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찾아오라고.

 

신하들은 밤샘 모임 끝에

왕에게 반지 하나를 바쳤다.

왕은 반지의 글귀를 읽고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반지의 글귀는 이러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슬픔이 밀려와

그대 삶을 흔들고

귀한 것들을 쓸어 가 버리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

 

행운이 너에게 미소 짓고 기뻐할 때

근심 없는 나날이 스쳐 갈 때

세속에 매이지 않게

이 진실을 고요히 가슴에 새기라.

'이 또한 지나가리.'

 

- 랜터 월슨 스미스의 이 또한 지나가리 -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

 

그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 즉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독서를 하지 않는지는 금방 알 수 있으며, 사람 사이에 이보다 더 큰 구별은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과 자비심과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가득한 감독.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1"에서 밑줄 그은 부분 중 일부를 옮겨 적다. -

 

화창한 햇살이 너무 그리운 하루였다. 이른 아침에는 매서운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리더니, 오전부터는 하루종일 오락가락 비가 내렸다. 날씨 탓으로 기분이 우울한지, 아니면 기분이 우울해서 이 스산한 날씨가 더 못견디게 싫은건지 알 수 없다. 겨울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따사로웠던 봄볕을 하루종일 그리워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 -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 한편이 떠올랐다. 봄의 향기와 봄의 불길, 봄의 졸음 그리고 봄의 생기를 고양이에 비유한 감각적인 시를 열심히 설명해 줬던 기억이 난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

 

김영랑의 시처럼 에머랄드 빛 하늘을 바라보며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의 마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도 있을텐데... 겨울의 흐린 하늘은 사람을 더 깊은 우울에 빠지게 하는 건 분명하다. 기분이 자꾸만 아래로 흘러가 버려 땅 속으로 꺼져 버릴 것만 같다.

대책없는 긍정과 밝음은 다 어디로 가 사라진걸까 ? 이 또한 다 지나가리, 이 짧은 문장의 힘을 믿어보기로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을 그리워해 본다.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날

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

 

우연에 기댈때도 있었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너는 잘못 날아왔다.

 

- 진동규의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

 

 

이런 날 해결해야 할 일상의 잡다한 일이 많다는 건 더없이 불행하다.

바쁜 오후 일정에 시달리던 나를 구원한 건, 유치하게도 우유와 설탕 그리고 식빵이었다.

단순하게 이 세 가지 재료를 이용해서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 먹었다. 방금 따끈하게 구워낸 토스트는 달콤하고 부드러워 금새 입에서 녹았다. 그리고 프렌치 토스트를 꿀까지 발라 먹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몸이 피곤하고 이유없이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역시 단 음식이 빠른 해법이다.

몇 조각 먹고 나니 한결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가벼워진다. 삶의 무거움이 싫어 단순하고 밝게 살고 싶었으나,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무거운 것이었는데.... 무거움과 가벼움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의 순환법칙임을 깨닫는 시간들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없이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이 또한 지나가리.... 그리고 기쁨의 날이 반드시 찾아오리라....

덤벼들듯 찾아오는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면 기쁨의 봄이 다시 찾아오겠지...

시를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 시가 아름다워서, 시인의 마음이 슬퍼서...그리고 이 시들에 모두 공감하는 내 상황이 싫어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같은 시대를 살지도 않지만...오직 인간이라는 공통 분모 아래서 시인의 시에 이렇게 감사함과 위로를 받게 되다니...시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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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12-13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은 시작도 되지 않은 듯한데, 봄이 미친듯이 그리워집니다.
겨울의 회색빛을 저 역시 참기가 참 힘들어서요...

중학교 때 보았던 고양이 시... 다시 읽으니 참 좋네요.
호동그란... 심상이 참으로 예뻐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게요. 제게도 들려주고픈 문구입니다.
저희 함께 힘내는 하루였으면 합니다.

착한시경 2013-12-13 10:32   좋아요 0 | URL
정말 한판 싸울 듯한 기세로 겨울이 몰려오고 있어요...아마 제 기분이 그렇겠죠,,겨울이 무슨 죄가 있을라구요..사실 전 겨울도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이 겨울이 너무 싫고 봄이 정말 정말 그립네요...
같이 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도 같이 힘내고 화이팅해요^^

플라타나스 2013-12-13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지나가겠죠???
이 아픔도 슬픔도.....결국은 지나가겠죠?
반드시 지나가리라 믿지만....
현실의 고통은 영혼까지 짓밟히고 있네요..
그렇지만 새벽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며...
이 아픔을 견디겠습니다..이 영혼에 빛을 발할때 까지요...
착한시경님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12-1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순 우유와 식빵으로
몸을 살리고
찬찬히 하루를 아름답게 누리셔요~