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오는 깊은 밤...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먼 옛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 같이 오는 것이다...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친한 것은 무엇인가?  답은 국수이다.  백석의 시...'국수'에 내 맘도 살짝 담아 본다.  

 

 

백석의 시 100편 가운데 음식이 등장하는 시가 대략 60편이 된다. 그 시 속에 나오는 음식은 개인이 아닌 끈끈한 공동체 정신을 지향하며~ 고향의 맛을 다양한 시어로 표현한다.  비릿한~ 달큰한~ 시금털털한~ 슴슴한... 시를 읽다보면 어느새 맛이 느껴지니 백석은 대단한 시인임에 틀림없다.
오랫만에 비빔국수로 밤참을 만들어 먹었다.  피아노에서 돌어온 민규는 늘 개선장군(?) 뭘 먹일까??  하는데 갑자기 매콤하게 무친 비빔국수 생각이나서... 물으니... 엄마 성의를 봐서~먹어준댄다ㅠㅠ


펄펄 끓는 물에 담궈 놓고 보니 참 뽀얗다...적당히 삶아 물기를 빼는 사이에~묵은 김치를 잘게 썰고 깨소금과 들기름...매실청을 넣고 조물주물 양념을 만들었다. 때로는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만들기가 오히려 담백한 맛을 내는 법~ 부실한 재료를 손 맛으로 극복해 보려 애썼다.
음식은 역시 맛이 아니라 냄새가 먼저다.  골고루 양념이  배이도록 무쳐서 담아냈다.  고소한 기름냄새에 맑음이도 덩달아 신이 났다.  따끈한 국물과 비빔국수 한그릇먹고~민규는 쉬는 중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쩔쩔 끓는 아랫목에 모여 앉아 살얼음 살짝 언 동치미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었던 시 속 주인공들만큼은 아니지만.... 추운 겨울 따뜻한 집에 가족들이 모여 먹은 오늘 국수도 참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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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제주도 내음을 가득 담고 왔다.  

가로수 길에 서서 푸르름을 자랑하던 플라타너스 나무가 가을 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갈 무렵이면~제주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고이 숨겨진 사연을 담고...

귤이 바다를 건너 뭍으로 온다.
온전히 제주의  흙과 해... 바람.... 그리고 물과 공기만이 키워낼 수 있는 귤~
그래서 모든 귤의 모태는 제주의 자연이다.  


구럼비 나무와 바위~ 그리고 제주도의 바다... 바람 타고 올라선 한라산... 깊은 슬픔으로 새겨진 제주도의 아린 역사가 귤 한개에 오롯하게 담겨 있다. 
신은 제주에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 붓고는~잠시 그곳을 돌봐야 하는 것을 잊은게다.  4.3사건의 소용돌이를 섬 구석구석  겪게  하신 것을 보면... 그리고 그 아픔을 위로하시려고 제주도에서만 귤이 자랄 수 있게 하신 것 같다.
맛도 향기도... 모양도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는 귤을 보며~ 제주를 그리워해 본다.
작은 듯 싶지만....많고...
하나인 듯 싶지만... 나눌 수 있게 풍성하고.

 

가까이에  있는 듯 싶지만.... 저 멀리 향기를 보낼 줄 아는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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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 더위가  한참일 때...연두빛깔 고운 사과가 쏙 얼굴을 내민다. 
가을이 온다고...이제 곧 온다며... 수줍은 가을의 전령사가 되어 온다.
여름의 뜨거움을 가을의 소슬바람이 식혀갈 무렵...
빠알간 빛깔  고운 사과가 
가을이 왔다고... 지금이 가을이라며... 우리집 식탁 위에 환하게 웃으며  담겨져 있다^^

 

 

 

사과를 깎을 때... 처음에 칼로 사과를 톡쳐서~ 먼저 기절 시켰다. 아프지 말라고~ 사각사각 껍질 벗기는 소리도 경쾌하고... 빨간 껍질 속에 숨겨놓은 노르스름한 속살도 달콤한 향을 뿜어낸다.  사과는 포크로 찍어 먹는 것보다는 손으로 집어 아삭아삭 씹어야 제 맛이다.  입 압 가득 넣고 먹으면~가을 바람도 햇살도 다 내 것이 된다. 
이렇게 한  여름 폭염과 몇번의 태풍을 뚫고... 무사히 우리 집으로 온 사과야~ 니가 있어서~가을이 더 가을 답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왜  그 수많은 나무 중에 사과나무였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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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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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생이란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의 연극이다

100권의 도서목록을 만든 후... 첫번째로 선택한 조정래의 황홀한 글감옥...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으로 이어지는 대하역사소설 32권을 집필한 작가 조정래가 대학생 중심의 독자 84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엮은 책이다.  문학을 전공했다면 반드시 읽고 가야할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 나 역시 스무살 언저리쯤에서 낑낑거리며 태백산맥을 완독한 기억이 있다.


작품의 무게에 눌려...태백산맥을 읽은 후에 한강과 아리랑은 책꽂이에 머물며 내 손길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우선은 엄청난 인물의 수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건들을 이해하며 읽기에는 내 그릇이 작았고...다만 읽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뿌듯했다. 
황홀한 글감옥에 갇혀....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새벽 두시까지 매일 16시간의 노동으로 평균 30매 가량의 원고를 늘 친필로 써 내려간 작가의 성실함에 감탄할 뿐이다.  


평생을 소식과 채식 그리고 산책을 즐겼으며... 일체의 취미생활이나 술....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조차 최소화 했던 절제의 삶이 대작가를 만든 바탕이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있었기에  30년의 세월동안 웬만한 역량의 작가는 엄두도 내지못한다는 대하소설을 세 편이나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열 권 분량의  태백산맥  필사를 통해 인생이란 지치지 않고 미련하게 하는 노력이 큰 성과를 낸다는 것임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는 조정래 작가.... 


글을 잘쓰고 싶다면 많이 읽고~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이 방법이 글을 잘 쓰는 유일한 방법이고 첩경이다.  그리고 이 방법을 하루도 쉬지 말고 빠짐없이 날마다 실천에 옮겨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것 같다.
조정래의 성실함과 우직함 그리고  민중 중심의 역사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 ...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 작품이 아닌 인간 조정래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최고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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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신영복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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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성어 중 석과불식이라는 말이 있다.  가지 끝에 단 한개 남은 과실...대단히 절망적인 상황이다.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최후의 과실마저 언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역경과 절망의 상황... 겨울의 나무는 앞사귀가 다 떨어진다.
그 낙엽잎이 뿌리를 덮고 뿌리의 거름이 된다.  이 뿌리가 바로 사람이다.  인문학은 사람을 키워 내는 것, 갇혀있는 사람을 해방 시키는 것이다.

너희들 여기서 스펙 쌓아서 좀 나은 직장에 들어 갔다고 한들 절대로 평생 직장이 보장 되지는 않는다. 너희들이 살아갈 사회에서는 평생 직장이 없다.  그러니까 유목민이 되어라.  유목민(노마디즘)이란.. 특정한 방식이나 삶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다.  

가슴이 아픈 것과 골치가 아픈 것의 차이...가슴이 아픈 것은 그것을 자기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골치가 아픈 것은 그것을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스물 일곱~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을 안고 시대를 고민했던 신영복은 통혁당 사건에 연류되어 20년 무기형 선고를 받게 된다.  감옥에서의 20년을 대학이라고 표현한 작가는 그 곳에서 자기성찰과 함께 동양철학 그리고 여럿이 함께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완성한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이 된다는 담론 앞에 생각이 많아 진다.
부단히 자기 영토를 버리고 탈주해야 합니다... 변방만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변방과 마이너리티는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유롭습니다.

얇은 강연집... 그 안에 담아내고 있는 거대한 이론과 실천방안을 읽으며... 고개가 숙여진다. 너무나 좋은 글귀가 많았지만... 내 그릇이 너무 작아서 다 흘러 넘쳐 버렸다.  선생님  말씀처럼 그릇을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그릇 자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채우기 위해 애쓰지 말고...느긋한 걸음으로 땅속 깊이 씨앗을 심어야 한다. 그래야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 

민규가 어렸을때... 나중에 민규가 성공회대에 갔으면~하는 소망을 품은 적이 있었다.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이 사회와 세계에 대해서 치열한 고민을 하는 청년으로 20대를 보낼 수 있게 기도했었다. 현 시점에서 보면  성공회대는 하버드대만큼 멀고~민규는 치열하게 메이플 레벨  업에 목숨을 걸고 있다 ㅠㅠ 
민규야...우리의 경험의 세계는 협소하기 때문에 책을 통해서 시.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엄마보다 100만배 훌륭한 분이 하신 말씀이니~제발 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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