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감정수업 중 '경탄' 부분에 소개된 책을 주문했다.
"엘리자베트의 말처럼 관계가 범상함을 초월하려는 노력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말해 너절한 타성에 빠져 그저 생리적인 욕구나 채우려고 만나는 관계가 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 대해 경탄의 존재로 남을 수 없게 된다.
- 강신주의 감정수업 52쪽에서 -
알라딘 종이박스에서 이 책을 꺼내면서 우선 책의 두께에 놀랐다. 무려 611쪽의 묵직한 두께감과 연두빛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제목 '오래 오래'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 긴 시간이 지나도록이다. 오래오래 어떻게 되었다는 뜻일까 ? 행복하게 살았다, 건강하게 살았다, 즐겁게 살았다, 갇혀 살았다... 다양한 문장들을 이어 본다. 두 남녀와 정원이야기라는 작품 해설을 보며 어떤 이야기일까 너무 궁금하지만, 맛있는 음식은 아껴서 두고 먹고 싶은 마음처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아껴 둘 것이다. 그리고 불현듯 소설이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면 이 책을 제일 먼저 꺼내들고 싶다.
올해 마지막으로 나에게 배달된 알라딘 책들 중 다자이 오사무의 산문집 '나의 소소한 일상'이 눈에 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책 표지를 넘겨 목차를 보니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따뜻하다는 것(생활론)과 아직 말하지 못한 농담(작품론)...서론 아홉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의 개인적인 생활이 담겨 있을 법 싶은 생활론에 더 관심이 간다. 내일부터 당장 가방에 넣어두고 다니며 한편씩 읽어보고 싶다.
"자기의 작품이 좋을지 나쁠지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 천에 하나라도 스스로 좋다고 인정한 작품이 있다면, 그보다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 마음에 잘 물어볼지어다."
- 나의 소소한 일상 170쪽에서 -
연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중 하나인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대신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한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으로,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연민을 말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 중 17쪽에서 -
심리 소설의 대가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500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초조한 마음은 어떤 마음을 말하는 것일까 ? 적당한 긴장과 떨림이 있는 마음.. 아마도 조마조마한 마음쯤을 의미하는 것 같다. 빠른 시일 내에 읽고 싶은 소설이다.
2013년 12월 31일...알라딘에 마지막으로 주문한 책을 저녁에 배송 받았다. 오래오래와 초조한 마음은 소설, 나의 소소한 일상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에세이로 모두 네 권을 주문했다. 네 권 모두 당장 읽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을 마무리 한 후 시작해야 한다. 파란만장했던 2013년은 이제 과거형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다시 내 앞에 찾아왔다.
12월 31일과 별다른 차이 없이 1월 1일은 조용하게 다가왔다. 시내 서점에 가고, 알라딘에 가고, 영화를 보며 소소한 일상을 즐겼다. 그리고 새해 맞이 기념 떡국을 끓여 먹었다.
2014년 알라딘 중고서적에서 구입한 첫 책들... 네루다의 시집과 세 권의 소설
그리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 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구입했다. 겨울은 밤이 길고 방학이 되면 시간의 여유도 생기니 열심히 읽어야 겠다. 기다리던 봄이 오면 햇볕 따뜻한 날을 골라 책을 정리해야겠다. 조용한 일상 속에서 시간은 흘러가고 봄은 따사로움을 안고 나에게 올 것이다.
오랫만에 영국의 록밴드 radiohead의 creep을 들었다. 나는 좋아하는 노래만 계속 듣는 버릇이 있는데 한동안 이 노래를 다운 받아서 수백 번쯤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오랫만에 creep을 무한 반복중이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이유없이 슬픈 마음에 빠져 든다... creep은 그냥 눈을 감고 조용히 듣는게 제일 좋다. 책도 덮어 버리고 계속 음악만 듣고 싶은 밤이다.
만약... 내일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면,, 내일 오후 일이 없다면 난 밤을 새우는 일을 밥 먹듯 할 수 있을 만큼 밤을 좋아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깊이 잠든 밤이 되면 나는 오히려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든다. 아침형 인간들이 보면... 자야 할 시간에 자지 않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잠으로 보내기에 밤이 너무 아깝다. 그리고 지금은 추워서 열어 둘 수 없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창문으로 들어오는 청량한 새벽바람을 좋아한다. 밤이 되어야 인공적인 도시의 냄새에서 벗어나 진짜 바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모든 것들이 단순해 지는 밤이 좋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시가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