제국에 곧바로 응답하는 개인주의적 철학˝이요.(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에서 인용합니다..수다맨 님 이 책 보셨는지요)
한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는 대다수의 비판과 개선 노력에 대해서 외부로의 이동을 들고 나오면, 이런 시점은 한 국가 단위의 사고를 상대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나간다는 건 세계에 대한 대응을 꼭 한국 안에서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소설에서는 나간다는 행동만 있고 그래서 뭘 하느냐 했을 때는 맛있는 거 먹는다뿐이었습니다..만약 이 소설이 번역되어서 호주 사람이 읽는다면 한국 안좋구나 외에 무슨 의미를 가질지 모르겠습니다.

수다맨 2015-06-02 08:57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헬레니즘 시대에 폴리스를 떠난 개인주의자˝라는 고진의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어쩌면 제가 장강명의 소설을 지나치게 고평을 한 것은 아닌가 약간의 반성도 듭니다.
그런데,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탈주(나간다)와 더불어, 나가도 실은 제자리에 있는 것이자, 우리 모두 국가를 벗어날 수 없으며 실은 난민 인생에 불과하다는 통찰이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았을런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이더군요. 물론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을 ˝국가가 싫어서˝로, 또는 ˝국가와 싸우러˝라는 대주제로 확장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만 해도 당대 삶의 지도를 얼마만큼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얼마 전 ˝젊은 작가상˝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으니 흥미와 애착이 배가된 점도 있기는 합니다. 읽을만한 작품이 없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 책 다 읽고나니 뒷목을 잡고 싶더군요. 지식의 무절제한 나열을 새로운 전위라 여기는 작가와, 그것이 혁명이자 탈구축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맞장구치는 평론가들까지, 그 이상한 우정과 협력이 참으로 기이하게 보였습니다.
 

 

 

 

 

 

 

 

 

 

 

 

 

 

내가 현관을 나왔을 때, 침대에 혼자 누워 있던 갓난애가 울기 시작했으나 아내는 손수건이며 노트를 나에게 건네주고 있어서, 갓난애를 보러 가는 것이 그만 늦어지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 아들이, 그의 지나치게 여린 귀에 갓난애의 울음 소리라는 불에 달군 송곳을 쑤셔 넣기라도 한 듯이, 고통으로 몸서리치면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신발장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들은 이제는 나의 발치에 벌렁 드러누워 뒤통수를 타일 바닥에 박으며, 발랑 뒤집어진 새우 모습처럼 등을 뒤로 젖히고 양손과 양발을 버둥거리면서 악을 써댔다. 지난 며칠 동안 계속해서 밤중에 울어서 수면 부족이었던 나의 아들이 급기야 본격적인 발작을 일으킨 것을 나는 알았다. 이미 오후쯤이면 아들의 온몸에 참혹한 반점이 나타나는 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는 등뒤에 떡 버티고 서서 기다리고 있는 타인의 눈앞이기도 해서, 처음 얼마 동안은 아들에게 괜찮다고 말을 하는 등 그를 발작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공허한 시도를 했다. 걸핏하면 폭력적인 충동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충분히 다 변명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나의 아들이 발작을 일으켜서 악을 쓰는 목소리는,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자신도 또한 이 현실 세계에 일개 인간으로 실재하고 있음을 가슴 절절이 혐오케 하는 그런 목소리이다. 어떻게든 자신과 주위의 알력을 무마하고 지금부터는 완만하게 일상적인 행위를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분이 되었을 때, 곧이어 그 모든 감정의 밝은 부분을 좌절시켜 버리는 불길한 힘을 가진 목소리이다. 그 소리를 오래 듣고 있으면, 그 아이의 아버지인 나 자신이 그와 함께 벽에 머리를 짓이겨서 머리 모든에서 생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신음 소리를 토해내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목소리이다. 자폐증의 아들이야말로 사실은 나 자신의 우울증을 좀 더 첨예한 형태로 표현해 보이는 모델 타입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먼지를 뒤집어쓴 아들을 무릎에 안아 올리고, 그의 뺨을 질척질척 적시며 흐르는 눈물로 순식간에 넓적다리까지 젖어서, 바둥대는 아들의 엉덩이를 때렸다. 그러나 그 정도의 충격으로는 뻣뻣하게 굳은 몸을, 마치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무 뿌리처럼 나의 아랫배에 갖다 대고 뻗대면서 빠져 나가려고 울부짖고 있는 아들을 제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그의 입언저리를 때리자, 그제야 겨우 공포와 놀람으로 소용돌이치는 그의 머리 속에 외부로부터의 의지가 파고들었다. 인간다운 부드러움을 되찾아 점점 유연해지는 아들의 몸을 그대로 한동안 꼭 끌어안고 있으면, 발작의 여진이 모두 지나가버릴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 '산 제물 사나이는 필요한가'

 

광기와 고통이 절절하게 울려나오는 글이란 바로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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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5-22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겐자부로 글을 읽을 때는 이상하게 긴장을 하게 됩니다.
다른 책은 그냥 지루하다 싶으면 설렁설렁 뛰어넘고는 한느데
겐자부로는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수다맨 2015-05-22 12:58   좋아요 0 | URL
이 사람은 확실히 이십대부터 중장년 때까지 쓴 장/단편이 월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지만 강하고 울림은 없는 작품이 없는 건 아니나, 데뷔작인 `기묘한 일`부터 ˝만엔원년의 풋볼˝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화려하고 대단하다고 봅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에 있는 오에의 후배들 중 그를 뛰어넘을 만한 작가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루키는 물론 전세계적인 각광과 인기를 얻는 작가이긴 합니다만 (가라타니가 말했듯이)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낭만파적 거부`의 포지션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체를 탓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오에의 문학에 나오는 `현실과의 충돌과 타자와 공생하기`에 견주자면 `낭만파적 거부`의 포지션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25 18:1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표현 절묘하네요.

맞습니다. 하루키 세계는 < 낭만파적 거부 > 죠. 바로 이 낭만파적 거부` 때문에 쿨한 감성이 쏟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대를 외면하게 되면 쿨하게 되죠. 반면 당대를 직시하게 되면 핫하게 되는.... 저는 쿨하다, 라는 게 꽤 지겹더라고요...

수다맨 2015-05-29 12:02   좋아요 0 | URL
얼마전 예비군을 다녀와서, 아주 오랜만에 댓글을 답니다.
저도 쿨하다는 말에 반감과 거부감을 느낄 때가 많아지더라구요. 언젠가 제가 이 서재에 고진이 쓴 글을 인용한 적이 있는데, 고진은 하루키(그리고 그의 유사 판본이나 후계자들을 일러) `인간은 죽었다`, `역사는 끝났다`, `사회란 외면 가능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인간`이나 `역사`라는 의미에 매달린 사람들을 경멸하고 비웃을 때만 자기 실존을 겨우(!) 확보하는 치들이라 말한 적이 있었지요. 어떻게 보자면 지금 필요한 것은 `쿨한 태도`보다는 `핫한 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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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박한 땅에서 살다가 떠났던, 어느 고결한 이들의 지혜와 숨결을 담고 있다. 고통과 고립을 힘겹게 견뎠던 사람과, 그런 고립 속에서 나온 작품을 알리려고 분투했던 사람의 우정은 아름다움과 눈물겨움을 자아낸다. 이 황폐한 세계의 어둠과 오염을 조금이나마 지워주는, 한줄기 불빛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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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5-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나 인간은 허구의 짜임이자 집적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고, `그래도 세계는 바르게 나아가야 하며 인간만이 오직 희망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 흥미롭고 경청할 만(사실 요즘의 경향은 전자에 좀 더 기울어진 듯하다)하지만, 인간적 온기와 감동을 간직한 쪽은 후자일 때가 좀 더 많다.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후자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에 견줄 만한 울림을 선사할 책이다. 비록 중간본임에도, 이 책은 올해의 책이라 불릴 가치가 충분하다!
 
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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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와 물기 없는 단단한 문장이 자아내는 정서는 허무와 연민이다. 김훈의 소설에는 관계 맺음에 대한 불신과 단독자로 살아가는 삶의 비참이 깔려 있다. 연대의 확장을 조소하고 경멸한다는 점에서 그의 글은 반동적이나, 인간 개개인의 눈물겨운 실존을 명확히 잡아내는 그의 노력은 단연 월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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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5-0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가 쓴 단편(˝화장˝)이 영화화되었다고 해서 생각난 책이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9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다맨 님, 책 잘 받았습니다. 어제 늦게 메시지 확인하고 클릭했는데 오늘 낮에 책이 도착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데 좋군요. 권정생 성정이 정말 아름답군요. 감사히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수다맨 2015-05-09 20:24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 오후에 책을 받았습니다 ㅎㅎㅎ 어제 제 책을 먼저 산 다음, 곧바로 곰곰발님에게 기프티북을 보냈거든요. 저도 지금 집에 들어와 조금씩 읽는 중인데, 확실히 감동적이네요. 권정생의 작품을 실어줄 지면을 구하러 동분서주하는 이오덕이나, 거지가 되어도 좋으니 `종달새처럼 노래하고 싶다`는 권정생이나 확실히 대단하고 고결한 거인들 같습니다.
책이 일찍 도착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0 10:03   좋아요 0 | URL
실로 오랜만에 책 읽다가 느끼는 감동이군요. 권정생의 깊이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아동문학가 이전에 이미 깊은 심안을 가진 철학자였어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주 속을 후려파는군요....

수다맨 2015-05-10 13:33   좋아요 0 | URL
권정생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신영복과 손창섭 같은 이들이 가졌던 면모가 많이 보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신영복보다도 더 폐쇄적이고, 손창섭보다도 더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웠던 삶을 산 게 권정생이랄까요. 스스로 고립과 고통을 버티는 삶에서 나오는 육성의 무게가 만만치 않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반자본주의자이자, 가장 견결했던 아나키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권정생의 글을 세상에 알리려 노력했던 이오덕이라는 이의 존재도 새삼 귀중하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