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게 여성은 민족의 일원이라기보다 민족적 승리에 따라 교환되는 하나의 전리품일 뿐이다. 그 중간에 자리한 자이니치 후손들에게도 민족이라는 지표는 중요해 보인다. 하나(소설의 주인공)가 우연히 들어서게 된 교토조선중고급학교에서 마주친 이들은 지도에 없는 '조선'을 국적으로 둔 시대착오적 존재이면서도, 조국에 대한 긍지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지나친 자부심은 언제나 지독한 열등감의 이면이 아닌가. 민족에 대한 자이니치 후손들의 강박은, 한국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박양을 죽인 기노시타 미노루의 원체험과 연관된다."

ㅡ 강지희의 '키클롭스의 외눈과 불협화음' 중에서

 

어느 비평가가 쓴 해설을 읽다가 이 대목(위 밑줄 친 부분)에 이르러 눈길이 멎었다. 위 글은 민족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떤 방식으로 여성을 가해와 혐오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분석하는 텍스트였다. 글의 문맥마다 여성으로서의 괴로움과 집필가로서의 수고로움이 드러나 있었으나 재일 교포들(지도에도 없는 나라를 국적으로 둔 시대착오적 존재)에 대해서 다소나마 단선적인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재일조선인 2세이자 에세이스트인 서경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해방 이후) 외국인으로 간주된 재일조선인들은 외국인 등록 수속을 할 때, 자기의 '국적'을 신고하고 기입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한반도에서 민족분단을 둘러싼 대립이 심화된 상태로, 조선 사람들의 독립국가는 아직 성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국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적을 기입하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많은 재일조선인은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기입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국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조선반도 출신, 조선민족의 일원이라는 의미, 즉 국적이 아니라 민족적 귀속을 나타내는 신호였다.

(중략)

'조선적'에서 '한국 국적'으로의 기재 변경은, 대한민국에 국민등록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즉 남과 북으로 나뉜 분단국가 중에서 남쪽의 국민으로 귀속할 것을 강요한 것이다..... 시점을 달리해보면 재일조선인이라는 집단은,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합작해 행사한 압력에 의해 둘로 갈라져, 한편은 난민 상태를 강요당하고, 다른 한편은 한국 국민이라는 틀 안에 갇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여전히 '조선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본시 조선은 하나'라는 생각을 소중히 간직하려는 사람들, 재일조선인이 형성된 역사의 기록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자발적인 난민으로서 기꺼이 불리한 지위를 택하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단지 기재변경을 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등 다양한 입장이 뒤섞여 존재한다."

ㅡ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 중에서

 

재일조선인들이 여전히 '지도에도 없는' 조선적을 유지하고 조선이라는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상술한 것처럼 다양하다. 그들 중에는 (비평가의 표현처럼)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도 있겠으나 난민의 고통과 설움을 안고 살면서도 조선이라는 시공간을 일종의 심리적인 귀의처歸依處로 삼으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또한, 난민의 형성 과정을 역사화, 기록화하기 위해서 불편을 무릅쓰고 조선이라는 이름을 각별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약자들-그 이름이 여성이건 성소수자이건 노동자이건 난민이건 간에-이 수모와 고통을 받았던 역사적, 사회적인 실태를 고찰하는 일은 참으로 값지고 중요하다. 다만 비평가가 차별(들)의 역사에 대해서 논하려고 할 때 특정한 집단이 받았던 차별은 예민하게 검토하면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는) 다른 집단이 겪었던 차별을 범상한 시각으로 이해해선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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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9-0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다맨 님, 추석 전에 얼굴 한번 봅시다아..
 
유령 퇴장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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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의 만년작들은 회고적인 수필(한국 노작가들)이나 고매함이 가득한 인생론(오에 겐자부로)으로 빠지지 않는다. 그는 노년에도 냉철한 자기비판과 처절한 내면응시가 드러나는 글을 쓴다. 육체적 쇠락이란 지린내와 썩은내의 동의어이자, 유령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것을 핍진하게 알려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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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09-03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작들이 사소설이라는 형식 안에서 끊임없이 거시적인 테마(일본의 우경화 반대, 과거사 반성 등)를 추구하려 하고, 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구십대 노인이 십대 소녀에게 느끼는 애욕을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형상화한다면, 필립 로스는 그러한 거시성이나 환상을 단호하게 추방해 버리고 나이 든 병자의 육체와 정신(만)을 잔혹하리만치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그리하여 노인이 젊은이에게 느끼는 만감(애정, 성욕, 질투, 염려, 부러움 등등)이란 결국에는 이 세계에서 사라질 자(유령)의 부질없는 감정에 불과하다는 것, 전작인 ˝에브리맨‘에서 보여주었던 노년이란 해당자에게는 그야말로 전쟁이자 대학살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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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대작을 쓰는 일이 가을추수라면, 고매한 만년작을 쓰는 일은 이삭줍기에 해당한다.˝휴먼 스테인˝과 같은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저력이 보이진 않지만 대가가 사상의 정수만을 뽑아서 만년작에 심는 솜씨는 절륜하다. 이 작가만큼, 삶이 오해와 함정과 파국의 연속이란 것을 보여준 사람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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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8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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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로스는 질서와 안정을 복되게 여기는 이들에게 악몽을 주는 작가이다. 그는 선하게, 성실하게, 유복하게 살고자했던 인물의 삶에 파국(아내의 외도, 살인자 딸 등)이란 폭탄을 심는다. 그리하여 삶이란 오해와 몰이해의 연속이고, 미국적 이상주의란 그저 '가라'라는 것을 쫀득한 문체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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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2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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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대표작으로는 ˝광장˝이 호출되는 경우가 잦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대작이라 부를 작품은 ˝화두˝이다. 작가는 은둔의 시간을 거쳐서 현미顯微의 시선과 망원望遠의 시야로 인간사를 고찰한다. ‘읽기‘와 ‘쓰기‘와 ‘살아내기‘의 도저함과 괴로움을 이만한 스케일로 담아낸 작가의 필력은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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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07-2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회찬이 세상을 떠난 날에 최인훈도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은 자연사가 아니기에 씁쓸하고, 다른 한 사람은 천수를 누려서 와석종신을 했음에도 떠난 자리가 크기에 역시나 씁쓸하다. 내가 아는 한에서 최인훈은 지식인 소설-이러한 규정이 얼마만큼 한 작가의 세계와 역량을 한정 지으려는 폭력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의 전형과 모범을 확립하고, 그 넓이와 깊이를 최대한도로 확보하려 했던 작가였다.
이념에 치우쳐서 자기 성찰과 타인 이해를 도외시하고 편향성을 띠거나(이문열, 복거일), 자유라는 4.19세대의 가치를 대표하는 작가임에도 그에 반하는 퇴영적인 견해를 소설에 심거나(‘서편제‘의 이청준), 역사와 철학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적 열정은 넘치지만 결국에는 자기 감상과 자기 연민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김연수)를 보고 있노라면, 최인훈이라는 작가가 새삼 얼마나 대단한 작가였는지 느껴진다. 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