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엘리트들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자신들의 일원이 아닌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계급"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다른 이들과 분리하고 구별지어 주는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엘리트들은 훨씬 더 "잡식성"이어서, 사회적 경계나 차별점들을 꽤나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들을 문화적으로 구성해 낸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배제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그들이 가진 힘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데서 생겨난다. 엘리트들을 엘리트로 특징짓는 표식은 단일한 관점이나 단일한 목적이 아니라, 사회계층 전반에서 (나오는 것들을) 고르고 선택하고 결합하고 소비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있다. "인텔리 속물(고급문화만을 향유하려 하는 인텔리층)"은 이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 자리를 대체한 건 상류 문화와 하류 문화,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소비하는 범세계적인 엘리트이다.

그들은 세상 어디에 있든 편안해 안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 사회 엘리트들에게 이런 잡식성 다원주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귀족적인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영국 여왕과 함께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지만 동시에 맥주 한 잔을 놓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편안해할 줄 아는 사람이다. 

ㅡ 셰이머스 라만 칸 "특권" 281~282쪽



저자는 과거의 특권층이 일종의 배타적인 귀족주의를 보였다면 오늘날의 엘리트들은 잡식성 다원주의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전자는 가시적인 장벽을 세워서 엘리트와 비엘리트를 구분했다면 후자는 외관상으로는 벽을 허물어서 공생공락의 미덕을 강조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벽을 구축해서 여전히 경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각주에도 나오지만, 오바마와 문재인 같은 일국의 지도자들은 일반 서민들과 함께 맥주 미팅을 갖는 장면을 종종 연출한 바 있다. 이들은 과거의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권위적(백악관)이거나 폐쇄적(궁정동 안가)인 공간에서 과감히 나와서 자신도 일반 서민들과 다르지 않으며 누군가를 함부로 배제하거나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2010년경에 "진보집권플랜"의 공동저자였던 조국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피씨방에 들러서 트위터로 다수의 네티즌들과 열띤 소통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이날 조 교수는 3000명이나 되는 네티즌들로부터 팔로워 신청을 받았고 트윗을 통한 대화는 약 75분 동안 이어졌다. 

저자인 셰이머스 라만 칸의 견해에 따르자면 우리 시대의 엘리트는 일견 개방적이고도 민주적인 이들로 보이며 나아가 평등화라는 가치를 전파하는 전도사들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평등하지 않고 접근 기회와 가능성은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져 있지 않으며 도리어 일부에게 편중되어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언론인/교수 같은 이들이 대중문화(SNS, 유튜브, 치맥 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거기에 편안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면 일종의 착시 현상이 생긴다. 이곳은 기울어진 운동장이자 장벽이 세워진 벌판인데 저들이 모두의 친구이자 아군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권이란 일반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접촉하게 되는 지배층/상류층의 어떤 표식(자산가 부모, 고스펙, 고학비, 인맥, 학맥, 증여 등등)을 뜻한다. 엘리트와 기득권은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배타적인 서클이 아니며 오히려 민주적인 집단이라고, 아이돌의 음악도 들을 줄 알고 온라인 상에서의 소통도 할 줄 알며 서민적인 식당에 들러서 다른 이들과 소주잔을 부딪칠 수 있다고, 이처럼 개방되고 평등한 세상 안에서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여기서 상술했던 이들이 가졌던 표식은 희미해지면서 저들은 노력해서 출세한 재능 있는 사람들이자 포용성과 개방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시각이 생겨난다. 그리고 (실제로 공정하지도 않고 자신의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님에도) 공정과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부상해서 엘리트를 정당화하는 무기로 사용된다.

이제 삼 분의 이쯤 읽은 셈인데, 이 책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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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무지개
최인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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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의 대결의지와 유토피아를 향한 희구는 최인석 소설의 지배적인 특징이라고 할만하다. 썩어문드러진 세상을 전복해야 한다는 열정과 더 나은 미래를 얻고자 자신의 몸까지 내던지는 인물들의 투신이 웅숭깊게 느껴진다. 뜨거움과 파격성이란 젊은 작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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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디의 왕 - 할인행사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 (Robert De Niro)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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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의 아서 펠렉보다 잔혹성은 덜하나 강박성은 몇 수 위인 인물이 등장해서 영화의 시공간을 쥐고 흔든다. 평생을 바보로 사느니 단 하룻밤만은 왕이 되고 싶었다는 주인공의 고백은 인기와 성공과는 동떨어진 소외자의 절망적인 내면과, 아메리칸 드림의 기만성 및 허구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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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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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성은 있으나 자기색과 자기모색이 안 보인다. 젊은 작가들이 최근 문단에서 유행을 타고 각광받는 주제들(페미니즘, 퀴어, 비혼, 이주, 비정규 등)만 전략적으로 골라써서 문학성을 획득하려는 인상마저 든다. 신진의 미덕이라면 이단과 도발인데 그런 것들은 드물고 안정성과 전형성만 살아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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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툽 2020-04-25 1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지금 읽은 작가들만 봐선 많이 실망스러워요. 한국 문학의 가족 사랑은 끝이 없어서 엄마 형제자매 이모, 이제 고모까지 나오네요. 장류진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대체 왜 베스트셀러일까 싶었고 이번 <연수>도 특정 여성들이 좋아할 법한 소설이라고 생각해 찜찜했습니다. 장희원은 신인의 패기가 안 보여 전혀 기대가 안 됩니다

수다맨 2020-04-25 14:05   좋아요 2 | URL
신진 작가들의 온갖 어려움(출판사 구하기, 원고 게재, 인정 받기, 이름 알리기 등등)을 십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자기만의 개성적인 주제를 서사화, 인물화하려는 공력이 저에게는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현재 문단에서 유행하는 특정 주제 및 서사에 경도되거나 편입되어 선배들과 독자들에게 ‘함부로 찍히지‘ 않고 ‘손해 없이 안전하게‘ 작품성을 획득하려는 어떤 저의가 있는 것도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사실 신인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작금의 문단 구조나 독자층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때가 왔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저는 이 수상집의 문제점을 꼽자면 시류 편승과 자가복제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원인은 창작 주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정(문단)하고 소비(독자층)하는 집단에게도 있다고 보거든요.

야툽 2020-04-25 15: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문학은 여성 독자들이 주류라 많이 아쉬워요...남성 독자들이 늘어야 다른 서사들이 생길 텐데 정작 지금 이름 날리는 남성 작가들이 또 퀴어에 매달리니까. 제작년 젊은작가상 작품 중에 임성순 작가의 소설이 굉장히 충격이었거든요. 한국 순수문학은 서사성의 참신함이 없다는 저의 편견을 단숨에 깬 글이었죠. 그런 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독자분들도 다른 소재에 눈독을 들였으면 하고. 신선한 글에 목마른 독자들도 많다는 사실을 작가와 출판사, 그리고 지금 한국문학에 만족하신다는 독자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영화와 달리 이건, 소설이잖아요! 작가의 지분이 99프로인데 말이죠.

수다맨 2020-04-26 12:01   좋아요 1 | URL
임성순 소설가는 단편보다는 주로 장편 창작에 몰두하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이라는 단편집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절반 정도만이 잡지에 발표한 작품이었고 나머지는 미발표작이더군요. 결국 단편 청탁이 없거나 드문 형편이기에 장편 창작에 공들일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서사의 참신도나 확장성에 대한 노력이 (단편 위주로 발표하는 작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위에서도 썼듯이 문단 구조와 독자층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결국 이 풍토를 바꿀 수 있는 핵심적인 열쇠는 창작 주체들이 쥐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1960년대 일본 전공투는 ‘연대를 구하되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적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이를 반대로 비틀어서 ‘고립을 구하되 연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농담조로 즐겨서 쓰고는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현재 한국 문단의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슬로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 선배들의 인정을, 독자들의 애정을 얻는 데 주력할 게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노력을 극한대로 펼칠 수 있는 미지未知의 광야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야툽 2020-05-18 18: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제 답글 달아드려 죄송합니다..ㅎ. 작품집 마저 읽고 후회막심한 상태로 카페에서 나오는 길입니다. 당분간 최은영과 장류진 작가에 대한 관심은 없을 것 같아요. 강화길 작가는 자기 스타일이 확고해 2년 전부터 그분 소설집은 잘 읽고 있는데, 김봉곤은 출판사에서 왜 내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문학동네 편집자로 일하기 때문 아닐까요...? 다른 분들은 할말하않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임성순 작가는 장편에 힘과 정신을 쏟고 있는데 단편소설에도 많이 신경써주셨으면 해요. 장르문학을 허섭스레기 취급한다면 순수문학에서라도 재밌는 작가를 발굴하는 헌신을 문단이 보여줬으면 합니다. 언제까지 김영하, 박민규, 김중혁한테 매달릴 건 아니잖아요. 임성순도 젊은 나이는 아닌지라...암튼 임성순 단편집 사러 들어왔다가 답장 드리고 갑니다. 자주 소통했으면 해요:)

수다맨 2020-05-19 14:47   좋아요 3 | URL
죄송하실 이유 전혀 없습니다^^;;;;
단편은 문예지 청탁이 오지 않는다면 신경 쓰기가 좀 어렵지요. 제가 알기로는 투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문예지에 게재될 확률이 높지는 않습니다. 설령 실어준다고 하더라도 잡지 편집위원들이 선차적으로 선정한 작품들을 먼저 실어야하기 때문에 게재일은 후순위로 늦추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김탁환과 임성순, 도선우와 주원규 같은 작가들이 장편 창작에 매진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사정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릴지도 모르는 단편에 공들이느니 (조금이라도) 장편소설로 반응을 얻었으면 차라리 이 길을 꾸준히 걷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구요. 물론 이들이 그만큼 완성도 높은 장편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사실 단편소설을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단편 정도로 문단의 주목과 각광을 받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인 듯합니다. 오정희나 레이먼드 카버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저는 한 작가의 진정한 역량과 세계 인식을 알려면 그의 장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4월 15일에 외출하기가 꺼려져서 주말에 사전투표를 했다. 4월 11일 오전 일곱 시였고 행정복지센터 앞에는 체온을 재는 사람과 손소독제를 뿌리는 사람이 서 있었다. 투표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저수지를 몇 바퀴 돌았다. 아마도 팔 킬로미터쯤 걸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2. 미통당이라고 쓰고 수구나, 극우라고 불러야 적절한 어떤 정당의 참패는 예견된 성적이자 뒤늦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 당은 오래전부터 전망이나 가능성이 없었고 부패와 탐욕과 무지로 점철되어 있었으며 오로지 거짓 선동과 혐오 정서를 이용해서 당의 목숨줄을 지켰다.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자신들이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았고 경제와 안보가 취약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본인들도 민생 파탄의 원인 제공자들이자 세월호 참사를 막지 못했던 무능력자들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망각했다. 또한, 이들은 그동안 우리네 역사의 비극적인 사건(광주민주화운동, 제주4.3사건, 세월호 참사 등등) 속에서 희생되었던 이들을 모욕하고 조롱하려는 작태를 공공연히 보였다. 이 당의 무능력과 부도덕과 불합리와 몰염치는 이미 정도를 넘어서서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망한 것이고, 망해야 당연했던 것이다. 


3. 나는 지역구 투표용지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비례대표 투표용지에만 도장을 찍었다. 미통당(+미한당)은 당연히 도태되어야 마땅한 세력이지만 그렇다고 위성정당 따위를 만드는 집권 여당에게 표를 줄 생각도 없었다. 위성정당, 대의제의 구색만 맞추면서 모당母黨의 간섭이나 받는 일종의 '떴다방'식 정당은 그 존재 가치가 없으며 국민의 한 표가 제대로 행사되는 나라라면 있어서도 안 된다. 민주적 통제와 민중의 검열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정당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나왔다는 사실은 비극이자 넌센스이며 박정희(유신정우회)와 전두환(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등의 관제야당)의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먼저 원칙을 폐기한 미통당의 책임도 크지만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똑같이 책임의식을 망실한 민주당도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산파 역할을 했으면서 이러한 사태를 짐작하지 못한(또는 않은) 정의당까지도 책임이 적다고 말하기 어렵다. 


4. 민주당은 87체제가 들어선 이후 최대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반동적이면서 시대착오적인 정치인들(황교안, 나경원, 오세훈, 김진태, 전희경, 민경욱, 이언주 등등)에게 낙마의 고배를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일단은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 그럼에도 나는 민주당계 정당이 독재의 잔향이나 안보 보수의 망령, 맹목적인 시장만능주의를 극복할 수는 있어도 예전에 대통령이 말했던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 그리고 여기에 노동의 존중(+생산수단의 민주적 분배와 관리)을 실현할 수 있는 세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상 조국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정치의 민주화를 선도했던 세력은 그동안 기득권의 한 축이었고 이번 선거를 통해서 진짜로, 제대로 '기득권'이 되었다. 내 생각에는 이제부터 적폐파(미통당)와 적폐청산파(민주당)의 대결과 함께 기득권(민주당)과 비기득권(비민주당)의 대립도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것이다. 민주당은 사회의 상층부이자 지배층으로서 앞으로 빈발할 각종 사회 문제들을 주도적,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즉 더 이상 '적폐 때문에 안 돼', '야당 때문에 힘들어'와 같은 류의 변명은 통하기 어렵고 엄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발자크의 대작인 "잃어버린 환상"에 나왔던 어느 대사가 갑자기 생각난다. '이제껏 어린아이로서 행동했으니 이젠 어른이 되시오.'


5. 내가 주목하는 것은 미통당의 몰락을 넘어서 민주당에 대항해야 하는 비기득권의 조직화 및 정치화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뿐만 아니라 전망과 지향은 있으나 지지도는 낮았던 소수 정당들의 국회 입성을 도우려던 제도였다. 나는 거대 양당이 산업화(미통당)와 정치 민주화(민주당)에 대한 사고력은 있을지 몰라도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적인 사안(페미니즘, 퀴어, 환경, 청년 등등)에 대한 이해도는 적거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황교안의 N번방 관련 발언(호기심으로 N번방 입장한 사람은 판단을 달리해야 한다)과 윤호중의 퀴어 비하 발언(성소수자 문제로 소모적 논쟁하고 싶지 않다)을 들으면 두 정당이 여전히 성의식이 뒤떨어진 중년 남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상마저 준다. 이런 이들(+동조자들)에게 경각심과 반성력을 주기 위해서라도 소수 정당들의 의회 진출은 필요했고 나아가 정의당이나 민중당의 약진도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결론은 꼼수를 부린 당들의 다수 의석 차지였다. 


6. 오늘은 주말이니 저녁에 소주와 껍데기를 먹을 생각이다. 사실 어제도 불금이라 소주 먹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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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04-18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와 껍데기는 내가 좋아하는 최고의 궁합인데....

곰곰생각하는발 2020-04-18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의당에 대한 실망도 크죠. 저는 엄청 실망. 지금껏 머리털 나고 비례는 무조건 진보정당에게 투표했으나 이번에는 포기. 앞으로는 정의당은 망설여집니다. 우선 비례 후보가 형편없죠. 비례 후보 명단 보고 깜짝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직능 대표 중 하나인 농어민 대표 후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보면서 놀랐음. 왜 없지 ???!!

수다맨 2020-04-18 16:54   좋아요 0 | URL
정의당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두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일단은 원내 경험이 전무했던 과거 민노당이면 모를까 선거를 한두 번 치러본 사람들도 아닌데 위성정당 금지 조항을 개정된 선거법안에 반드시 넣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미 작년부터 위성정당에 대한 우려가 당 안팎으로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간과한 것이 크나큰 실책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말씀하신대로 비례대표 후보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과거 민노당에서는 헌신적인 노동운동가(단병호, 심상정, 천영세 등)와 농어민 대표(강기갑, 현애자 등), 장애인을 대표할 만한 의원(곽정숙 등)들이 비례대표 당선권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분들은 해당 분야에서 오랜 세월 활동가로 일해온 경력이 높은 분들이죠. 그런데 지금 정의당의 비례대표 순번을 보면 활동가, 운동가로서의 경력 및 경륜보다도 깜짝 이벤트로서의 효과(예컨대 박창진이나 이자스민, 류호정)를 바라는 심리가 더 엿보입니다.

포스트잇 2020-04-20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압도적으로 이겼다고 해서 이번 총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간과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한, 서울수도권과 경상도가 압도적 선거구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권(이 역시 전부는 안되고) 외에 주요 섹션의 기득권이 어디에 기울어져 있는지 생각한다면 승리하고도 웃지 못하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이 안습이죠.
미통당이 제로지점에서 완전히 새로워져 보수당 수준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들의 지지세력은 완고합니다, 많이 약화되었다해도. 서울수도권에서 얼마나 많은 경합지역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이 세력들이 언제쯤 걱정안해도 될만큼 쪼그라들지 잘 모르겠습니다.
IMF가 벌어져도, 지들 대통령이 탄핵되고 감옥에갔는데도 이 정도인 아주 강고한 세력입니다. 이 지경에서도 1백석이 넘는 정당입니다. ㅠ
그래서 걱정했던 거고, 몰빵론이 나온거죠. 그 걱정에 저는 동감했습니다.
연동제를 제대로 설계하지 못한 잘못이 있었고 거기에 선관위가 걱정을 더 얹혔구요.
앞으로 다시 몰빵론이 나오지 않을만큼 남은 2년과 다음 국회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이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자신들이 어떤 상대와 싸우는지를 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이브하면 안되는데 .. 조국사태도 지금 재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걸 보면 이걸 기소까지 해서 이지경까지 몰고 올 문제였는지, 그런데도 저들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상대입니다. ..
진짜 변화가 오기를 기대합니다.

수다맨 2020-04-20 13:38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상당 부분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저는 민주당이 수권 정당으로서의 가치와 모범을 보이고자 한다면 향후 진취적인 개혁을 통해서 구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위에도 썼듯이 적폐파와 적폐청산파라는 지겨운 구도가 아니라, 민주당이라는 여권 민주 세력을 한축으로 놓고 반대축에는 그보다도 급진적/혁명적/다면적인 변화를 바라는 세력(들)이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는 방식으로 앞으로 정계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자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구도를 바란다면, 말씀하신대로 이번에 총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혁을 선도해 나가야 합니다. 즉, 앞으로는 (아무리 상대방이 굳건한 지지 세력과 의석 100석을 가졌다고 해도) 미통당 탓만을 해서는 안 되는 시대, 자신들의 역량을 실질적으로 증명해야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단은 저는 포스트잇님의 걱정에 너무나도 동의하면서도 위성정당은 대의제 선거를 희롱하는 꼼수라고 여겨서 민주당에 표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저는 민주당이 정치적 민주화를 완성시킬 수 있는 세력일 수는 있어도 경제적 민주화까지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집단이라고까지 보지는 않습니다. 부언하면 조국 개인이 재판정에 오르고 언론의 가십으로 소비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만 그의 언행과 실제 삶의 상당한 불일치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지점이 있으며, 이러한 검토는 조국뿐만 아니라 현 정권에 소속되거나 연관된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진짜 변화(미통당의 완전한 종언)가 일어나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그 칼자루는 민주당, 나아가 민주계 진영이 쥐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책무를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