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하의 날들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사과는 소설을 지을 때보다 에세이를 쓸 때 글맛과 통찰이 한결 쫀득하다. 그녀의 산문은 작가 특유의 팽만한 자의식을 노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의 심부와 모순을 똑바로 보려는 대결 의지를 보여준다. 독설의 수위나, 반항의 강도에서 만큼은 그녀는 자기 세대의 동료 글쟁이들보다 윗길에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외 2016-07-1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또 댓글 달러 왔답니다... 수다맨님 이 책 좋게 보셨군요. 저는 김사과의 산문이 말씀하신 대결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지성적이지는 못하다는 생각에 항상 답답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예민한 느낌에서 시작하는 글들이 철학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충분한, 충실한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자본주의 때문이다...` 하는 식의 윤리적인 판단으로 뛰어갑니다. 이건 당연히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 몇십년 동안 관찰되는 한 경향이라는 것을 수다맨님도 아실 겁니다. 그래도 김사과에게 좀더 아쉬운 건 말씀하신 반항심을 품은 작가이기 때문이죠. 요컨대 주제넘지만 저는 그에게 더 많은 공부를 기대하고, 이성적인 반성을 거쳐 그의 글에서 통찰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수다맨 2016-07-15 13:42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대로 김사과의 산문이 `충분히` 지성적이지는 못하다는 데 공감합니다. 저도 이 책의 평점을 내릴 때 3점과 4점 사이에서 망설였습니다. 3점을 주기에는 아깝고, 4점을 주기에는 후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3.5점이 적합하다 보는데 알라딘은 하필 0.5점 평점이 없네요).
김사과의 글에는 일장일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점은 작가가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은 하고 본다는 점이고, 단점은 그러한 당당한 의견 표출의 밑바탕엔 역사/철학적 사유의 무게보다는 작가 자신의 르상티망이 더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이 이렇게 불평등한 건 자본주의 때문이다`라는 말은 옳은 말이지만, 그처럼 옳은 말이기에 별다른 감응력을 주기가 어렵지요. 이것은 장차 김사과가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최근에 읽었던 한강이나 정지돈 같은 작가보다) 김사과의 글이 저에게 한결 재미나게 읽힙니다. 요즘은 연민의 태도를 취하거나, 현학적인 포지션으로 문장을 엮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듯해서요. 김사과의 글에는 지식 추구에의 내공은 아직 부족할지라도 타락한 세계를 똑바로 바라보겠다는 열의가 있어 보입니다. 그는 아무래도 졸라나 우엘벡의 후예로 보이는데, 제가 좀 더 지켜볼만한 작가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교외 2016-07-20 11:39   좋아요 0 | URL
르상티망이란 그에게도 있지만 책마다 인상비평적 악플을 달고 다니는 저에게 해당한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 있었습니다...(그럼에도 말씀하신 연민 또는 현학이 요즘 트렌드를 말하기에 딱이라는 인상이 있네요...) 혹 김사과의 소설 중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마음을 열고 읽어보고 싶습니다.

수다맨 2016-07-22 15:32   좋아요 0 | URL
답변이 많이 늦었네요.
개인적으로는 김사과의 ˝천국에서˝라는 장편소설을 괜찮게 읽었습니다. 현재까지 이 작가가 쓴 작품들 중에선 이게 가장 괜찮은 듯싶네요. 일독 권해드립니다.

창고지기 2016-08-1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김사과의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칭찬에 인색한 분이 김사과의 산문이 좋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수다맨님도 좋다고 하니 일단 산문부터 읽어야겠습니다.

수다맨 2016-08-20 04:29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이 책을 거론하는 분들이 별로 없더군요. 제가 본 이 책에 대해 쓴 서평은 원로 평론가인 염무웅이 한겨레에 기고한 `압도적인 절망과 한줌의 희망`이 전부였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그마저도 김사과보다는 송경동/백무산에 초점이 더 맞추어진 서평이었지요 (염무웅 평론가에 대해서 나름 좋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의 생각과 사고는 어딘가 구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김사과의 글에는 확실히 전투적 의지와 시대에 반하려는 부정정신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의지와 정신이 아직은 무르익지 않아서, 설익은 감도 있기는 하지만요. 제가 위 댓글에도 썼듯이 일장일단이 있는 작가이며, 저는 이 작가의 장점을 굉장히 높이 여기는 편입니다.
 
콜리마 이야기 을유세계문학전집 76
바를람 샬라모프 지음, 이종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의 극한 지대에서 노동과 기아를 견디는 인간 군상들의 삶이 사실적이면서 담백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내가 생각하는) 수용소 문학의 걸작들에 비견될 만한지는 의문이 든다. 통일감 희박한 사연들의 나열은 깊이와 미학을 보여주면서도 응집력 없이 산만하게 겉도는 인상을 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다맨 2016-06-2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고평하는 수용소의 실상과 참상을 다룬 작품들은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등이다. 바를람 샬라모프라는 작가가 인간의 비극을 담담히 바라보는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구성적 완미함과 통일감을 지향하는 작품을 썼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 작품에 나오는 몇몇 통찰과 묘사는 기가 막히지만, 어딘가 꽁트들의 모음 같은 인상을 자아낸다.
 
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웰이 쓴 자전 산문인 '정말, 정말 기뻤지'의 소설 버전이란 인상을 준다. 문장과 서사의 결은 다르나 궁핍과 모멸로 얼룩진 유년을 응시한다는 점에서, 어른들 세계의 위선과 기만을 야유한다는 데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처럼 상처입은 소년(들)은 작가로 성장하여, 소외받는 이방인들의 벗이 되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 정말정말 기뻣지의 소설 버전이라.. 좋군요..

참 어제는 잘 들어가셨습니까 ?

수다맨 2016-06-05 18:11   좋아요 0 | URL
네 덕분에 잘 들어갔습니다. 곰곰발님께서도 잘 들어가셨지요?
어제는 참 재밌고 즐거웠습니다. 조만간 또 뵙도록 하지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5 21:26   좋아요 0 | URL
재미있긴 뭐가 재밌습니까.. ㅎㅎㅎ 농담입니다. 자주 봅시다. 다음에는 책 좀 가지고 가겠습니다.

수다맨 2016-06-06 14:22   좋아요 0 | URL
넵. 저도 다음에는 책을 가져오려 합니다 ㅎㅎㅎ

비야수 2019-05-30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웰의 위의 ‘정말, 정말 기뻤지‘라는 책은 국내로 번역된 책인가요? 처음 들어보아서 여쭤봅니다.

수다맨 2019-05-30 10:10   좋아요 0 | URL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산문집에 실려 있는 수필입니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 다시 확인해 보니 번역된 제목은 ‘정말, 정말 좋았지‘군요.
 

 

 "내 앞에 뻗은 길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난했고 앞으로도 계속 가난하게 살 것이었다. 하지만 딱히 돈을 원하지는 않았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몰랐다. 아니 알았다. 나는 숨을 수 있는 곳,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곳을 원했다. 무언가 된다는 생각은 소름 끼칠 뿐만 아니라 구역질까지 났다. 변호사나 지방 의원, 기술자나 뭐 그런 게 된다는 생각은 얼토당토않아 보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가족 구조의 덫에 갇히고, 매일 어디론가 일하러 나가고 얼토당토않았다. 단순한 일이라도 뭔가 한다는 것, 각종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 가족 소풍이나, 크리스마스, 독립 기념일, 노동절, 어머니날…… 인간은 이런 것들을 견디기 위해 태어났다가 죽는 것인가? 차라리 접시닦이가 되어 작은 방으로 홀로 돌아가서 나 혼자 술 마시다 죽는 편이 나았다."

 

ㅡ 찰스 부코스키의 "호밀빵 햄 샌드위치" 275쪽.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너무나 마음에 드는 작가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7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 문장에 밑줄을 좌악..

수다맨 2016-05-28 03:47   좋아요 0 | URL
부코스키의 유년을 다룬 글을 읽다보면 조지오웰의 몇몇 산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고서 어렵게 살아남아,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주네요. 조지 오웰이 우경화되면 부코스키가 되고, 부코스키고 좌경화된다면 조지 오웰이 될 것 같습니다.

흠.. 2016-06-01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반적으로 저런 말은 허세죠.
궁금하네요, 부코스키... 어떤 사람였을까? 그의 실제 모습은.

수다맨 2016-06-01 13:06   좋아요 0 | URL
한 번 책으로 읽어보시지요 ㅎㅎㅎ 후회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2016-06-01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2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2 20:31   좋아요 0 | URL
그럼그때 봅시다.

수다맨 2016-06-03 15:13   좋아요 0 | URL
네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이책을 읽었던 감상을 말하자면 `너무나 우아하고 고매하다`였다. 나로선 채식=인간적, 육식=야만적이라는 작품속 이분법적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채식주의자의 절망과 슬픔이 오늘도 한끼를 에우려 질낮은 육식을 하는 이들의 고충보다 크게 보이지 않는다. 현실을 초탈한 고상함이여...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다맨 2016-05-18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나에게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오래전에 읽기는 읽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이 오래 아끼고 기억할 소설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보다는, 당신은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과 찰스 부코스키의 ˝팩토텀˝을 읽어보셨나요? 부코스키는 인간은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반 리터들이 위스키를 마셔야 글을 더 잘 쓸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누군가 보기에는 이것이 난폭한 발언일지 모르나, 나에겐 이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절실한 외침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읽지는 않았지만(영화로만 보았지만..) 상징의 상투성 때문에 읽고 싶단 생각이 별로 안 들더군요. 눈에 보이잖아요.. 글구 저는 부커 상에 세계 3대 문학상인 줄은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글구 이게 본상도 아니잖습니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와 똑같은 구조이던데..
솔까말 영어로 쓰여진 소설에서 엄선하는 문학상에 3대 문학상이라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죠..

수다맨 2016-05-19 10:12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상징의 상투성 때문에 약간은 거부감이 들지요. 저는 한강을 나름대로 괜찮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만 범속한 현실과 맞지 않는 고상하고 식상한 상징적 구도(채식주의에는 인간적이고 특권적인 가치를 부여하면서 육식주의를 문명적/야만적/억압적인 문화로 치부하는 태도)를 작품에 세우는 데에는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습니다.
어제 신문을 일독하니 한강이 받은 상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이라 합니다. 말씀하신 본상은 영연방 작가들(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인도, 남아공 등)에게 돌아가는 상이고, 인터내셔널 상은 비영연방 작가들에게 수여된다고 하네요. 두 상의 상금은 차등 없이 똑같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권위가 좀 더 높은 것은 본상일 겁니다. 인터내셔널 상은 어떻게 보자면, 작가의 내공(본상은 이것만 있어도 충분하죠)보다도 번역자의 솜씨에 더 무게중심이 쏠릴 수도 있으니까요.

교외 2016-05-3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른바 성과 속이라는 구도, 육체와 정신, 영원과 순간 같은 형이상학적 이분법은 한강의 오랜 주제인 듯해서 어디서부터 문제를 삼아야 될지 모르겠더라구요.(이런 오래된 이분법을 플라톤 철학에서 읽어내는 가라타니의 철학 비평처럼 누가 한강의 문학에 대해서도 비평해줄 수 없을까요^^) 수다맨님 코멘트처럼 한강은 너무나 우아해서, 세상의 더러움과 고통과 천함에 대해서 말할 때 그런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런 걸 초월하고 싶어하지 제대로 말할 줄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가 부코스키를 잘 몰라서인지 ˝부코스키야말로 인간적인 절실한 외침이다˝라는 말씀은 한강에 대한 또 하나의 이분법적 대립각 세우기로 보이네요. 그러고 보면 가라타니의 지적은 모든 이분법이 <진정한 나>와 그에 못미치는 남이라는 구도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거였던 듯합니다...

수다맨 2016-06-01 14:19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돌이켜 보자면 제가 부코스키(좋은 작가) VS 한강(좋지 않은 작가)이란 구도를 과하게 강조하는 댓글을 남겼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에도 특정 작가에 대해서 비판적 논평을 남기고자 한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해당 작가가 구축한 문학적 세계의 허점이나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해당 작가의 문학적 지향점보다는 좀 더 깊고도 색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작가를 비교/고찰해보는 것이지요. 이러한 비교/고찰이 저처럼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에 그칠 수 있기도 합니다만, 얼마큼 필요한 작업이란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대로 한강은 세상의 고통과 천박을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것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초월적 입장에 서 있는 듯합니다. 부언하면 작가는 수려한 문체로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말하려고 하는데, 정작 그 아픔과 슬픔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불충분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네요. 예컨대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영혜라는 인물은 육식(하기)에 맞서서 채식에 기초한 식습관을, 누구에게도 고통을 주지 않으려는 식물적인 삶을 추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원인(도마를 보면 겁에 질리는 것, 아버지에게 종아리를 맞고 자란 것, 수시로 피 묻은 고기 꿈을 꾸는 것, 아버지가 반강제로 탕수육을 먹인 것 등)을 톺아보면 뭐랄까, 다분히 평면적이고 나이브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박하게 말해서 저는 작가가 육식주의의 세상 VS 육식에 반항하는 사람의 구도를 굳이 세우고자 했다면, 이 구도를 지탱할 수 있는 보다 철저하고 근본적인 동인을 찾았어야 했으며, 이것을 찾는데 실패했다면 작가가 사람 삶에 대한 이해를 표층적으로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부코스키는 자기 삶을 그대로 소설에 투영하는 작가입니다. 부코스키의 창작 방법과 소설 경향에 대해선 여러 단점도 있겠지만(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가 비슷비슷한 얘기를 끊임없이 나열하고 있으며 절제미와 창발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 가지 막강한 장점은 나이브한 초월적 입장을 취하진 않는다는 겁니다. 그는 자신이 가졌던 체험과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작가로 보입니다. 작가가 식물적 인간과 폭압적 세상을 상정하고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과, 작가가 자신이 피부로 겪었던 세속에 대해서 (비록 헛소리에 가까울지라도) 가감없이 발언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